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케어러 찾아도 돌봄은 그대로…“가족 전체 지원해야”

6개 지역 현장 관계자·전문가, 영케어러 발굴·지원 사각지대 지적
학교·의료·복지기관 연계 강화하고 대체 돌봄서비스 확대 제안

“영케어러를 발견한 뒤 실제 지원으로 연결하는 전달체계에는 여전히 공백이 있습니다. 현장의 경험을 통해 발굴 과정의 어려움과 장벽을 드러내고, 구체적인 발굴 기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조기현 돌봄 커뮤니티 N인분 대표는 28일 열린 온라인 세미나 ‘영케어러, 어떻게 발견하고 지원할 것인가?’에서 이같이 말했다. 가족돌봄아동·청년을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족돌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 기간에 열린 이번 세미나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와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이 공동 주최했다. 대구·광주·울산·인천·전북·충북 등 6개 지역의 영케어러 지원 현장 관계자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의료사회복지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발굴·지원 과정의 어려움과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온라인 참석자는 120여 명이다.

올해 3월 가족돌봄아동·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당사자를 찾아내기 어렵고 지원을 시작하더라도 돌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 가족 돌보는 청소년·청년, 당사자도 주변도 알아채기 어려워

영케어러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발굴 경로를 넓히고 있지만, 기존 체계만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사회보장정보를 활용한 발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광주 서구는 행정정보와 현장조사를 결합해 대상자를 찾고 있다.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는 학교·복지기관과 협력해 가족돌봄아동을 발굴하고 지원을 연계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공통으로 지적한 문제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의 교사·의료진·복지 종사자조차 가족돌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임진미 인천청년미래센터 가족돌봄팀장은 “당사자들도 자신이 가족돌봄청년인지 잘 모르고, 유관기관에서도 그런 청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어디로 연결해야 할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족의 질병과 돌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병원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현희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장은 중증질환으로 입원한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사례를 소개했다. 회진 중 학생의 결석 사실을 알게 된 교수가 아동 방임을 의심해 의료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지만, 실제로는 간병인을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아 학생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김 회장은 “병원은 환자의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가족의 돌봄 상황까지 살피기 어렵다”며 “의료진이나 사회사업팀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영케어러를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정보만으로 실제 돌봄 부담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를 돌보지만 진단서가 없어 돌봄 필요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 다른 가족이 있어도 사실상 혼자 돌봄을 책임지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홍성택 충북청년미래센터 가족돌봄팀장은 가족과 따로 살면서 돌봄을 맡는 청년도 있어 동거 여부만으로 돌봄 부담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지원금 받아도 가족 생활비로…대체 돌봄 부족에 지원 한계

영케어러를 발굴해 지원하더라도 가족의 생계와 간병 부담까지 해결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는 경제적·정서적 지원이 이뤄져도 청년이 가족돌봄을 계속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광주 서구의 가족돌봄청년 수당 사용 현황이 이를 보여준다. 박재형 광주 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당 사용처는 가족 공용 생활비가 55%로 가장 많았다. 돌봄물품 구입이 21%, 청년 본인 생활비가 12%로 뒤를 이었다. 광주 서구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가족돌봄청년에게 월 25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청년의 자립과 일상 회복을 위해 지급한 지원금이 실제로는 가족의 생계와 돌봄 비용에 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 지원과 외부 활동 프로그램도 돌봄을 대신할 사람이 없으면 이용하기 어렵다. 홍성택 팀장은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청년들이 정서 지원 프로그램이나 외부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사·간병서비스를 연계하더라도 이용 시간 제한이나 본인부담금 때문에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돌봄이 장기화하면서 사례관리를 끝내기 어려운 문제도 제기됐다. 석미진 울산청년미래센터 가족돌봄팀장은 “돌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례관리를 마무리해야 하는데도 할 수 없다”며 “종료하지 못하고 계속 지원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 “청년 아닌 가족 전체 살펴야”

참석자들은 영케어러 발굴부터 실제 지원까지 이어지는 기관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별도의 발굴체계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병원·복지기관 등 기존 체계에서 가족돌봄 상황을 조기에 파악하고, 청년미래센터 등 지역사회 지원기관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와 의료진, 복지 종사자가 학업 부진이나 경제적 어려움 뒤에 가족돌봄 문제가 있는지 살필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기관별 발굴·연계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원 기준에서 제외되는 청년들을 위한 연계체계도 과제로 꼽혔다. 소득이나 연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복지기관이나 민간 지원사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돌봄이 장기화하는 가정에는 지속적인 사례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지원의 초점을 청년 개인에서 가족 전체로 넓혀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청년에게 지원금이나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돌봄 부담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돌봄받는 가족에게 간병·일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청년에게는 학업·진로·자립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영케어러 정기 조사체계 마련, 지원 대상과 소득 기준 정비, 가족돌봄 경험의 취업 경력 인정, 청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매체를 활용한 정책 홍보 등이 개선 과제로 제시됐다.

김지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은 “돌봄받는 가족의 상황은 그대로인데 청년에게만 시간과 자원을 제공하면 당사자가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다”며 “청년이 돌보지 않아도 가족이 필요한 돌봄을 받고, 청년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3일 시작돼 29일까지 진행되는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는 영케어러가 처한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 당사자를 조기에 발견해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내 첫 공동행사다. 추진협의회에는 국가아동권리보장원,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한국사회복지관협회, 지자체 청년미래센터 등 공공기관과 학계, 복지 현장, 당사자 단체를 아우르는 총 18개 기관이 참여했다. 공익미디어 <더나은미래>는 미디어파트너로 참여해 영케어러의 현실과 제도적 과제, 국내외 지원 사례 등을 연속 보도하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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