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케어러 지원법 시행 7개월…“이제는 돌봄 부담 줄여야”

전국 영케어러 지원 조례 130건…지역별 기준 차이는 과제
학계 전문가들 “발굴 넘어 실질적인 돌봄 분담·통합지원 필요”

가족을 돌보는 아동·청년을 위한 법적 지원체계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제도 밖에 놓인 영케어러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족 구성원이나 거주 형태, 질병 증빙 여부에 따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학교와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실제 돌봄 부담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영케어러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에게 집중된 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실질적으로 나누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 서울 연세대학교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 기념행사에서는 김지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 이해님 동국대학교 부교수, 주영선 명지대학교 부교수가 ‘연구자의 시선으로 본 영케어러: 발견에서 지원까지’를 주제로 공동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현수엽 보건복지부 제1차관, 추진협의회 참여기관 대표자 및 관계자, 영케어러 당사자, 학계·현장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초록우산 유튜브 채널로도 생중계됐다.

◇ 영케어러 지원 조례 130건이지만, 여전한 제도적 사각지대  

영케어러는 질병이나 장애, 고령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는 만 34세 이하의 아동·청년이다.

김지선 연구위원은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효자·효녀’에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아동·청년’으로 변화해 온 과정을 짚었다. 그는 “과거에는 가족을 돌보는 어린 자녀의 헌신을 칭찬하고 장려했지만, 이제는 돌봄으로 인해 성장과 발달, 학업과 진로의 기회가 제한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가족을 돌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돌봄이 당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라고 말했다.

제도적 기반도 빠르게 확대됐다.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부산 중구에서 첫 영케어러 관련 조례가 시행된 이후 전국에서 약 130건의 지원 조례가 제정·시행됐다. 2024년에는 한 해에만 44건이 마련됐다. 다만 지역별로 지원 연령과 가족의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과제로 꼽혔다. 서울과 충남은 지원 연령을 39세 이하까지 인정하지만, 인천과 대구는 34세 이하를 기준으로 한다.

김 연구위원은 “어느 지역에서는 지원받을 수 있는 영케어러가 다른 지역에서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차별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해님 동국대 교수는 현행 지원체계의 사각지대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가족이 있지만 실제로 돌봄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경우, 돌봄 필요성을 서류로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돌봄 부담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 아동·청소년의 돌봄이 쉽게 가려지는 경우다.

특히 성인 가족이 있더라도 생계활동이나 관계 단절 등으로 아동·청년이 돌봄을 전담할 수 있고, 가족과 따로 살면서 병원 동행과 일상 관리를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복약 관리나 정서적 지원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돌봄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동은 자신이 하는 일을 돌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족을 돕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없다고 볼 것이 아니라, 놀이와 휴식, 학습 등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법제화 이후 과제는 조기 발굴·맞춤형 지원·통합 돌봄  

주영선 명지대 교수는 법제화 이후의 과제로 ▲생활권 중심의 조기 발굴 ▲아동과 청년의 발달단계에 따른 차별화된 지원 ▲가족 전체를 고려한 통합지원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주 교수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영케어러를 학교와 의료기관 등 일상생활 공간에서 먼저 발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아동에게는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청년에게는 돌봄 부담 완화와 삶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 대상자 수나 서비스 제공 여부를 넘어, 실제로 가족의 돌봄 부담이 줄었는지, 아동·청년이 자신의 시간을 되찾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가족이 돌볼 수 있도록 얼마나 지원했는지만이 아니라 사회가 돌봄을 얼마나 함께 나눴는지 물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영케어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는지가 정책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 영케어러 당사자 목소리 담은 권리선언…정부도 지원 확대 약속 

이날 행사에서는 영케어러 당사자 5명이 무대에 올라 권리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선언문은 서울·인천·경기·강원·대구·경남·부산 등 전국 7개 지역의 돌봄청소년 11명과 돌봄청년 11명 등 총 22명이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 존엄권·발달권·참여권·돌봄권 등 4대 권리를 중심으로, 가족을 돌볼지 여부를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선택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개회사에서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은 오랫동안 ‘효자·효녀’, ‘착한 아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돌봄의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왔다”며 “가족을 돌보느라 배움과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잃지 않도록 이제는 사회가 돌봄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수엽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가족을 돌보는 마음은 존중하되, 돌봄의 책임과 부담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눠야 한다”며 “지원 예산을 올해 95억 원에서 내년 395억 원으로 확대하고 지역 기관과 연계한 사례관리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보컬 정용화 씨는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정 씨는 “더 많은 분들이 영케어러의 현실을 알게 되고 관심이 확산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홍보대사로서 열심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는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당사자를 조기에 발견해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하기 위한 국내 첫 공동행사다. 초록우산을 비롯한 공공기관, 학계, 복지 현장, 당사자 단체 등 총 18개 기관이 추진협의회에 참여했다. 공익미디어 <더나은미래>는 미디어파트너로 참여해 영케어러의 현실과 제도적 과제, 국내외 지원 사례 등을 연속 보도하고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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