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시리즈 첫 번째 편,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유통 전문가에서 구호 활동가로 제2의 인생 맞은 김승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인터뷰
다국적 물류 회사에서 은퇴한 뒤, 국제의료봉사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가로 아프리카 파푸아뉴기니, 남수단, 우간다 등 해외 이곳저곳을 누비는 김승수(61)씨.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서울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지난달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됐는데, 곧 에티오피아 사무소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예순을 맞이한 그였지만, 열정만큼은 20대 청년 못지않았다.
◇은퇴 후 신세계와 조우… 청년시절 꿈 되찾아줘
“다국적 유통회사인 TNT에서 영업, 마케팅 전문가로 20여년간 일했습니다. 규모도 크고 글로벌 기업이라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았는데, 나이가 드니 은근한 퇴직 압박은 물론 쳇바퀴처럼 도는 내 인생이 지루해서 2011년 퇴사했죠.”
정년 퇴직을 몇 년이나 남기고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은퇴를 만류했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고, 문득 모험을 즐겼던 그의 청년시절이 떠올랐단다.
“동창들은 저 보고 성공했다고 해요. 좋은 직장에 화목한 가정… 그런데 스스로 만족이 안됐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경험하는 일을 즐겨 했어요.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꿈을 한 켠으로 밀어두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죠. 이제는 자식도 어느 정도 다 컸고, 큰 돈 들어갈 일이 많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바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모험’이요.”
퇴직 후 지인으로부터 임원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동종 업계로의 이직이 아닌 새로운 분야를 맛보길 원했다. 은퇴 후 끊임 없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업 교육, IT 교육 등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이 취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씨는 “기업 입장에선 시니어들을 사원으로 채용하길 꺼려한다”면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직원으로 두길 꺼려하고 시대에 뒤처져 일을 잘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차례 ‘서탈’(서류전형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를 구호 활동가의 세계로 이끌어 준 건 ‘국경없는의사회’였다. 2015년 국경없는의사회의 ‘국제 구호 활동가 모집’에 지원한 것. 김씨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곳에 파견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활동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활동가의 길을 멀고도 험난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까다로운 활동가 채용 시스템 때문이었다. 서류심사와 여러 차례의 면접 심사를 거친 뒤 채용이 결정됐지만, 곧바로 해외 사무소에 파견되는 게 아니었다. 먼저 채용 풀(pool)에 합격자 정보를 입력한 뒤 해외 사무소로부터 특정 분야의 인력 충원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채용 소식을 기다리기를 몇 달, 마침내 2015년 말 파푸아뉴기니 사무소에서 인사 및 경영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몇 주간 안전 및 직무 관련 교육을 받고 지난해 1월 파푸아뉴기니행 비행기를 탔다. 새로운 세계로 첫 발을 디디는 순간. 김씨는 걱정보다 신세계에 대한 기대가 앞섰다.
지난해 1월 시작된 김씨의 여정은 올 6월까지 이어졌다. 파푸아뉴기니에서 6개월여 동안 일한 뒤 그해 10월 남수단 사무소로 이동했다. 올 1월 한국에서 한달 남짓 짧은 휴식을 가진 뒤, 지난 2월 우간다 사무소로 떠나 지난 6월 귀국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아시아 한 곳, 아프리카 지역을 두곳이나 다녔다. 문득 60이 넘은 그의 건강이 걱정됐다. 몸 상태가 괜찮은지 묻자, 김승수 활동가는 “살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니 체력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시니어 대부분 낯선 세계에 겁먹어…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낯선 세계에서의 활동은 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넘치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구호 활동가의 일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더운 날씨와 낯선 환경에,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전을 겪게 됐단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워낙 큰 조직이기 때문에 매뉴얼이 잘 돼 있어, 업무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런데 더운 날씨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게 조금 힘들었습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밖을 나설 수가 없고 냉방 시설도 잘 없어서 선풍기와 부채로 더위를 났죠. 진짜 문제는 치안이었어요.”
김씨는 “파푸아뉴기니 사무소에서 근무한 6개월 동안 포트모르즈비(Port Moresby) 거리를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파푸아뉴기니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상대 강력 범죄율이 매우 높은 나라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진 독재 정치로 인해 부패와 타락이 만연하고, 경제 상황도 매우 열악해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
일하는 방식도 놀라웠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현장에선 각 상황에 맞는 긴급 대응이 이뤄졌다. 현장은 어느 곳보다 순발력과 위기대처능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곳이었다. 다국적 기업에서 20여년간 관리자로 일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그였지만, 현장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는 “신입사원의 자세로 인사 및 경영관리 직원 교육 매뉴얼은 물론 현지 문화와 환경, 사회 문제들을 열심히 공부했다”면서 “특히 세계 각지에서 온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을 제외하고 일반 사무직 활동가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나이대인 중장년층이었어요. 그 중엔 은퇴자도 있었고 구호활동을 위해 휴직을 하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이 일을 하고 있지만 궁금해서 ‘구호활동을 왜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대부분 ‘그냥 하고 싶어서 한다’고 답하더군요.”
김승수 활동가는 충격을 받았다. 구호 활동가에겐 일정 활동비가 나오지만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세계 오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한다. 구호 활동가로서 의지를 단단히 세우고 온 자신과 달리, 그들은 이런 활동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는 “선진국은 나눔 문화를 일찍이 보편화하다보니, 동료들은 나눔을 자신을 ‘희생’하는 거창한 미션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동료들의 여유가 부러우면서도 그들처럼 나눔을 일상화하자고 다짐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환경은 물론, 만나는 사람, 가치관 등 모든 것을 새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처음엔 “다 늙어 사서 고생한다”고 했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에서 남수단, 우간다를 누비며 구호 활동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그를 본 지인들은 이제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얼마 전 만난 대학교 동창들도 그를 부러워하며 어떻게 하면 구호 활동가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우리 나이대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변화에 성공한 이를 부러워해요. 사실 변화, 도전이 대단한 게 아니에요. 자신이 잘 하는 일, 익숙한 일에서 약간씩 변형을 주면 돼요. 예를 들어 과거 교사 생활을 했던 사람이 교육 관련 사회적 기업을 세울 수도 있고, 나눔 교육가로 변신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왜 안 하느냐. 자금도 문제지만 용기가 부족해서요. 요즘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줘요. 시니어 취업이든 창업이든. 실효성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에 앞서 시니어들이 도전 자체를 안 하는 게 문제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에 대한 공포가 심하거든요. 왜? 부모님, 자식, 아내, 사회적 위신 등… 지킬 것이 많아지니까요. 현실 세계를 붙들고 있던 미련의 끈을 놓아야 해요. 그러면 변화에 대한 의지를 세우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관심사, 재능 바탕으로 한 활동 찾는 게 관건
변화에 대한 용기를 갖는 것. 그가 말하는 시니어 인생 설계 1단계다. 하지만 용기만으로는 계획 짜기가 막막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에 도움을 받을지 등등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는 은퇴를 앞둔 혹은 은퇴자들에게 “먼저 그동안 자신이 지대한 관심을 뒀거나 잘 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구호 활동가와 같은 공익 관련 일자리도 일반 구직 활동 및 창업과 비슷합니다. 창업할 때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하라고 하죠. 구직 또한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하고요. 저는 무역 및 유통업에 종사했기에 영어를 잘했고 잦은 출장으로 외국 문화를 자주 접했습니다. 관리자 경험도 있기에 인사 및 경영 관리 능력도 있었고요. 이런 저의 경험이 해외 구호 활동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와 딱 맞아 떨어진 거죠.”
그는 수십년간 사회 활동을 해 온 시니어들의 능력과 연륜을 일에 매칭(matching)시키라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의족 제조회사에 다녔던 사람은 반려동물이나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의족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세우거나, 그런 사회적기업에 일원으로 활동 또는 관련 NGO에서 일하는 식이다.
특히 공익 분야에서의 시니어들의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문제가 복잡 다양해진 요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일자리도 늘고 있다는 것.
사실 그의 조언은 돈이 당장 급한 은퇴자들에게는 100%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도 인정하듯,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공익 사업 특성상,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승수 활동가는 “모든 시니어들에게 공익 관련 일자리를 권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서도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하려는 시니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면서 “자신이 쌓은 경험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욕이 가득한 시니어들에게 ‘공익 활동가’가 제격”이라고 평했다. 자원봉사, 사회적기업가, 구호 활동가 등과 같은 공익 활동가는 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살리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또 긴 후반 인생에 약간의 경제적인 도움도 얻을 수 있는 일. 이런 삼박자를 갖춘 직업이라는 것.
도전에 실패해도 삶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공익 활동의 장점이다.
“실패해도 잃을 게 많지 않아요. 물론 사회적기업 창업에 전재산을 쏟아 부을 정도의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전제이지만요. 기껏 해야 초기 창업자금 조금과 실패에 대한 상처이겠죠. 청년시절보다 경제적 여유는 있으면서 지킬 것은 많아진 중∙노년들이 도전해 볼만하지 않나요?”
우간다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된 그는 오는 29일과 8월 5일 국경없는의사회 서울 사무소가 주최하는 ‘2017년 현장 구호활동가 채용 설명회’에 대표 강연자로 나선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경험한 해외 현장 내용과 구호 활동가로서의 삶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채용설명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연 때문에 에티오피아로의 출국을 미뤘다는 그는, 강연 후 바로 해외 사무소로 떠난다. 팔다리가 움직이는 한,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 구호 활동가를 계속하겠다는 김승수 활동가. 그의 눈은 젊은이보다 빛났고 열정은 뜨거웠으며 의지는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