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음악으로 장애 넘은 청년들, 세상과 하모니를 연주하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발달장애 청년으로 구성장애에 대한 편견 깨고 사회자 역할까지 해내
음대 졸업자로 구성된 ‘미라콜로 앙상블’ 창단 꾸준히 연주 활동하며 장애 인식 개선 교육도
대학 입학한 단원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로 교수·학생 인식 변화

“저는 엄마가 힘들어하실 때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해드리는데요. 엄마는 제 연주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하세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랜지색 조명이 무대 위를 감싸자,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플루트 단원 홍정한(23·발달장애 3급)씨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달장애 청년으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지 벌써 5년. 무대 위에서 수많은 곡을 연주해봤지만, 6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사회를 본 건 처음이다. 옆에 서 있던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트럼펫 단원 송아름(20·발달장애 2급)씨가 용기를 주듯 “정한이 오빠는 이번에 제가 합격한 백석예술대학교를 졸업한 선배님”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던 손도, 굳게 경직됐던 얼굴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내 자유로워졌다. 지난 11월 15일, 서울 신사동 장천아트홀에서 열린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제7회 정기연주회 현장. 두 단원의 사회로 객석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우리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 희망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 연주곡은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중 미뉴엣, 파랑돌’입니다.”

 ①지난 15일 열린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제7회 정기연주회에서 플루트 단원 홍정한씨(오른쪽)와 트럼펫 단원 송아름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 ②바이올리니스트와 이동현군이 넬라판타지를 협연하고 있다.

①지난 15일 열린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제7회 정기연주회에서 플루트 단원 홍정한씨(오른쪽)와 트럼펫 단원 송아름씨가 사회를 보고 있다. ②바이올리니스트와 이동현군이 넬라판타지를 협연하고 있다.

◇장애 편견 넘어선 새로운 시도, 정기연주회의 감동으로

창단 후 7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는 모든 순간순간이 도전이었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 어려운 발달장애청년들의 손에 악기를 쥐어주고, 악보를 익히는 과정이 그랬다. 연주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의젓하게 박수를 받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연주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편견을 깨는 이들의 도전은 이번 일곱 번째 정기연주회에서도 계속됐다. 단원들이 직접 무대 앞으로 나와, 곧이어 연주할 곡을 소개하는 등 사회자 역할을 맡은 것. 김희은 하트하트재단 문화복지사업부 부장은 “단원들을 응원하는 분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고 싶었다”면서 “혹여 정기연주회 분위기를 망칠까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막상 끝나고 보니 신선하고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반응이 많아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기연주회가 끝나고 장천아트홀을 나서는 이들 대부분이 “발달장애 청년들이란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기연주회에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와 협연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단원 이동현(16·역삼중)군은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바이올리니스트 김주현씨와 넬라 판타지아를 듀엣으로 연주했다. 김주현씨는 “기성 오케스트라 못지않게 소리가 탄탄하고, 음색에서 단원들의 마음이 느껴졌다”는 말로, 정기연주회의 감동을 전했다.

◇장애 인식 개선 교육 위해 학교로 찾아간 ‘미라콜로 앙상블’

지난 1월, 하트하트재단은 음악대학을 졸업한 발달장애인 연주자로 구성된 ‘미라콜로(miracolo·기적) 앙상블’을 창단했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프로 연주자로 활동하기 어려운 발달장애 연주자들의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미라콜로 앙상블에 소속된 7명의 단원 모두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고 성장해온 연주자이다.

이들은 하트하트재단으로부터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현재 곳곳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찾아가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하 해피 스쿨)’도 진행하고 있다. 정화영 하트하트재단 문화복지사업부 담당자는 “앙상블 단원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겪었던 학교 폭력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직접 들려준다”면서 “장애를 가졌지만,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총 10개 초등학교, 중학교 2곳에서 ‘해피 스쿨’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5836명의 학생이 미라콜로 앙상블을 만났다. 학생들의 인식 변화는 놀라웠다. 하트하트재단은 ‘해피 스쿨’ 프로그램 전후, 동일한 내용의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형용사’를 선택하도록 한 것. 미라콜로 앙상블을 만나기 전 평균 13점에 그쳤던 점수가, 이후 17점으로 크게 향상됐다(20점 만점에 16점 이상은 ‘긍정적’, 16점 미만은 ‘부정적’ 인식으로 평가). 또한 ‘해피 스쿨’ 홈페이지에는 “장애인과 우리는 똑같다는 것을 배웠어요” “미라콜로 앙상블의 팬이 됐어요”라는 학생들의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이 입학한 대학, 장애를 품다

“어려워도 천천히 생각하면 잘할 수 있어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플루트 단원 김동균(21)씨가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열었다. 그가 꺼낸 노트에는 화성 이론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정리돼 있었다. 악보 가득 까맣게 채워진 음표들도 눈에 들어왔다. 1년 남짓 경험한 대학생활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김씨는 지난 3월, 한국예술종합대학교(이하 한예종) 기악과에 입학했다. 13세 때부터 플루트를 공부한 그는 전국학생음악콩쿠르 금상, 대한민국음악콩쿠르 우수상, 경원음악콩쿠르 플루트 부문 3위 등 참가하는 대회마다 수상을 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4.2학점 만점에 3.74점을 받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씨의 입학으로 한예종 음악대학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올해부터 대학 내에 장애인지원센터가 생겨났다. 실기 수업 때 김씨의 연주를 들은 한 학생은,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객원 연주자로 재능을 나누고 있다. 레슨을 담당하는 교수들도 “실력이 뛰어나서 연주를 들으면 도저히 장애를 가졌다고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희은 하트하트재단 문화복지사업부 부장은 “동균이의 입학 덕분에 음악대학 내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동균이가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질문하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음악대학의 일반 학생들 수업 분위기까지 좋아졌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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