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부터 운영까지 부처별 규제·불명확한 허가기준에 공익활동 제약
“설립은 자유롭게, 감독은 책임 중심으로”…통합 관리체계 필요성 제기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던 한 단체는 주무관청으로부터 “재정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허가를 거부당했다. 얼마의 재산이 있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결국 정보공개청구까지 진행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기본재산 기준금액 없음”이었다. 또 다른 법인은 청년들에게 장학금과 생계비를 함께 지원하려다 “장학금은 교육청, 생계비는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공익법인의 한 담당자는 재단의 기본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허가를 요청했지만, 담당 공무원이 관련 규정을 잘 모르겠다며 석 달간 답변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비영리·공익법인들이 명확하지 않은 허가기준과 부처별로 나뉜 규제에 가로막힌 사례들이다.
30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 비영리·공익법인 규제합리화 국회포럼’에서는 이처럼 공익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포럼은 김재섭·서미화·신정훈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좋은규제시민포럼(이사장 강영철)과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원장 배원기)이 공동 주관했다. 참석자들은 ‘좋은 일을 어렵게 하는 규제사슬,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법인 설립의 문턱을 낮추고 사전허가 중심의 규제를 사후책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준 없는 허가, 부처별 제각각 규제…통합 관리체계 필요
현장 사례를 발표한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대표는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법령에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도 담당 기관의 재량에 따라 허가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를 지적했다.
김 대표가 소개한 한 단체는 2024년 6월부터 비영리법인 설립을 추진했지만, 주무관청이 전국 단위 활동을 위한 기반과 재정적 안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서 신청서를 여러 차례 반려했다. 단체는 사무실을 추가 확보하고 발기인의 출연 약정액도 늘렸지만 허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행정심판과 행정소송까지 진행했다.
김 대표가 18개 중앙부처의 기본재산 기준을 확인한 결과, 부처 차원에서 구체적인 금액을 정한 곳은 통일부(2000만 원) 한 곳뿐이었다. 그는 설립허가 기준과 행정처분 기준을 공개하고, 담당 공무원의 재량권 행사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문제는 개별 공무원의 판단을 넘어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국내 민법상 비영리법인은 2만6161개, 공익법인법상 공익법인은 4058개(2026년 3월 기준)에 이른다. 하지만 설립과 운영은 각 주무관청이, 세법상 공익법인 지정과 기부세제는 재정경제부·국세청이, 기부금품 모집은 행정안전부와 광역지자체가 담당한다. 비영리·공익법인 전체의 발전과 제도 개선을 총괄하는 정부 내 전담부서는 없는 실정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국내 공익활동의 진입장벽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CAPS)의 ‘Doing Good Index 2026’에 따르면, 법인 등록이 쉽다고 응답한 국내 사회서비스제공조직은 19%로 아시아 평균(37%)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련주 좋은규제시민포럼 규제청원위원장은 이러한 규제의 뿌리로 비영리법인 설립에 적용되는 ‘허가주의’를 꼽았다. 현행 민법 제32조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다. 1912년 조선민사령에서 시작된 허가 중심의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설립 이후에도 규제가 계속된다는 점이다. 정관 변경과 임원 취임, 기본재산 처분 등에 주무관청의 허가나 승인이 필요하고, 회계·결산자료도 주무관청과 국세청에 서로 다른 기준과 서식으로 제출해야 한다. 법인을 합병하거나 분할하는 제도적 근거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 위원장은 ‘설립은 자유롭게, 혜택은 요건에 따라’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우선 주무관청별로 다른 설립허가 기준을 통일하고, 장기적으로 민법상 비영리법인은 법정 요건을 충족하면 설립할 수 있는 준칙주의로, 공익법인은 인가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임원 취임 승인 절차를 신고제로 바꾸고 중복 회계보고를 일원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나아가 주무관청별로 분산된 관리체계를 통합하기 위한 ‘공익위원회’ 설치 필요성도 제기했다. 별도 기구가 공익활동 지원과 정보공시, 감독, 분쟁조정 등을 맡도록 하되 모든 법인을 일률적으로 통제하기보다는 위험 수준에 따라 감독을 차등화하자는 취지다.
◇ “규제 완화 넘어 제도 개편 필요”…비영리 전담기구 설치 촉구
토론자들은 이러한 제도 개선이 비영리조직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짚었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상임변호사는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협동조합이 3만 개 이상 설립된 것과 달리, 민법상 비영리법인은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약 2만6000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협동조합은 신고로 설립할 수 있지만 비영리법인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 변호사는 “비영리법인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부처가 전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며, 설립 규제 완화뿐 아니라 비영리부문을 전담하는 정책·감독기구와 중장기 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규제 완화가 곧바로 책임성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팀장은 허가제를 다른 제도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설립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허가·불허가 통계를 공개하는 등 행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익위원회 설치 역시 과거 법 개정 시도가 무산된 원인을 검토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측에서도 분산된 감독체계의 한계를 인정했다. 김종철 행정안전부 민간협력공동체과장은 부처와 지자체마다 허가기준과 지침이 달라 유사한 공익활동을 하는 법인도 서로 다른 규제를 받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익법인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며 “소규모 비영리조직에는 규모와 역량에 맞는 회계·공시 의무를 적용하고 행정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강영철 좋은규제시민포럼 이사장은 “규제 당하는 쪽은 이미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규제하는 쪽의 행동은 더디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구체적인 개선을 위한 행동전략이 도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