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의 시대, 기부를 다시 묻다 <4>
단체별 유지율 높이기 전략 고도화, 업계 가이드라인 마련 목소리 커져
“굿즈 캠페인을 통해 신규 후원자는 확실히 늘었습니다. 하지만 일정 비율은 굿즈 수령 후 곧바로 후원을 중단합니다. 모금 담당자로서 고민이 클 수 밖에 없죠.”
2020년부터 굿즈 캠페인을 담당해 온 한 NGO 실무자의 말이다. 정기 후원을 유도하는 ‘기부 굿즈’ 캠페인이 MZ세대 기부자 유입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굿즈만 수령하고 정기 후원을 중단하는 일명 ‘체리피커(Cherry Picker)’ 현상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늘고 있다. 굿피플 역시 굿즈 수령 이후 후원이 오래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모금 전문가는 “굿즈만 받고 후원을 끊는 사례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모두가 떠나는 건 아니며, 일부라도 정기 후원자로 남기 때문에 완전한 손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후원 지속’ 이끄는 사후 전략…체감 높이기 집중
일부 NGO들은 유지율을 높이기 위해 굿즈 전달 이후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고도화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팀 팔찌’ 굿즈를 제공한 후, 정기후원 100일이 넘어야 착용할 수 있는 ‘참(charm)’ 3종을 추가 발송한다. 조종현 유니세프 후원본부장은 “후원을 이어갈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각 참에 ‘유니세프 팀’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세이브원 팔찌’를 받은 후원자와 일반 정기후원자의 유지율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후원자에게 기금 사용처와 성과를 문자로 꾸준히 알리며 ‘기부 실감’을 높이고 있다. 재난 대응 등에 사용된 내역과 구체적 금액까지 전달하는 등의 방식이다.
밀알복지재단은 올해 1월 ‘국내 장애아동 결연 사업’을 첫 굿즈 캠페인과 연계했다. 내부적으로 유지율이 가장 높은 캠페인을 택해 굿즈 효과를 극대화한 전략이다. 박송희 밀알복지재단 온라인사업실장은 “굿즈로 시작한 후원도 사업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도록 후원자와의 소통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 “기부금 사용처 명확히 알리고, 투명성 확보해야”
후원자 반응은 엇갈린다. 20대 대학생 이모씨는 “SNS에서 본 셀럽 광고를 보고 팔찌가 예뻐 후원을 시작했지만, 기부금이 ‘아동’에게 전액 지원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세 달 만에 후원을 끊었다”며 “처음부터 기부금의 사용처가 명확했다면 계속 후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굿즈 수령 이후 2년째 정기후원을 이어가고 있는 직장인 강모씨는 “팔찌를 착용하면 ‘내가 후원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고, 볼 때마다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며 “처음엔 단순히 예뻐서 시작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부 굿즈는 후원 유입의 강력한 ‘첫 관문’ 역할을 한다. 하지만 NGO 업계에서는 굿즈 캠페인이 자칫 기부를 ‘물건과의 교환’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서정아 기아대책 나눔마케팅팀장은 “굿즈 캠페인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단체별 전략뿐 아니라 업계 전반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굿즈 캠페인의 정기후원 전환율이나 유지율은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다. 단체마다 온도차가 크고, 내부 데이터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도 신중한 분위기다. 일부에선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현경 한국공익법인협회 전문위원은 “굿즈 캠페인으로 유입된 기부자를 장기 후원자로 연결하려면 먼저 신규 기부자에 대한 분석과 관리가 필요하다”며 “이후 체계적 소통으로 단체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부자가 투명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기부자 눈높이에 맞춘 설명과 소통 채널을 다각화하고, 꾸준한 정보 제공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