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시리즈의 두 번째 편, 시니어 사회공헌 집중 점검
시니어, 시민사회, 전문가에게 듣는 ‘시니어 제3섹터 참여, 이것이 힘들다’
A씨처럼 은퇴 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익 활동가를 꿈꾸며 관련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높은 장벽을 체감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익 생태계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 지원 인프라 부족 등이 시니어의 공익 분야 진출을 발목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니어는 단점 지우고, 제3섹터는 열린 마음 가져야
김만희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본부 본부장은 교육 프로그램, 지원센터 등의 인프라 부족도 문제이지만 시니어 개개인의 업무 방식이 시민사회의 수요와 맞지 않는 점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익 관련 취업 및 창업 교육을 하다 보면 시니어들의 다양한 단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중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낯선 분야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점, 소통 기술이 부족한 점, 자기 중심적(완결적) 일 처리 등은 시니어의 제3섹터의 진출을 막는 요인이죠.”
그는 “시니어의 ‘공익 풀(pool)’이 커지려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 시민사회는 시니어들이 그동안 일해왔던 방식과 매우 다른 업무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제 더 이상 지시자, 관리자가 아닌 ‘동업자 마인드’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시니어들이 공익활동에 나서기 전 제3섹터 업무 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익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희생에 대한 ‘마음정비’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 현재 시니어가 시민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다. 심지어 버는 돈보다 활동에 쏟는 에너지가 더 큰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공익에 대한 신념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이런 희생을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50+세대의 은퇴설계와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50플러스코리안’ 현정주 이사는 “현재 50플러스코리안에는 수많은 은퇴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데 실제 공익활동가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공익을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다”면서 “은퇴 전부터 혹은 은퇴 후라도 자원봉사를 하거나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시니어들의 노력만큼이나 시민사회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3섹터가 고정관념 때문에 시니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경향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회적기업 육성 비영리단체이자 시니어 창업 및 취업을 도와주는 ‘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조합'(이하 신나는조합)은 사회적기업 70곳을 대상으로 시니어 매칭 수요조사를 진행한 결과, 사회적기업의 4분의 1만이 시니어 채용에 긍정적이었고 나머지는 시니어 채용에 관심이 없었다. 사회적기업 대부분이 시니어 채용에 부정적이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셈이다.
김진호 신나는조합 과장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경우 사회적 미션은 가지고 있지만 어느정도 이윤을 내야하기 때문에 시니어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욕할 수 없다”라면서도 “사회적 가치에 미션을 두고 있는 단체는 효율성만을 좇아서는 안되며 시니어는 재교육에 집중하고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중간지원단체, 교육 프로그램 등 지원 인프라 부족
시니어들이 사회공헌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필수적인 재교육을 해주는 중간지원단체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오정민 서울시50플러스재단 홍보협력실 매니저는 “공익 분야는 50+세대에게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에 은퇴자 개인이 혼자 공부하기 매우 힘들다”면서 “이를 교육하고 시민사회 영역과 연결해주는 중간지원단체가 꼭 필요하지만, 그 수가 많이 부족하고 그나마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의 경우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창업 및 취업 지원 활동 기관인 50플러스캠퍼스가 서울 은평구(서부 캠퍼스), 마포구(중부 캠퍼스) 두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추후 동부, 북부, 동남부, 남부 캠퍼스를 새로 개관할 예정이다. 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시 도심권50플러스센터와 동작50플러스센터, 영등포50플러스센터를 운영해 창업과 사회공헌, 커뮤니티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비정부기관의 대표 중간지원단체로는 신나는조합과 50플러스코리안, 라이나전성기재단 등이 있는데 단체 대부분이 서울에 있어 현실적으로 수도권 지역의 시니어들만 이용 가능하다.
반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는 중간지원단체가 거의 없다. 최근 설립된 부산광역시 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50+부산포털, 대학교수와 기업 대표, 의사, 약사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모여 지난달 발족한 50플러스 충남 등이 지방에 있는 유일한 공익일자리 관련 중간지원단체다. 그동안 지자체와 노인일자리지원단체가 협력해 일자리 교육 등을 지원한 적은 많지만 이는 사회공헌이 아닌 일반직군에 해당됐다. 수도권에 있는 중간지원단체의 교육을 원격으로 들을 방법도 거의 없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나 신나는조합, 한국50플러스 등 대부분의 지원단체의 교육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김진호 과장은 “지방에 살고 있는 시니어들은 공익 관련 교육을 듣거나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으려면 수도권까지 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나”라면서 “지방의 중간지원단체 설립, 원격 강의 등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중간지원단체의 운영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교육 전문가인 위정희 나눔국민운동본부 나눔교육센터장은 “국내 시니어 공익활동 중간지원단체는 대부분 정부 주도의 ‘낙수효과형’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는 단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교육과 창업, 취업이 이뤄지는 등의 시민주도형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위 센터장에 따르면 정부 주도의 중간지원은 구조적으로 민간에 비해 운영이 제약적일 수밖에 없고 사회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 또 아무리 규모가 커도 대형 중간지원단체 몇 곳이 시니어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이에 위 센터장은 “큰 단체들이 성장해 많은 시니어들이 혜택 받도록 기다리는 것 대신 작은 단체들을 키우거나 기업과 협력해 교육센터, 프로그램 등을 전국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부는 정책의 큰 틀을 만들고 기업은 자본을 투자하며 운영은 시민사회가 도맡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퇴 전부터 ‘인생설계’ 준비해주는 미국, 일상 학습권 보장하는 스웨덴…우리는?
교육의 시기와 방법도 중요하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의 구호활동가로 활동 중인 김승수(63)씨는 “은퇴 후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들었지만 제2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려니 무척 힘들었다”면서 “은퇴 전부터 이런 준비를 했다면 준비 과정도 덜 힘들고 결과도 더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씨처럼 많은 시니어들이 은퇴 후에 재교육을 받는 것이 다소 버겁다고 이야기한다.
시니어 및 사회공헌 전문가인 폴에릭 틴백 ‘제3의커리어’ 대표는 “과거에는 어른 다음에 바로 노인이 됐지만 이제는 그 사이에 ‘50+’라는 개념이 생겼다”면서 “내가 살고 있는 덴마크의 경우 100년 전보다 지금의 평균 수명이 약 25년이나 늘어서 시니어들은 이 긴 세월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냐는 고민을 하게 됐고, 시니어들에게 이 시기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치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것처럼, 시니어도 이 시기에 인생 대전환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김만희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본부장은 미국처럼 은퇴 전부터 사회공헌 또는 인생설계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슈가 사회 주요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 미국의 ‘앙코르펠로우십’ 모델이 대표적이죠.”
김 본부장에 따르면, 앙코르펠로우십은 기업 퇴직 예정자나 지역사회의 퇴직자들을 모아서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관으로 펠로우십(fellowship)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특히 미국의 인텔, 퀄컴 등은 퇴직 예정자 중 향후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관에 매칭해준다. 자원자들은 약 1000시간 인턴십(풀타임 근무 시 6개월, 반나절 근무 시 1년 중 본인 선택)을 한 뒤, 2만5000불의 활동비와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스웨덴, 네덜란드 등에선 시민들이 인문학부터 자연과학, 법, 정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스터디 클럽’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총 32만개의 스터디클럽이 개설돼 있는 스웨덴에선 5인 이상이 모이면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클럽을 조직할 수 있으며, 정부에서 요구하는 큰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클럽 운영비를 자유롭게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정부가 시민교육의 큰 틀을 만들고 재정적 지원을 하며 시민들은 실질적 운영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스웨덴 국민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이 학습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할 수 있기에 은퇴 후 새로운 일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국내에도 많은 기업들이 은퇴자 연금 서비스와 평생교육 등의 은퇴설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교육과 실습, 금전적 보상이 모두 이뤄지는 통합 서비스가 아니라 연금 형식의 금전적 지원만 제공하는 수준이다. 예비 은퇴자가 사회공헌 활동을 원한다면,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이 거의 없다. 또 북유럽의 일상 학습과 유사한 평생교육원 교육 프로그램들이 존재하지만 수강비용이나 인프라의 위치 등을 고려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종류 또한 인문학, 취미생활, 재취업(비공익분야)으로 한정되어 있다.
김만희 본부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은퇴 자금을 연금형 또는 일시금 형식으로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제는 은퇴자의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면서 “기업의 풍부한 자본과 기획력, 네트워크와 중간지원단체의 운영 노하우가 접목되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정희 센터장은 “은퇴 전부터 사회공헌과 공익형 일자리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가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나와야 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시니어의 사회공헌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의 시니어, 30년, 50년 후의 시니어도 손쉽게 사회공헌할 수 있도록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는 문화가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