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누적 배출 1위, 기후 피해 책임져라”…농민들, 한전 첫 손배소

“재산·생존권 위협”…누적 배출량 27%·해외 석탄 투자까지 지적
이상기상 현상 반복되며 농가 재산 피해 막심

국내 농민들이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기후위기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첫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2일 함양·당진·제주 등지 농민 6명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실가스 누적 배출 1위 기업군에 기후위기 피해 책임을 묻겠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다. 원고 측은 “이번 소송은 단순한 배상이 아니라, 배출원에 직접 책임을 묻고 기후 취약계층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보장받기 위한 상징적 사건”이라고 밝혔다.

농업인들이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이 막대하다며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인 한전과 그 자회사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피고인 한전과 5개 발전 자회사는 국내 온실가스 누적 배출의 약 27%, 전 세계 배출량의 0.4%를 차지한다. 원고 측 변호인 김예니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이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해외 석탄 투자까지 확대해 왔다”며 “국내외 기후 규범 위반 여부를 처음으로 국내 법원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농업은 기후조건 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산업이다. 1912~1940년 대비 1991~2020년 한반도 평균기온은 1.6℃ 오르고 강수량은 134.5㎜ 늘었다. 이에 따라 폭염·가뭄·집중호우·냉해 등 이상기상 현상이 빈발하면서 재배 가능 작물의 범위가 급변하고 있다. 사과·복숭아 재배 적지는 북상했고, 벼는 병충해와 수확기 변동으로 생산성이 떨어졌다. 산청 지역 딸기 농가는 반복되는 산불과 폭우로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있으며, 감귤은 본토 재배가 가능해졌지만 제주산의 품질·가격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함양 사과 농가의 마용운 씨는 “꽃이 일찍 피어 냉해로 수확이 망쳤다”고 호소했고, 당진 벼농가의 황성열 씨는 “병충해와 폭염 피해로 수확량과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제주 감귤 농가의 윤순자 씨는 “기온 상승으로 본토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복숭아·딸기 농가 역시 폭우·병충해 피해로 나무를 베거나 시설 침수를 겪었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은 2011~2022년 동안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연평균 23~29%를 차지했다. 발전량의 95% 이상이 화력발전이며, 석탄 발전 비중만 71.5%에 달한다.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9.5%에 불과하고, 직접 확대보다 REC(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에 의존해 왔다. 원고 측은 “이 구조는 탄소중립기본법의 취지를 훼손하며, 해외 공기업들이 전환을 주도한 사례와 비교하면 책임 회피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특히 덴마크의 오스테드, 스웨덴의 비텐팔과 같은 해외 공기업 전력사들이 전환을 주도한 사례를 볼 때, 정부 지침만을 이유로 감축을 미룬 것은 책임 면제가 될 수 없다고 원고 측은 주장했다. 발전 포트폴리오 구성,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및 전력규칙 개선,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같은 결정은 정부 방침과 별개로 기업 경영 판단으로 가능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다배출 기업별 누적 배출량과 폭염 피해액 간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기후솔루션은 이 방법론을 적용해 피고들의 2011~2023년 농업 손실 기여액이 98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원고들은 재산 피해액과 함께 2035원의 상징적 위자료도 청구했다. 이는 G7 합의처럼 2035년까지 탈석탄을 촉구하는 의미다.

원고 측은 “기후위기를 만든 자들이 끝내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바꾸는 첫걸음”이라며 “피해 복구 노력과 비용이 농민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 소송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첫 판례가 될 경우, 향후 국내외 기후소송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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