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효자가 아니었다” 영케어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조기현의 10년 

2인분의 삶, 홀로 선 나<2>
[인터뷰] 조기현 N인분 대표
스무 살부터 아버지 돌봄…“가족 일이라며 사회는 외면”
책 출간 뒤 “나도 영케어러” 당사자들 세상 밖으로
“불쌍한 아이 아닌 ‘돌봄 페널티’ 문제로 봐야”

“가족을 돌보는 사람은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왜 아무도 이걸 사회문제라고 이야기하지 않는지 억울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더나은미래 사무실에서 만난 조기현(34) N인분 대표는 스무 살 무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그의 20대는 또래들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 동의서를 작성하고 간병인을 구했다. 쌓여가는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도움을 구하려 사회복지과를 찾았지만 아버지도, 자신도 ‘젊다’는 이유 등으로 지원 대상에서 번번이 벗어났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이나 다큐멘터리 속 가족돌봄자는 수십 년 동안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효자·효녀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조 대표의 현실은 달랐다.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돌봄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저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싶었어요. 마치 가족을 끝까지 희생적으로 돌보는 사람이 아니면 이 문제를 말할 자격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죠.” 

◇ “아픈 사람은 많은데, 돌보는 사람 이야기는 왜 없을까” 

조 대표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진 뒤 찾아왔다. 일을 하며 돌봄을 병행하던 어느 날, 혼자 있던 아버지가 큰 화상을 입었다. 조 대표는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분명 돌보는 사람도 많을 텐데 왜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을까 의문이었다”고 토로했다. 

자신처럼 젊은 나이에 부모나 가족을 돌보는 사람을 만나려고 주민센터와 보건소, 대학병원까지 찾아다녔다. 그러나 가장 많이 돌아온 반응 중 하나는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가족에게 생긴 어려움은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집안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때부터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2019년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 가족을 돌보는 아동·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책 출간과 언론 보도 이후 그에게 “나도 영케어러다”라는 연락이 이어졌다. “단어가 생기니까 사람들이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거죠.”  

독자를 중심으로 당사자 모임이 생겼고, 사회복지 현장의 실무자들도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만났던 그 청년이 영케어러였던 것 같다”며 당사자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영케어러’라는 하나의 언어 아래 모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2023년 설립된 N인분이다. N인분은 영케어러를 비롯한 돌봄 당사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가·연구자·시민을 연결하고, 당사자의 경험을 모아 정책을 제안한다. 또 영케어러가 또 다른 당사자를 돕는 동료상담가이자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전통적인 회원 조직이라기보다 여러 주체가 필요에 따라 참여하고 협력하는 플랫폼에 가깝다.

조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당사자를 단순한 ‘지원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는 것이다. 동료상담 교육을 받은 당사자가 또 다른 영케어러를 만나고, 이후 인식개선 교육과 정부·지자체 정책 거버넌스에도 참여하도록 한다. 그는 “당사자의 경험은 그냥 아우성이 아닌, 그 안에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 법은 생겼지만…“이제는 발견하고 연결해야” 

조 대표를 비롯해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정책 의제로 올라오고 제도도 빠르게 만들어졌다.

2025년 3월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위기아동청년법)’이 제정됐고, 올해 3월 26일부터 시행됐다. 법은 34세 이하 중 돌봄이 필요한 가족에게 간호·간병이나 일상생활 지원 등을 제공하는 사람을 ‘가족돌봄 아동·청년’으로 규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을 발굴해 사례관리를 하도록 했다. 심리·건강, 학업·취업, 주거 지원과 함께 미래 준비를 위한 자기돌봄비와 돌봄서비스 연계 등의 지원 근거도 마련됐다.

이름조차 없던 존재가 법률상 지원 대상으로 규정되기까지 이어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것이 문제 해결의 끝은 아니라고 조 대표는 지적했다.

조 대표는 현장에서 여전히 가장 어려운 문제로 ‘발견’을 꼽는다. 그는 “특히 연령이 낮을수록 자신이 영케어러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다”며 “청소년에게 가족을 돌보는 일은 그저 자신의 일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견 이후에는 돌봄 부담을 실제로 덜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영케어러 문제 해결은 영케어러만 지원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아픈 사람에 대한 지원과 생계비·의료비 지원도 함께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부모가 “아들·딸이 돌보면 된다”며 외부 돌봄서비스를 거부하거나, 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 서비스 연계가 막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영케어러를 찾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사자가 학교에 가고 일하며 자신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돌봄 자체를 나누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와 병원, 주민센터, 지역복지관 등 영케어러와 맞닿아 있는 현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조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N인분도 지역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경제 조직, 돌봄기관 등과의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며 “동네에서 바로 옆집의 영케어러를 발견하고 도울 수 있는 두터운 지원자 그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불쌍한 아이도, 기특한 효자도 아니다” 

조 대표는 영케어러를 ‘불쌍한 아이’나 ‘기특한 효자·효녀’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한다. 문제는 개인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돌봄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취업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등 삶의 선택권을 잃는 데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 몫이라고 여겼던 돌봄을 이제는 사회로 가져와야 합니다. 영케어러가 살기 좋은 나라는 결국 모든 케어러가 살기 좋은 나라예요. 영케어러라는 지렛대를 잘 활용하면 대한민국을 조금 더 잘 돌보는 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