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모금하는 사람들] 운영비가 기부금 낭비라는 오해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단체가 운영비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 기부를 중단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기부자들은 직접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싶어 하고, 대상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프로그램 직접 경비로 쓰이는 것을 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 돈이 운영비로 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과연 운영비는 낭비이고, 잘못 쓰이는 것인가? 

잠시 재난 상황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가장 빠르고 즉각적으로 일하는 단체에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빠르게 대응을 할 수 있으려면 평소 관리가 체계적이고 준비도가 높아야 하며 운영비가 더 들어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일을 잘하는 것을 선호하면서도 내 돈이 운영비에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부금을 인건비로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왠지 내 기부금으로 남의 인건비나 늘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싫고, 인건비가 늘어나면 지원비가 줄어서 일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반증하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의 조셉 스틴(Joseph Stinn) 교수는 비영리단체의 효율성과 간접비 비율은 서로 정비례하고, 단체의 효율성과 모금비용은 역의 관계라고 말했다. 행정운영과 인력체계가 잘 유지돼야 단체가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효과적으로 일하는 단체는 운영비와 인건비가 높다는 것이다. 반면 단체의 기본 운영체계와 인건비에 투자하지 못하면 좋은 인프라와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져 업무역량이 떨어지게 되며, 이를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모금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이렇게 보면 비영리단체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간접비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문제 해결과 혁신 과제를 위해 비영리 세계로 뛰어든 인재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까지 버티려면 현실적인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출발해서 각기 다른 형태로 조직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활동한다. 획일화된 틀 안에 모두를 가둘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비영리단체의 재정운영의 기준을 자율에 맡긴다. 대신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해 기부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단체 스스로 증명하고 설명하도록 엄격하게 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정부 또는 어떤 평가단체나 감시기구가 단체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들이 스스로 기부자와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추구하는 개념이다. 

지속가능성의 다른 표현은 건강함이다. 더 건강한 단체가 더 오래, 더 적은 비용으로도 좋은 사업을 잘 할 수 있다. 단체가 지속가능하게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보유하도록 하는 비용이다. 이렇게 보면 간접비는 부대비용이 아니라 단체의 미션 그 자체다. 간접비에는 행정운영비, 인건비, 모금경비 등이 포함된다. 비슷한 말 같지만 각기 다르다. 행정운영비는 넉넉해야 관리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 인건비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해야 한다. 후원으로 유지되는 기관의 인건비가 소위 잘나가는 대기업과 비교될 수는 없지만 너무 적으면 인재가 떠난다. 모금경비는 말 그대로 모금을 위한 홍보와 광고, 마케팅에 필요한 돈인데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 우리나라 기부금품법에서는 모금경비를 최대 15% 이하로 정하는데, 많은 이들이 여기에 단체의 인건비가 다 포함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모금경비는 말 그대로 모금활동에 관련된 인건비, 광고·마케팅비, 기부자 관리 경비, 회계보고 등에 한정된다. 단체 운영과 사업과 관련한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간접비는 적은 것이 미덕이 아니라 현실적인 근거를 따라 잘 사용돼야 한다. 

이젠 단체도 기부자도 모두 현명해져야 한다. 일은 사람이 한다. 현명한 주인은 일 잘하고 성과를 내는 사람을 잘 골라 일을 맡길 줄 알지만, 어리석은 주인은 사람 보는 법을 모르고 또 믿고 맡기지도 못한다. 현명한 주인을 만난 일꾼들은 믿음에 부응해 큰일을 해내지만, 믿음 없는 주인을 만난 일꾼은 눈치만 보고시킨 일만 겨우 한다. 기부자들은 단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더 큰 믿음을 주어야 하고 단체들은 기부자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더 성실하고 지혜롭게 소통해야 한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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