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아닌 ‘지역경제 전체’에 투자한다…무너지는 지역경제 살리는 실험

2026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6>
일본은 지역 리더와 사업, 인도네시아는 수요·금융까지 연결

“지역에 투자하는 것과 그 지역에 임팩트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은 아니다.”

박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지난 18일 일본 고베에서 열린 ‘2026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 지역재생 세션에서 기관이나 자본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인구 감소와 지역 쇠퇴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했다. 정원식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이 모더레이터를 맡고, 요시타카 타부치 제브라스앤컴퍼니 공동창업자, 료 이시다 뉴로컬 대표, 박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사이먼 볼드윈 세컨드뮤즈 아시아태평양 수석부사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과 동남아시아의 지역 기반 투자 사례를 바탕으로, 지역 안에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사람과 자본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왼쪽부터) 지난 18일 일본 고베에서 열린 ‘2026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서 요시타카 타부치 제브라스앤컴퍼니 공동창업자, 료 이시다 뉴로컬 대표, 박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사이먼 볼드윈 세컨드뮤즈 아시아태평양 수석부사장, 정원식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이 지역 기반 투자와 지역재생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채예빈 기자

◇ 일본, 지역 리더와 사업 만들고 사람·자본·지식 연결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와 함께 지역 기업과 자산의 승계 문제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로컬(NEWLOCAL)은 지역 리더와 합작법인(JV)을 세워 지역 사업을 개발하고, 여기에 사람·자본·지식을 연결한다. 료 이시다 뉴로컬 대표는 “지역 재생은 자선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자산군”이라며 지역의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촉매자본과 인내자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토 북부 단고에서는 지역 리더와 함께 유휴시설을 숙박·외식 사업으로 바꾸고 일자리와 이주를 늘렸다. 인구 약 9만 명인 단고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고, 주요 산업인 견직물과 수산업도 쇠퇴하고 있었다. 뉴로컬은 당시 27세였던 지역 기업가와 합작법인을 세웠다. 그는 수제맥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구상을 실행할 자원이 부족했다. 뉴로컬은 유휴시설을 활용해 호텔과 식당 등 5개 시설을 열었다. 3년 동안 40명을 채용했고, 절반은 지역 밖에서 이주했다. 비슷한 모델은 나가노현 노자와온센에도 적용됐다. 뉴로컬은 이곳에서 숙박·외식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순유출 인구가 50% 줄었다고 밝혔다.

사업이 확대되면서 지역과의 협업도 깊어졌다. 지역 사업자와 지방정부가 공공시설 운영과 지역기업 승계 등을 맡겼고, 지역 사업가들로부터 자금도 조달했다. 뉴로컬은 현재 8개 지역에서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 4년 동안 14억 엔(약 124억 원)을 조달하고 100명 이상을 채용했다. 앞으로 각 지역에서 5~7년에 걸쳐 약 7~10억 엔(약 62억~88억 원) 규모의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 나가노현의 노자와온천. 뉴로컬은 현지 관광 전문가인 켄지 코노와 협력해 이 지역에서 숙박·외식 시설을 직접 기획·투자·운영하고 있다. 뉴로컬에 따르면 노자와온천의 순유출 인구는 50% 줄었다. /노자와온천

뉴로컬에 투자한 요시타카 타부치 제브라스앤컴퍼니 공동창업자는 지역기업의 성과를 개별 기업의 실적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기업은 지역사회와 공급망, 여러 이해관계자가 연결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이 높아지면 그 안에 속한 기업의 회복탄력성도 높아진다”며 기업과 주변 이해관계자의 관계까지 살피는 새로운 평가 방식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측정하느냐다. 매출이나 고용처럼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와 달리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 협력 구조 등은 정량화하기 어렵다. 타부치 공동창업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을 가시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직 평가 방법을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 인도네시아, 개별 사업 넘어 판로·위험관리까지 설계

개별 기업을 넘어 지역경제 전체를 하나의 투자 단위로 보는 시도도 나온다. 지역경제에 투자하는 글로벌 임팩트 기업 세컨드뮤즈(SecondMuse)는 인도네시아에서 지역의 경제 구조를 진단하고 주민들과 필요한 사업을 설계한 뒤 자본을 연결하는 모델을 만든다. 사이먼 볼드윈 세컨드뮤즈 아시아태평양 수석부사장은 “현재 금융수단은 개별 기업에 투자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경제는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기업들의 집합”이라고 짚었다.

인도네시아 시므을루에섬에서는 주민이 원하는 지역경제의 모습부터 살폈다. 현지 주민 피트리는 자신의 집을 홈스테이로 운영하고 싶었지만 외국인 숙박 허가에 필요한 초기 자금이 부족했다. 세컨드뮤즈는 숙박비를 미리 지급해 허가 비용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볼드윈은 “피트리가 원한 것은 집을 50층짜리 호텔로 키우는 게 아니었다”며 가족과 친척들이 숙박과 음식, 관광을 나눠 맡아 함께 소득을 만드는 경제를 그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개별 사업에 자금을 대는 것을 넘어 판로와 위험관리까지 함께 설계한다. 인도네시아 카카오 생산지역에서는 글로벌 식품기업 마스(Mars)와 장기 구매계약을 추진해 농가의 판로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후 카카오나무 재식재와 생산 자재에 투자한다. 구매계약과 기후변화 위험에 대응할 보험도 검토 중이다. 여러 지역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구매계약과 보험 등에 드는 비용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지역경제가 만들어낸 공공편익을 측정해 다시 지역에 배분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세컨드뮤즈는 주민 수요를 바탕으로 필요한 사업을 설계하고 자본과 판로, 위험관리 수단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인도네시아 지역경제에 투자하고 있다. /세컨드뮤즈

박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한국에서도 지역을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사업과 투자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봤다. 전국 단위 사업부터 추진하기보다 두세 개 지역에서 먼저 모델을 시험하고, 지역별로 투자 논리를 세우는 방식이다. 전담 플랫폼에는 지역의 수요를 진단하고 필요한 사업을 발굴해 자본구조까지 설계하는 역할을 제시했다.

지역 생태계를 뒷받침하려면 자본별 역할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에는 상업자본을 투입하고, 초기 위험은 촉매적 공공자본이 맡으며, 지속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기 어려운 활동에는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초기 성과는 얼마나 많은 돈을 집행했는지가 아니라 투자 준비도와 추가 민간자본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고 흩어진 임팩트 사업을 여러 지역과 산업에 걸쳐 묶으면 위험을 분산하면서 기관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는 규모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베=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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