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 아닌 연결”…자원봉사, ‘좋은 일’ 프레임을 넘어서야

IAVE 아태 15개국 논의, ‘자원봉사의 미래’ 한국서 첫 포문
2026년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 앞두고…미래 어젠다 제시

“자원봉사를 더 잘 알리고, 더 잘 지원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를 책임지고 실현해야 할 주체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숲과나눔’에서 열린 ‘자원봉사의 미래를 위한 글로벌 행동 촉구 대화’ 현장. 윤영미 사단법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이 던진 질문에 행사장 안의 공기가 묵직해졌다. 이 자리는 세계자원봉사협회(IAVE)가 주도하고 UN이 선포한 ‘2026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를 앞두고 마련된 국제 워크숍으로, 국내에서는 첫 개최다. 이날 행사에는 자원봉사 관련 단체, 학계, 기업, 공공기관 CSR 총괄 등 자원봉사 현장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20여 명의 리더들이 모여 자원봉사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방향을 논의했다.

지난 12일 열린 ‘자원봉사의 미래를 위한 글로벌 행동 촉구 대화’에서 윤영미 사단법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용재 C영상미디어 기자

◇ “도움” 아닌 “권리”…자원봉사 인식 바꿔야

이날 참가자들은 자원봉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진 KPR 상무는 “자원봉사를 단순히 ‘좋은 일’이나 ‘선한 행동’으로만 메시지화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이제는 시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푸는 사람 vs 받는 사람’ 구조 또한 한계로 지적됐다. 이명신 비영리경영연구소 대표는 “그동안 자원봉사는 ‘누군가를 돕는 행위’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이제는 자원봉사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촉진자 역할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2일 ‘자원봉사의 미래를 위한 글로벌 행동 촉구 대화’에서 참여자들이 소그룹 토론을 진행하는 모습. /김용재 C영상미디어 기자

오선영 카카오모빌리티 이사는 자사에서 운영한 자원봉사 연계 프로그램 ‘기브셔틀’을 소개하며 “자원봉사를 ‘힙(hip)’하게 만들면 참여도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유명 강연자와 여행을 접목한 이 프로그램은 티켓팅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참가자 중 46%가 첫 자원봉사 경험자였다고 설명했다. 그중 83%는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이어갔다.

◇ 자원봉사에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자원봉사의 사회적 영향력을 정량적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무리 의미 있는 활동이라도, 눈에 보이는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기업의 지원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는 “기업들은 내부 설득 과정에서 자원봉사의 가치를 수치로 증명하길 요구한다”며 “그래서 손편지를 주고받는 활동이 실제로 어떤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화폐 가치로 환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작업이 곧 기업의 재정을 유입시키고, 더 큰 변화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한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는 “자원봉사에 왜 예산을 써야 하는지, 경영진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비영리단체와 기업 간 협업을 확대하려면, 단체가 가진 전문성과 활동 결과를 정리해 신뢰할 수 있는 보고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지난 12일 ‘자원봉사의 미래를 위한 글로벌 행동 촉구 대화’에서 우영화 은평구자원봉사센터장이 소그룹에서 논의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용재 C영상미디어 기자

참여자 설문조사에서 ‘자원봉사 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정보 부족’이 꼽혔다. 이장웅 공무원연금공단 실장은 “활동처를 구해야 하는 수요 기관과 봉사자를 원하는 곳이 서로를 잘 모른다”며 “봉사자 인력은 있지만 이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할 네트워크와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자원봉사 생태계 전반을 연결하는 ‘중간다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소규모 봉사팀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중간지원조직이 교육과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자원봉사 리더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재정 지원 확대도 함께 제안됐다. 각 주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자원봉사의 지속성과 사회적 영향력 역시 함께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효경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는 “지역 기업 및 소상공인, 지역 주민, 관공서 등이 함께 팀을 이뤄 지역문제를 발굴하고 해결까지 이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될 때, 지역사회 안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자원봉사의 미래를 위한 글로벌 행동 촉구 대화’에서 토론한 내용이 적힌 메모지의 모습. /김용재 C영상미디어 기자

한편, 한국에서 열린 이번 워크숍은 IAVE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 국가 중 최초로 개최된 행사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의견은 IAVE 월간회의를 거쳐 UN 등 국제기구에 전달될 예정이다.

윤영미 사단법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은 “이번 워크숍은 글로벌 차원의 담론을 논의하는 동시에, 자원봉사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목표를 구체화하는 자리”라며 “다양한 시선이 이해관계를 넘어 협력한 만큼, 이 논의가 새로운 변화를 여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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