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발언대] 매순간 만난 장벽…그럼에도 부딪혀 넘어가다

박세은 한양대 생명공학과 재학생

지금 당신의 앞을 가로막은 벽은 얼마나 단단한가. 주먹으로 가볍게 허물 수 있는 벽인가, 아니면 드릴로도 좀처럼 뚫리지 않는 벽인가. 대학생들이 모여 사회문제의 해법을 찾는 유일한 아카데미에서 우리는 ‘과대·허위 광고’라는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했다.

첫 번째 벽은 나 자신. 브라질과 미국, 독일, 한국을 거치며 살아온 시간은 나를 설명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가 됐다. 스스로 온전한 한국인도, 완전한 이방인도 아닌 ‘경계에 선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유일한 아카데미 지원서를 쓰고 첫 면접을 보는 순간부터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팀원들과 대화하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검열했다. ‘내 말투가 어색하지 않을까’, ‘전문성이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매번 ‘자신감’이라는 벽 앞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과정에서 즉흥 발표를 할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고, 섭식장애를 주제로 박지니 활동가를 인터뷰할 때 진행자를 맡으면서는 긴장감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러나 서울 시내 청소년센터 6곳에 교구 콘텐츠 기획안을 직접 보내고, 마침내 서초유스센터로부터 회신 전화를 받은 순간 내 안의 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벽은 우리 사이. ‘정신건강’이라는 주제로 2조 팀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교구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고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벽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무엇보다 ‘비교’가 우리를 괴롭혔다. 다른 팀들은 화기애애하고 열정이 넘쳐 보였다. 그야말로 완벽해 보였다. 그들의 ‘완벽’ 안에도 분명 벽이 있었을 텐데, 조급함에 사로잡힌 우리는 서로의 사이에 더 높은 벽을 쌓고 있었다.

문제의 이해관계자를 정하는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새벽 1시, 때로는 3시까지 구글 미트와 줌을 켜놓고 토론했다. 쉴 새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아도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논의 내용뿐 아니라 말투와 사소한 표현에서도 오해가 생기며 벽은 점점 단단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최종 성과발표회를 일주일 앞두고 카페에 모여 주제를 세 번째로 바꾸던 날, 우리는 오히려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결국 모두가 같은 벽 앞에 선 동료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 어깨를 맞댈 때 비로소 벽을 밀어낼 힘도 커졌다.

세 번째 벽은 사회. 내면의 벽과 팀 안의 벽을 넘어 하나가 된 우리 앞에는 ‘사회’라는 더 거대한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섭식장애에서 범위를 넓혀 비만치료제 오남용과 과대·허위 광고 문제에 주목했다. 연예인들이 마운자로와 위고비 같은 비만치료제를 잇달아 언급하면서 치료제 사용이 하나의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었다. 처방 대상과 기준이 정해져 있는데도 불법 처방과 무허가 해외 직접구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 팀은 특히 ‘소비자의 인식’에 주목했다. 의료법상 금지된 내용이 포함된 광고가 온라인에서 버젓이 노출되고 있었다. 우리가 직접 플랫폼의 광고를 조사한 결과, 분석 대상 가운데 72%에서 과대·허위 요소가 발견됐다.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이었다. 소비자는 눈앞에 나타난 광고가 위법한지 스스로 판단할 도구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대학생 몇 명이 과연 뿌리 깊은 상술의 벽을 깰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도 밀려왔다.

하지만 피하는 대신 부딪히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소비자 주도형 인공지능(AI) 판독 웹서비스 ‘위고업(Wego UP)’이다. AI가 의료법을 바탕으로 광고의 위법 가능성을 5초 안에 판별하도록 설계했다. 그러나 위고업의 진짜 힘은 기술이 아니라 ‘연대’에 있다. “혼자 판단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문구 아래 이용자들이 함께 투표하고 결과를 교차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교묘한 상술 앞에서는 개인이 쉽게 현혹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묻고 답한다면 그 벽에도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다음 벽을 향해. 돌이켜보면 지난 두 달은 하나의 벽을 넘으면 또 다른 벽이 나타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아카데미 2기 활동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우리 2조는 치열하게 기획한 위고업이 실제 서비스로 구현될 수 있도록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필자 역시 생명공학도로서 비만치료제를 비롯한 의료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대중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다.

기업의 이익보다 국민의 건강과 정직을 우선했던 ‘유일한 정신’은 사회의 부조리한 장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는 나침반이 됐다. 앞으로도 수많은 벽이 불쑥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피하지 않고 기꺼이 다음 벽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박세은 한양대 생명공학과 재학생(2026 유일한 아카데미 수료생)

관련 기사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