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코 코자키(Aiko Kozaki) JANPIA 임팩트 투자부문장
매년 일본 내 은행에는 약 1500억 엔(한화 약 1조4000억 원)의 자금이 비활성화된다. 이 중 실제 계좌주에게 반환되는 돈은 500억 엔(한화 약 4690억 원)에 불과하다. 일본은 2018년부터 10년 이상 거래가 없는 휴면예금을 공익활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민간 공익활동을 위해 활용한 휴면예금은 2023년 한 해에만 107억 엔(한화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휴면예금 배분을 맡은 기관은 일본공익활동네트워크(Japan Network for Public Interest Activities·이하 JANPIA)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설립한 JANPIA는 2019년 일본 정부로부터 휴면예금 배분 권한을 위임받은 유일한 기관이다. JANPIA는 자금배분기관(Funds Distribution Organization·이하 FDO)을 선정해 지원금을 전달한다. 현재까지 자금분배기관을 통해 236개 사업이 시작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총 1356건의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JANPIA는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사회 창조의 촉매’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민간 공익단체의 역량을 개발하고 자립적 모금 환경도 조성해왔다. 2023년부터는 그 활동 영역을 임팩트 투자로까지 넓혔다.

지난 4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SVS) 주최로 열린 ‘사회적금융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아이코 코자키(Aiko Kozaki) JANPIA 임팩트 투자부문장을 <더나은미래>가 만났다. 인터뷰는 포럼 직후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JANPIA가 설립된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정부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워지자 시민사회 조직의 유연하고 신속한 대응 역량을 키울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국회의 초당적 협력으로 휴면예금 활용법이 제정됐고, 자금을 투명하게 운용할 기관으로 JANPIA가 지정됐다. JANPIA는 현재 아동·청년 문제, 빈곤과 장애 등 일상생활의 어려움, 지역사회 활성화 등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JANPIA는 자금배분기관을 통해 실행기관에 지원금을 전달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 구조의 장점은 무엇인가.
“이른바 3단계 구조다. 일본 전역의 다양한 지역과 과제를 폭넓고 분산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다. 일본에는 이미 지역별·주제별 중간조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와 현안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 각 지역이나 과제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중간조직의 역량을 키우는 효과도 있다. 우리는 자금배분기관을 단순한 전달자가 아닌 지원의 수혜자로 본다. 일선 실행기관과 중간조직 모두를 지원해 시민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자립성을 높이는 구조다.”
―자금배분기관을 선정할 때 기준이 있나.
“해당 기관이 해결하려는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도와 사업의 현실성, 타당성을 꼼꼼히 살핀다. 공공자금인 휴면예금을 관리하는 만큼 거버넌스와 투명성도 핵심 기준으로 본다.”
JANPIA는 이 과정에서 임팩트 측정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금배분기관뿐 아니라 실행기관도 자율적으로 임팩트 측정을 수행한다. 국민의 돈을 사용하는 만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평가 결과는 향후 사업 설계와 자금 운용 방식을 개선하는 데 활용한다.
―JANPIA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했던 대표 사례가 있다면.
“어린이 호스피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일본 전역에 어린이 호스피스는 단 3곳뿐이었다. 2021년, 자금배분기관인 하라다세키젠카이 재단이 휴면예금을 활용해 새로운 호스피스를 만들고자 했다. 3년간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2곳의 호스피스를 추가로 개소했다. 현재는 휴면예금 지원이 끝난 뒤에도 독립적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11개 실행단체가 네트워크에 참여해 어린이 호스피스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현장의 민간단체들이 공익 활동을 더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같다.
“그렇다. 기업과 개인의 식품 기부는 빠르게 늘었지만, 소규모 비영리단체들은 물류와 분배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무스비에 전국어린이식당지원센터’라는 NPO가 등장해, 지역 어린이식당과 커뮤니티 공간을 지원하는 중간기관을 육성했다. 한 지역에서는 어린이식당 수가 28곳에서 139곳으로 늘었다. 전국식품지원활동협의회(식쿄)도 휴면예금을 활용해 식품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 냉장 설비와 배송 수단이 없는 소규모 단체들이 기부 식품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난 2023년, JANPIA는 기존의 보조금 중심 지원 방식을 넘어 임팩트 투자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일본은 관련 법상 휴면예금은 보조금뿐 아니라 지분 투자나 대출 형태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동안은 운영 역량과 신뢰를 쌓기 위해 보조금 중심으로 운용했지만, 본격적으로 임팩트 투자에 나서며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현재 JANPIA의 임팩트 투자 규모와 목표는 어느 정도인가.
“임팩트 투자에서는 작지만 신중한 시작을 원칙으로 삼았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10억 엔 규모로 투자했고, 올해는 15억 엔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JANPIA는 임팩트 창출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때로는 마이너스 수익률도 감수하는 ‘임팩트 우선’ 투자 정책을 펴고 있으며, 원금 회수는 10~15년을 목표로 하는 매우 보수적인 전략이다.”
―실제 어떤 분야에 투자하고 있나.
“대표적인 분야는 저렴한 주거 같은 영역이다. 상업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인 만큼, 초기에는 ‘임팩트 우선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투자를 통해 초기 위험을 줄이고 상업적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다만, ‘투자’라는 단어 자체에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런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임팩트 투자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일본의 임팩트 투자 시장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다.
“일본 임팩트 투자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2024년 기준 시장 규모는 1153억 달러로, 전년 대비 150%나 늘었다. 하지만 생태계는 여전히 미숙하다. 영국과 미국은 재단이나 패밀리오피스가 ‘임팩트 우선’ 자금 제공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일본에는 이런 주체가 거의 없다. 대형 재단조차 이제 막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단계다.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재무 수익 우선’ 투자자가 중심을 이룬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여전히 개척자의 역할이 필요한 듯하다. 현재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JANPIA의 전략은.
“JANPIA는 임팩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시장에서 부족한 영역을 메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단순한 자금 제공자에 그치지 않고, 민간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촉진 자본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요 투자 대상은 농촌이나 인구 감소 지역에서 활동하는 벤처, 수익 실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초기 기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 등이다. JANPIA는 이런 분야에 자금을 지원하며 임팩트 중심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고 있다.”
아이코 코자키 부문장은 앞으로의 비전으로 “소규모와 지역 기반 단체의 접근성을 넓히고, 더 다양한 지역과 이슈로 임팩트를 확산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JANPIA는 보조금과 임팩트 투자를 모두 활용해 사회적 생태계를 강화하고, 다양한 사회 주체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의 마지막, 그녀는 조용히 말을 맺었다. “JANPIA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문제와 새롭게 등장하는 과제를 끊임없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