기업 없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기업에서 일하고 기업이 파는 상품과 서비스로 살아간다. 역사상 유례가 없던 코로나 시기도 기업의 비대면 서비스와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기업은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기업을 곱게만 보지는 않는다. 지속가능성과 ESG가 화두가 된 시대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새로운 기업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고 있다. 지배주주의 단기적 이익보다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직원을 존중하고 소비자를 우선하며 공급망과 함께 하는 기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기업. 이런 기업이 과거에도 있었으니 새롭다는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ESG 시대를 맞아 이런 기업이 새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기업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이런 기업을 ‘목적 지향 기업’(purpose-driven company)이라 부른다. 이익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목적 지향의 브랜딩은 강력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결국 재무성과도 향상시킨다고 한다. 포브스(Forbes) 기사 중에는 “모든 기업이 목적 지향 기업으로 변모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목적 지향 기업은 아직 생소하다. 여전히 비주류이다.
새로운 법인격
기업의 목적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법인격이 등장했다. 베네핏 기업(Benefit Corporation)은 그 예이다. 베네핏 기업법(Benefit Corporation Law)은 201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시작해 미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페루, 르완다, 우루과이 등으로 퍼져 나갔다.
베네핏 기업은 여러 면에서 기존 기업과 차이가 있다. 이윤(profit) 창출뿐 아니라 사회적 이익(benefit)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목적).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기업의 사회·환경적 임팩트를 고려한다(책무성). 재무적 이익과 동시에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주주에게 보고하여야 한다(투명성). 전통적인 법인은 주주 자본주의를 전제한다. 주주가치가 중요하다.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적 이익을 고려하면 좋지만 필수적이지 않다. 때로는 사회적 이익과 충돌되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변화함에 따라 베네핏 기업과 같은 새로운 법인이 등장한 것이다.
베네핏 기업이 새로운 법인격을 창설한 것이라면 회사법을 바꿔 기업의 목적과 역할을 다시 정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기업 제도 자체에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2019년 민법과 상법을 개정하였다(이른바 빡뜨법Loi Pacte). 이 법에 따르면, 회사는 주주 등 특정인의 이익이 아니라 ‘회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영되어야 하고, 기업 활동이 사회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야 한다. 회사의 정관에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규정할 수 있고, 일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운영되는 미션 기업 (entrepise àmission)도 가능하다. 이 법을 주도한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의 본질을 다시 묻고 기업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자”고 제안했다.
영국에서는 이미 2006년경 이사들이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기업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것을 회사법에 명시하였다. 최근에는 ‘고려’하라는 수준을 넘어 이해관계자와 사회ㆍ환경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회사법을 개정하자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더 나은 회사법’(Better Business Act) 운동이다. 대기업 등 1000여개 이상의 기업들이 이 캠페인을 위한 연합체를 구성하였다.
새로운 지배구조
미국에서는 주주총회 외에 이해관계자총회 근거규정을 회사법에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근로자, 공급망, 소비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총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수의 주주가 기업을 지배하던 것에서 이사회가 중심이 되어 의사결정을 하고 주주총회가 실질화되며 나아가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지배구조로 바뀌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10월 12일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회사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고려하는지 공시하도록 했다. 우리 상법에는 이해관계자 이익 고려 조항이 없지만 공시제도를 통해 이를 반영한 것이다.
새로운 공시
기업은 그 동안 재무정보를 공시하면 되었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자산과 부채, 매출을 공시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회사의 장기적 가치가 중요해지고 비재무요소가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공시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환경, 사회, 거버넌스와 같은 비재무 요소를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회계기준을 이끌어온 IFRS재단(국제회계기준재단)은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만들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만들고 있다. 비재무공시에 가장 앞서고 있는 유럽연합(EU)은 2023년 6월 ESRS(유럽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수정안을 공개했다. 우리나라도 2026년부터 ESG 공시를 상장사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예정이다.
기업의 미래
기업은 법이 인정한 사람, 즉 법인(法人)이다. 법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사람을 ‘자연인’과 ‘법인’으로 구분한다. 사람이 만든 제도인 기업이 사람을 향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를 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돈도 사람을 위해 만든 제도인데, 그 동안 이윤은 기업의 절대적 목적이 되었다. 수단이 목적이 된 셈이다. 새로운 기업은 미래시제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새로운 기업이 주류가 되도록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기업인, 근로자, 소비자, 공급망, 지역사회의 시민들이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