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분의 삶 짊어진 영케어러…지원금 넘어 ‘독박 간병’ 끊어낼 제도 마련돼야

2인분의 삶, 홀로 선 나<1>
2021년 ‘간병 비극’ 뒤 사회문제로 부상
올해 첫 지원법 시행…발굴·대체돌봄은 과제
“효심 아닌 권리의 문제로 바라봐야”

가족의 질병이나 장애 등으로 어린 나이부터 돌봄을 떠안아온 ‘영케어러’는 오랫동안 가족 안의 문제로 여겨져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 올해 3월 관련 지원법이 처음 시행되며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당사자를 어떻게 발견하고 돌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더나은미래>는 오는 10월 23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의 미디어 파트너로서 영케어러의 삶과 제도 변화, 국내외 지원 현장과 전문가들의 해법을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학교가 끝난 뒤 병원으로 향하고, 친구들이 취업을 준비할 때 가족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걱정하는 아동·청년들이 있다. 아픈 부모의 약을 챙기고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의 식사를 돕는다. 때로는 목욕과 용변을 보조하거나 가족 대신 생계를 책임진다. ‘영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 아동·청년)’의 일상이다. 

영케어러는 질병이나 장애, 정신질환, 중독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에게 간호·간병과 가사, 정서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아동·청년을 말한다.

지난 3월 시행된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족을 돕는 모든 아동·청년을 영케어러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돌봄의 강도와 지속성, 선택 가능성이다. 일상적인 가사 분담을 넘어 돌봄 때문에 학업과 취업, 건강, 교우관계와 진로 선택이 제한된다면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영케어러에 해당한다.

◇ 이름조차 없었던 돌봄, 한 청년의 비극 뒤 수면 위로

영케어러는 그동안 조손가정이나 장애인 가족, 한부모가정, 빈곤청년 등의 이름 아래 존재했지만, 아동·청년이 수행하는 돌봄노동 자체는 독립된 사회문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사적인 책임이나 효도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국내에서 당사자의 돌봄 경험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조기현 작가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9년간 돌본 경험을 담은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펴내면서다. 그는 또래들이 자신의 삶을 준비할 때 가족까지 책임지는 현실을 ‘2인분의 삶’이라고 표현했다.

영케어러 문제를 공적 의제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계기는 2021년 발생한 ‘대구 청년 간병 비극’이었다. 당시 20대 청년은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돌봄을 포기했고,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 개인의 범죄로 보였던 사건 뒤에 빈곤과 독박 간병, 공적 돌봄의 부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 평균 4년 가까이 돌봄…우울감은 일반 청년의 7배

이에 정부는 2022년 2월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다. 가족돌봄청년의 제도적 정의를 마련하고 전국 실태조사를 거쳐 돌봄·생계·의료·학습 지원으로 연결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첫 대책이었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는 전국 단위의 실태조사도 실시했다. 13~34세 4만38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영케어러로 확인된 810명의 주당 평균 돌봄시간은 21.6시간이었다. 주돌봄자의 경우 주당 32.8시간에 달했다. 평균 돌봄기간은 46.1개월, 주돌봄자는 54.7개월이었다.

이들이 담당하는 일은 집안일 68.6%, 함께 시간 보내기 63.7%, 병원 동행과 약 챙기기 52.6%, 목욕·식사·용변 등 자기관리 지원 39.1% 등이었다. 

장기간 이어지는 돌봄은 아동·청년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영케어러의 우울감 유병률은 61.5%로 일반 청년 8.5%의 7배가 넘었다. 주돌봄자의 우울감 유병률은 70.9%였다. 삶에 불만족한다는 비율도 22.2%로 일반 청년 10%의 두 배 이상이었다. 영케어러의 36.7%, 주돌봄자의 46.8%는 학업과 진로 등 미래를 계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문제는 국내 영케어러가 정확히 몇 명인지조차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2024년 행정자료와 패널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족돌봄 위기 청년은 약 5만7000명에서 63만3000명으로 추정됐다. 조사 기준과 자료에 따라 규모가 10배 이상 차이 난다. 관련 연구에서 약 10만 명이라는 추정치가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확정된 전수조사 결과는 아니다.

이에 통계청은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가족돌봄 문항을 포함했고, 올해 말 관련 통계를 공표할 예정이다. 영케어러의 전국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첫 국가통계가 나오는 셈이다.

숫자로 포착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당사자 상당수는 자신을 영케어러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조기현 N인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돌봄을 해온 경우에는 다른 삶을 경험하지 못해 자신의 책임이 과도하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특히 장애나 빈곤, 정신질환 등 가족의 상황을 알렸을 때 받을 수 있는 낙인이나 가족과 분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도움 요청을 막는다”고 설명했다. 

◇ 지원법 시행됐지만…‘발견 이후’가 더 중요

이런 점에서 지난해 3월 제정된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올해 3월 26일부터 시행된 것은 의미가 크다. 영케어러를 가족 내부의 문제가 아닌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신청에 크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날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교사나 복지시설 종사자 등 영케어러와 접촉하는 주변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아동·청년에 대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2027년부터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조기 발굴 시스템도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13세 미만 가족돌봄 아동은 시·군·구 드림스타트팀이 3개월 주기로 집중 사례관리를 제공한다. 13~34세는 청년미래센터를 통해 장학금과 주거·취업·금융·법률 지원 등을 연계받을 수 있다.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인 경우 자기계발과 건강관리, 심리회복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기돌봄비 200만 원도 지원된다. 

정부는 202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현재 인천·울산·충북·전북에서 운영 중인 청년미래센터도 올해 말까지 16개 시·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청년미래센터는 가족돌봄청년을 발굴해 상담하고, 아픈 가족의 돌봄서비스부터 청년의 장학금·주거·취업 지원까지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전담 기관이다. 

그러나 자기돌봄비와 상담, 장학금만으로는 영케어러가 짊어진 돌봄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픈 가족을 대신 돌볼 사람이 없다면 돈을 지원받아도 학교에 가거나 안정적으로 일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영케어러 문제가 두드러지는 사회일수록 공적 돌봄 체계가 충분하지 않거나 가족이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는 규범이 강한 경우가 많다”며 “돌봄이 필요한 가족들에 돌봄을 제공할 제도적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영케어러의 부담은 줄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 ‘기특한 아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영케어러 문제는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2025년 전체 인구의 20.3%를 넘어섰다.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웃돌 전망이다. 반면 2024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에 달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지만 이를 함께 나눠 맡을 가족은 줄어드는 구조다.

최 교수는 “영케어러는 고등교육과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성인으로 이행하며 다양한 삶의 경로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에 있다”며 “이들을 단순히 불쌍하거나 가족을 잘 돌보는 ‘기특한 아이’로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돌봄자의 역할에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을 돌본다는 이유로 학업이나 일, 미래에 대한 선택권까지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영케어러를 보호받아야 할 권리의 주체로 보고, 지금까지 가족 안에 머물렀던 돌봄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는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당사자를 조기에 발견해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하기 위해 마련된 국내 첫 영케어러 집중 주간이다. 초록우산을 비롯해 국가아동권리보장원,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한국사회복지관협회, 지자체 청년미래센터 등 공공기관·복지 현장·학계·당사자 단체 등 18개 기관이 추진협의회에 참여한다. <더나은미래>는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한다. 오는 10월 23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 공동세미나와 국회 정책토론회, 공동행사 등을 열어 영케어러 발굴·지원 방안과 관련 법 시행 이후의 과제를 논의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공동선언문도 발표할 예정이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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