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기업과 사회] 금융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세상을 바꾸는 금융. 국내 어느 은행의 모토다. 냉정하게 수익을 좇는 금융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 금융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EU)은 2018년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한 열쇠를 금융에서 찾았다. 환경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이 분야에 돈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 발행된 사회적채권(Social Bond)은 팬데믹 이전보다 10배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채권은 사회문제 해결이나 완화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신한카드는 2019년 1000억원 규모의 사회적채권을 발행했다. 조달된 돈을 중소가맹점 지급 주기 단축 등 사회적 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활용했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이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도 사회적채권이 발행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녹색채권(Green Bond)이 인기를 끈 것은 오래전 일이다.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 등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는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도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까지 세 채권(ESG채권)의 누적 발행규모가 모두 172조원에 달한다(사회적채권 139조원, 지속가능채권 18조원, 녹색채권 15조5000억원).

지속가능연계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도 있다. 지속가능채권이 좋은 목적(지속가능성)을 위해 사용되는 채권이라면, 지속가능연계채권은 ESG 경영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등이 조정되는 채권이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10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연계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반도체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거둔 성과였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6년까지 57%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면 이자율이 낮아지고, 달성하지 못하면 이자율이 높아지게 설계된 채권이다.

2022년에는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연계대출(Sustainability-linked loan)이 등장했다. 지속가능연계대출은 대출 및 금리에 지속가능성을 연계하는 금융상품이다. IBK기업은행이 발행한 상품을 보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대출을 신청한 기업이 탄소 배출량, 물 사용량, 에너지 효율, 원자재 재활용률, 여성 및 장애인 고용 등 12가지 항목 중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금리를 낮춰 준다. 환경 및 사회문제 해결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업은 ESG를 실천해서 내실을 쌓을 뿐 아니라 금리 인하의 혜택을 받는다.

사회성과 보상채권(Social Impact Bond, SIB)은 정면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융기법이다. 민간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에 먼저 투자하고 일정한 사회성과가 도출되면 정부가 원리금을 보상하는 방식이다. 출소자 재범률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 사례를 보자. NGO는 금융기관(투자자)의 투자를 받아 이를 재원으로 재범률을 낮추기 위한 교육, 직업알선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 결과 재범률이 목표한 수치만큼 낮아질 경우 정부가 원리금을 보상한다. NGO는 활동 자금을 규모 있게 조달받고, 투자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한 후 추후 원리금을 보상받는다. 정부는 민간의 힘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출소자들의 재범으로 인해 투입돼야 할 예산을 절약한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국내에서도 경계선 지능 아동의 인지능력 향상 등 여러 사례가 시도되고 있다.

채권을 사는 투자자 입장에서 채권 발행의 목적은 본래 중요하지 않다. 그 회사가 신용이 있는지, 만기에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굳이 발행 목적을 따진다면 돈이 될 만한 일인지가 오히려 중요하다. 그런데 사회문제 또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채권을 발행하고 거기에 투자하는 채권시장이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돈을 버는 데도 도움이 되고, 최소한 채권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도 유익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속가능 분야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이 분야에 투자해서 이익이 창출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좋은 해결방법이지만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비싸다. 단순한 경제 논리로는 이를 구매하거나 이 분야의 사업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미친 도전이라고 여겼던 전기자동차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테슬라는 한때 포드, 지엠 등을 합친 것보다 주가총액이 컸다. 급기야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전기자동차 회사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가 새로운 기회가 된 것이다.

태양광, 풍력 등 에너지사업도 처음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수익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점차 대세가 되고 있다. 심지어 여러 나라에서 석탄발전보다 경제성이 커졌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가 주목받으며 자연스럽게 그에 투자되는 녹색금융도 부상했다. 돈이 환경 분야에 몰리기 시작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사회문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위험하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지속가능금융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무늬만 ‘지속가능’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따른다. 이름만 지속가능성 또는 ESG를 붙이고 내용은 기존 금융상품과 다를 바 없는 상품도 많다. ESG 워싱도 우려된다. ESG로 포장하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아서 소비자, 투자자 등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서 무엇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인지, 지속가능한 금융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분류체계인 택소노미가 등장한 이유이다. 그리고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하는 비율과 내용을 공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정의를 구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 길은 필요하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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