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100명이 포착한 사회문제 104개는?

사랑의열매, 8대 아젠다 도출
기업 사회공헌에 연계…사업 신청서·성과 측정 방식 개선 추진

가족을 떠난 청소년이 지원을 받으려 해도 쉼터에 머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도 밖에 놓이거나, 상담·치료·교육 등 필요한 지원을 한꺼번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기관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 청소년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일도 현장의 과제다. 기존의 지원 체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사회문제들이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처럼 현장에서 포착한 사회문제 104개를 발굴하고, 이를 기업 사회공헌 사업과 연결하는 작업에 나섰다. 현장 전문가 100명의 의견을 수렴해 8대 어젠다를 도출했으며, 지원 인원과 예산뿐 아니라 지원 대상자와의 관계 형성, 다른 지원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까지 사업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사랑의열매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26 사랑의열매 기업사회공헌 컨퍼런스’에서 공개했다.

진석범 사랑의열매 사무총장은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연간 5조 원 넘게 쓰고, 사랑의열매도 매년 1조 원에 가까운 성금을 모아 배분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다”며 “지원이 필요한 곳에 자원이 제대로 닿지 않거나 지원이 중간에 끊기는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자원이 정말 필요한 곳에 필요한 때 닿을 수 있을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현장에 물었다”고 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 사회문제 104개에 청소년·청년 위기 집중

사랑의열매가 추진한 ‘SIGNAL(시그널)’ 프로젝트에는 미래세대, 디지털·AI, 인구·지역, 기후·안전, 마음건강 등 5개 영역에서 현장 전문가 20명씩 총 10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21개 서술형 문항에 답했으며, 사랑의열매는 약 55만 자의 답변을 분석하고 현장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104개의 사회문제 신호를 확정했다.

104개 신호는 현장에서 발견된 구체적인 문제들이다. 사랑의열매는 이를 당사자가 처한 상황과 필요한 지원에 따라 8대 어젠다로 묶었다. ▲사회진입 취약청년 ▲성장기반 취약 아동·청소년 ▲고립·마음건강 위기군 ▲초고령사회 역할·돌봄 취약 노년 ▲기후·재난·인구감소 취약 생활권 ▲AI 전환사회 취약계층 ▲소진위기 현장인력·조직 ▲전달체계·거버넌스 과제다.

이날 컨퍼런스 참석자들이 104개 신호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탈가정·고립·은둔·자립준비 청소년과 청년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계선지능 문제였다. 이어 ‘가족에게 맡겨진 돌봄의 중압’과 ‘가속화되는 AI 활용, 비어 있는 윤리·책임·실천 기준’이 뒤를 이었다. 8대 어젠다별 관심도에서는 ‘성장기반 취약 아동·청소년’이 20.9%로 가장 높았고, ‘사회진입 취약청년’(16.4%), ‘고립·마음건강 위기군’(14.9%) 순이었다.

현장에서 포착한 문제는 학계 전문가들이 제시한 사회이슈와도 상당 부분 맞닿아 있었다.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가 발간한 ‘사회이슈분석 2027’에서 학계 전문가 16명이 도출한 사회이슈 89개와 현장 신호 104개를 비교한 결과, 현장 신호 72개가 학계의 사회이슈 44개와 연결됐다. 두 자료에서 공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청소년’이었으며, ‘청년’과 ‘고립’이 뒤를 이었다.

다만 학계가 하나의 사회문제로 묶은 이슈도 현장에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년 정신건강 악화와 높은 자살률’이다. 이 이슈에는 AI 전환 과정에서 취업준비생이 느끼는 무력감, 정신과 진료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 망설이는 문제, 자살시도자에 대한 지원의 한계,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개입이 중단되는 문제 등 7개의 현장 신호가 연결됐다. 같은 청년 정신건강 문제라도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과 필요한 지원은 서로 다른 셈이다.

박미희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 박사는 “하나의 사회이슈를 선택하더라도 예방부터 위기 직후, 회복까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다양하다”며 “현장의 신호를 면밀히 살펴보고 어디에 개입할 것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인식과 현장의 상황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송지현 서울광역청년센터 팀장은 ‘쉬었음 청년’을 단순히 일하지 않거나 구직 의사가 없는 청년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송 팀장은 “계약 만료나 직장 문제, 경제적 환경 변화 등으로 일을 쉬게 되는 청년들이 있다”며 “노동시장 진입과 이탈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이들을 단순히 쉬고 있다고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이탈하는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 현장 목소리 반영해 지원 방식 바꾼다…성과 측정도 개선

사랑의열매는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현장의 문제를 실제 지원 방식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특히 지원 대상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기관의 도움으로 연결하는 과정처럼 기존의 성과 지표로 드러나기 어려웠던 활동에 주목했다.

김경희 사랑의열매 사회공헌본부장은 “한 사람의 위기는 여러 단계에 걸쳐 이어지지만 지원은 사업 기간이나 예산에 따라 중단된다는 현장의 지적이 있었다”며 “이를 반영해 지원 방식을 보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SIGNAL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는 저희 관점이 바뀐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우선 사업 신청서에 지원 대상자와 관계를 이어온 시간, 다른 지원으로 연결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 등을 기재하도록 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지원 인원과 예산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지원 과정에서 이뤄진 활동까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기업이 기부금의 사용처를 정하는 ‘지정기탁 사업’ 가운데 지원 대상자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사업에 적용할 예정이다.

성과 측정 방식도 보완한다. 지원 인원과 집행 예산 등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뿐 아니라, 지원 대상자와의 관계 형성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 연구할 계획이다.

기업의 기존 사회공헌 사업을 SIGNAL에서 발굴한 사회문제와 연결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확인된 문제를 기존 사업에 반영하고, 지원 대상과 시점, 방식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함께 제안한다는 구상이다.

SIGNAL 프로젝트의 연구 파트너로 참여한 신현상 한양대학교 교수(임팩트리서치랩 공동대표)는 “SIGNAL은 현장에서 포착한 변화를 바탕으로 기업이 사회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사회공헌의 방향을 찾도록 돕는 데이터”라며 “기업은 이를 활용해 새로운 사회공헌 의제를 발굴하고, 기존 사업의 대상과 지원 방식을 정교하게 다듬어 현장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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