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의 에코 NOW] “몰랐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하지원 에코나우 대표

열세 살 소니카는 세 살배기 남동생을 안고 산비탈을 달렸다. 누군가 홍수가 밀려온다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막내를 딸에게 맡겼고, 소니카는 어린 동생을 품에 안은 채 숲속으로 뛰었다. 뒤돌아보니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 거센 물살에 휩쓸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어디 계시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화도 닿지 않았다. 지난 8월 26일 네팔에서 일어난 일이다. 유니세프가 전한 소니카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다행히 소니카 가족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모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 재난으로 1,40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약 5천 명이 실종됐다. 그리고 불과 46일 뒤인 10월 11일, 네팔에는 또다시 산악 붕괴와 홍수가 찾아왔다. 이토록 무서운 재난은 정말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일까.

◇ 위험은 예고됐지만, 피해는 공평하지 않다

사실 히말라야의 위험은 수십 년 전부터 경고됐다. 199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녹아내리는 빙하와 빙하호 붕괴의 위험을 연구했다. 2001년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는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고, 2008년과 2011년에는 히말라야의 변화와 주민들의 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됐다. 2023년에는 이 지역의 빙하 손실 속도가 이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온난화로 빙하와 얼어붙은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악 재난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네팔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약 0.05%에 불과하다. 지구를 뜨겁게 만든 책임이 극히 작은 나라에서 어린 소녀가 동생을 안고 목숨을 걸고 달려야 했다.

문득 ‘공유지의 비극’이 떠올랐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목초지에 각자 소를 더 많이 풀어놓으면 이익은 개인에게 돌아가지만, 황폐해진 목초지의 피해는 모두가 떠안는다. 지구의 대기도 다르지 않다. 화석연료를 사용해 누리는 풍요는 각자의 것이지만,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피해는 지구 전체의 몫이다. 심지어 가장 적게 배출한 사람들이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공유지의 비극을 연구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사람들이 규칙을 만들고 협력하면 공동의 자원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함께 행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재난을 막지 못한 것은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행동의 실패다

기후위기도 그렇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경고했고,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그런데 2024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AI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과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한지 연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기를 얼마나 더 생산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만큼, 어떻게 수요를 줄이고 효율을 높일 것인지도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는가. 새로운 발전소와 송전망을 계획하는 속도만큼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에도 투자하고 있는가. 미래 산업에 필요한 전력은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그 산업이 살아남아야 할 지구의 한계는 계산에서 빠뜨린 것은 아닐까.

소니카가 동생을 안고 달려야 했던 그날, 우리에게는 그저 먼 나라의 뉴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염과 집중호우를 겪는 우리에게도 기후위기는 이미 일상이 됐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소니카처럼 집을 뒤로하고 달려야 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예측하지 못한 미래가 아니라, 알고도 바꾸지 않는 현재다.

하지원 에코나우 대표

필자 소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 아래 누적 33만 명의 환경 교육을 실천해 온 전문가입니다. 2009년 설립한 에코나우는 국내 유일의 유엔환경계획(UNEP) 파트너 기관입니다. 2025년 환경 교육의 대중화와 기후 위기 대응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습니다. 현재 EU 기후행동 친선 대사 및 국가기후시민회의 자문단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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