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은퇴 후 NGO에서 펠로우십, 새로운 ‘눈’을 키웠어요”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시리즈 마지막 편, ‘시니어 공익 현장을 가다’

은퇴 후 삶이 아득하다. 100세 시대에 퇴직을 해야 하는 5060세대가 그렇다. 준비 없이 막상 닥치니 불안하고, 일을 더 하고 싶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1955년에서 1963년 사이 태어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50+세대’의 현주소다. 많은 전문가들은 100세 시대에 걸맞게 은퇴 공식과 고용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시니어 일자리 문제를 들여다보는 기획 시리즈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를 준비했다. 마지막 편은 ‘시니어 공익 현장을 가다’이다. NGO에서 3개월동안 인턴으로 활동한 시니어들 3명과 NGO, 전문가들에게 시니어와 제3섹터와의 시너지를 물었다.   <편집자 주>

 

김영조(63)씨는 지난해 교장직에서 물러난 후 다시는 교육계에 발을 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40여년간 앞만 보고 달렸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출발하고 싶었기 때문. 퇴직 후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에 편입해 사진과 영상 제작을 배웠다. 하지만 퇴직 1년만에 다시 교육 관련 일을 시작했다. 아동청소년 환경교육 NGO인 ‘자연의벗연구소’ 인턴이 돼 환경 교육 기획과 판로 개척에 참여한 것. 김씨는 “그동안의 경험과 NGO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를 연결시켜 본 결정”이라면서 “인턴 과정이 끝난 후에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은퇴 후에도 일과 열정이 필요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시NPO지원센터와 스위치온은 김영조씨처럼 은퇴 후 보람과 일자리를 모두 찾는 시니어들을 위해 ‘50플러스NPO펠로우십’(이하 펠로우십)을 운영했다. 펠로우십은 공공영역에서 제2의 커리어를 꿈꾸는 중장년층과 이들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제3섹터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펠로우십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매월 57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활동비 월 46만원 가량을 지원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서울시NPO지원센터는 지난 6월 50∼67세를 대상으로 시니어 참가자와 참가단체를 모집했다. 지난 8월 시니어 21명을 선발, ‘매칭데이’를 열어 아름다운가게, 한국자원봉사문화 등 13개 NPO, 사회적기업과의 직무를 매칭했다. 시니어 참가자들은 9월부터 12월 초까지 약 3개월간 본격 인턴 활동에 나섰다.

지난 11일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자연의벗연구소에 근무했던 김영조씨, 국제개발협력단체인 호이와 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각각 일했던 석동화씨, 이종화씨를 만났다. 제3섹터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경험이 만족스럽냐는 질문에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했다.

특히 김영조씨는 매칭데이 때 내렸던 결정에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단체의 요구조건과 자신의 능력이 딱 일치하는 좋은 사례였기 때문.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에 들어가 짐이 되면 안되잖아요. ‘자연의벗연구소’에서 가장 필요로 하던 일이 바로 학교 판로 개척과 중앙부처와의 네트워킹이었는데 교육공무직에 오래 있었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실제 인턴 입사 두 달만에 서울시교육청과 학교 교장직을 두루 거쳤던 경험을 살려 교육청과 MOU 체결을 성사시켰죠.”

3개월간 자연의벗연구소의 시니어 인턴으로 활동했던 김영조씨가 자신의 자리를 흐믓하게 쳐다보고 있다. ⓒ김영조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던 석동화(64)씨도 NPO 인턴 활동이 무척이나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2012년 은퇴해 조경을 배우며 한적함을 즐기던 석씨는 문득 사회생활 때 느꼈던 소속감과 성취감이 그리웠다. 정기적으로 출근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고 싶었던 그는 펠로우십에서 국제개발협력단체인 ‘호이’를 만났다. 호이와의 만남을 행운이라고 칭하는 석씨는 “호이를 통해 제3섹터를 보는 ‘눈’이 뜨였다”면서 “교육봉사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NPO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15년 넘게 경력단절 여성으로 살았던 이종화(59)씨는 자원봉사를 즐겨하다 봉사에 관심이 생겨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노인복지학을 배웠다. 사회복지사와 노인요양보호사 등 관련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경력단절과 나이를 이유로 그를 불러주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데이터 관리직으로 3개월간 일했다. 이씨는 능력을 인정 받아 단체 측과 따로 계약을 맺고 내년 1월부터 일하기로 결정됐다. 

“NPO라는 새로운 환경에 긴장을 많이 하고 들어갔는데 적응하는 데 어렵지 않았어요. 젊은 친구들과 위화감 없이 일할 수 있었고 업무 또한 금방 따라갈 수 있었죠. 펠로우십을 계기로 재기의 희망을 맛본 셈이에요.”

 

◇시니어와 제3섹터의 시너지, 효과 보려면?

 

시니어의 제3섹터 도전, 평가는 어떨까. 참가 단체와 인턴 시니어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서울시NPO지원센터가 지난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6개 비영리단체 중 62%가 50+세대와 함께 일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 11일 열린 펠로우십 평가회에 모인 시니어의 76.5%가 NPO에서의 인턴 경험을 긍정적, 향후 참여할 의사를 묻는 질문과 참여를 권할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100% 모두 ‘그렇다’로 대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니어의 제3섹터 진출에는 재원마련, 인식 전환 등 여러가지 과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호이 창립9주년기념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석동화씨. ⓒ석동화

펠로우십의 직무설계를 맡았던 김난희 스위치온 대표는 ‘제3섹터의 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NGO는 큰 단체 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시니어를 고용할 여유가 거의 없다”면서 “중소기업의 청년인턴제도처럼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평가회에서도 줄곧 영세 NPO의 재원 마련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시니어를 고용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육하고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영세 NPO는 감당할 여력이 없다”, “고용을 하더라도 파트타임 형식으로 일하는 시니어가 단체에 완전히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등의 한계점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김영조는 “영세 NPO의 열악한 업무 환경에 크게 놀랐다”면서 “직원 서너명이 엄청난 일을 해내면서 시니어 인턴까지 챙기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나마 내가 교육직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갔다면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가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체 또한 시니어에게 부여할 직무를 두고 고민을 했다. 펠로우십에 참가했던 이혜란 아름다운커피 팀장은 “대체로 상반기에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하반기부터 마무리를 하는데 3개월 정도의 단기 인턴십 제도는 일부분만 체험하게 해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면서 “또 시니어가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끼려면 단순 업무를 넘어 일을 통해 전문성을 쌓아가야 하는데, 시니어 대부분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이를 느끼기 어렵다”고 밝혔다.

업무관련 사전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기본적인 컴퓨터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해 원래 맡으려던 업무에서 다른 일을 맡긴 단체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중간지원단체가 관련 교육을 하거나 시니어 스스로 미리 기본적인 업무능력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진호 신나는조합 과장은 “시니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단체는 고용 전 철저하게 직무설계를 하고, 시니어는 기본적인 업무 능력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덧붙여 “사람이 부족한 제3섹터와 풍부한 경험을 갖춘 시니어가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선 시니어뿐 아니라 제3섹터에게도 물리적 인프라는 물론 다양한 소프트웨어적 지원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자원봉사문화의 시니어 인턴이었던 이종화씨가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미소를 지으며 참가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종화

시민교육 전문가인 위정희 나눔국민운동본부 나눔교육센터장은 소프트웨어적인 지원과 동시에 정부 주도의 지원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시니어 공익활동 중간지원단체는 대부분 정부 주도의 ‘낙수효과형’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는 단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민주도형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는 힘들다는 것. 위 센터장은 “큰 단체들이 성장해 많은 시니어들이 혜택 받도록 기다리는 것 대신 작은 단체들을 키우거나 기업과 협력해 교육센터, 프로그램 등을 전국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부는 정책의 큰 틀을 만들고 기업은 자본을 투자하며 운영은 시민사회가 도맡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당장 시니어의 사회공헌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의 시니어, 30년, 50년 후의 시니어도 손쉽게 사회공헌할 수 있도록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는 문화가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펠로우십은 지난 7일 종료됐다. 총 18명의 시니어 인턴이 12개의 NPO에서 펠로우십을 경험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서울시NPO지원센터, 스위치온은 올해 처음 진행했던 펠로우십을 내년에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취합, 분석 자료를 발간할 예정이다. 김만희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본부 본부장은 “펠로우십을 통해 시니어와 제3섹터의 시너지를 확인했다면서 “내년에는 비영리단체 25개, 시니어 50명으로 참가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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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② 보기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③ 보기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은퇴 후 사회공헌 제대로 하려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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