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차기 대외지원 예산 17% 감액 논의…유럽 기관·기업 우대 추진
유엔 “지원은 필요한 곳에”…개발협력 효과 저하·취약국 지원 축소 우려
유럽연합(EU)이 개발협력 예산을 축소하고 유엔(UN) 산하기구보다 유럽 개발협력기관에 지원금을 우선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산 삭감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필요보다 유럽의 이익이 우선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3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금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큰 비용이 드는 위기와 심화하는 불평등, 불안정, 영향력 약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개발협력 재원이 “가장 필요한 곳에 전달되고 지속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외지원 예산 17% 삭감 논의…유럽 기관·기업 우대
EU는 차기 대외지원 예산을 최초 제안보다 약 17%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EU 이사회 순회의장국인 아일랜드는 지난달 10일 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7월 제안한 2028~2034년 ‘글로벌 유럽(Global Europe)’ 예산 2000억 유로(약 300조9000억 원)를 약 17% 줄이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다만 현행 2021~2027년 예산과 비교하면 약 31% 늘어난 규모다.
예산 규모뿐 아니라 개발협력 자금의 배분 기준도 달라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달 30일 FT에 따르면 코엔 둔스 EU 집행위원회 국제파트너십총국장은 지난달 하순 유엔 산하기구 관계자들에게 향후 EU 지원금 공모에서 유럽 개발협력기관에 우선권을 부여할 방침을 설명했다. 기존에 중시하던 협력국의 필요뿐 아니라 EU의 이익도 고려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EU 이사회는 지난 6월 16일 에너지·디지털·핵심 인프라 등 전략 분야의 개발협력 사업에서 유럽 기업을 우대할 수 있도록 하는 협상 입장을 채택했다.
예산 삭감안은 EU 회원국 간 재정 부담과 예산 배분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나왔다. 독일·스웨덴·네덜란드 등은 EU 전체 예산을 줄일 것을 요구했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농업 보조금과 지역개발 지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 의장국은 이러한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대외지원 예산을 약 17% 감액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 유럽 기관 우대에 원조 효율성 우려…취약국 지원 축소 가능성도
유엔 산하기구와 개발협력 전문가들은 난민·기후변화·빈곤 완화 등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에서 수행 역량보다 유럽 기관이라는 이유로 우선권이 부여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유럽개발정책관리센터(ECDPM)는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 기업 우대가 사업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규모 태양광 사업에서 유럽산 인버터를 사용할 경우 총설비투자비가 평균 약 10%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예산 삭감안이 확정되면 취약지역에 배정되는 재원도 감소할 수 있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지난달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원 예산이 605억 유로(약 91조 원)에서 518억 유로(약 77조9000억 원)로, 중동·북아프리카는 429억 유로(약 64조5000억 원)에서 368억 유로(약 55조4000억 원)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긴급 위기 대응 예비재원도 최초 제안보다 약 24% 축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 시민사회와 EU 내부에서도 삭감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개발협력·인도적 지원·평화 구축 분야 NGO 약 2700곳을 대표하는 CONCORD와 VOICE, EPLO는 지난달 9일 공동성명을 내고 글로벌 유럽 예산 2000억 유로 유지를 촉구했다. 지난달 19일 아일랜드 공영방송 RTÉ에 따르면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비롯한 집행위원 5명도 유럽의회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예산 축소가 EU와 협력국의 안보·안정성·번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EU는 오는 26~27일 특별 정상회의에서 차기 장기예산을 논의할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회원국 간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고, 2027년 유럽의회 동의 등 관련 절차를 거쳐 2028년부터 새 예산을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