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수현 샛별학교 대표
“오늘은 병원 예약할 때 쓰는 표현부터 연습해볼게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열린금호교육문화관의 한 교실. 어르신, 청소년, 외국인이 함께 앉아 수업을 듣는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대부분 대학생이다. 이곳은 조수현(22) 대표가 설립한 청년 참여 비영리 평생교육기관 ‘샛별학교’다.
샛별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 다문화가정,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어 문해교육부터 검정고시 준비까지, 주 6일 수업을 연다. 총 28개 강좌 모두 맞춤형, 전액 무료다.

조수현 샛별학교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청년은 단순한 기부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설계자”라고 말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 독일·미국서 배운 ‘사회적 책임’
조 대표가 ‘사회’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를 자퇴한 그는 국제로타리클럽의 ‘청소년 외교대사 프로그램’에 참가해 독일로 떠났다.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이 현지 가정에 머물며 학교에 다니고,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홍콩 이민자 가정, 환경 운동가 가정…그들과 지내며 난민 차별과 환경 문제를 피부로 느꼈어요. 독일 로타리클럽 어르신들께 파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이 경험은 그에게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를 각인시켰다. 이후 미국 국무부 초청 장학생으로 아칸소주에 4개월간 머물면서 그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했다.
“터널을 처음 본 사람들,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가정도 있었어요. 선진국 안에도 계층 격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배경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걸 배웠습니다.”
◇ 검정고시 준비하며 키운 ‘교육봉사’의 꿈
2020년 귀국한 조수현 대표는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 사각지대의 현실을 절감했다. “서울 대학에 가려면 검정고시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제가 살던 경남 밀양 하남 같은 지방에는 검정고시 정보도, 커뮤니티도 없었죠.”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과 입시 전략을 짜면서, 그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경험을 계기로 조 대표는 2021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18세의 나이에 샛별학교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미 지원 프로그램이 많았다. 조 대표는 문해교육 수요가 높은 어르신과 다문화가정으로 대상을 넓혔다. 그는 직접 아파트 경비원에게 부탁해 엘리베이터에 전단지를 붙이고, 유료 우체국 서비스를 이용해 우편함에 전단을 배포했다.
초기에는 출석생이 ‘0명’인 날도 잦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문을 열고 기다린 끝에, 현재 등록생은 80여명, 누적 수료생은 220여명, 검정고시 합격자는 70명이 넘는다. 수강생 70%는 어르신이며, 나머지는 학교 밖 청소년과 이주배경 가정이다. 자원봉사 교사 경쟁률은 6대1에 달한다.
샛별학교가 성장하면서, 조수현 대표가 과외비로 충당하던 운영비도 일부 외부 지원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의 공간 지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검정고시 프로그램 보조금, 교직원공제회의 예비교사 후원금 등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초, 샛별학교는 디지털 문해교육 과정을 신설했다. 계기는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말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젊다고 물 심부름을 도맡아 하신대요. 다들 인터넷 주문법을 몰라서요.”
조 대표는 어르신 가정을 찾아다니며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줬다. 이후 서울 곳곳에서 100여 명의 어르신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단순 교육이 아니라 ‘개인별 필요에 맞춘 실용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 찍는 법, 앱 설치 방법, 개인정보 보호까지. 샛별학교는 생활 속 디지털 문해를 가르치고 있다.
◇ 지식 전달 넘어 ‘존엄감 회복’까지
조 대표는 샛별학교를 “지식 전달을 넘어 존엄감을 회복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한 어르신은 배운 글씨로 직접 편지를 써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던 수강생은 “샛별학교에 오는 게 삶의 낙”이라고 털어놨다. 언어 장벽과 고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결혼이주여성 한 명은 “이제 한국이 조금씩 좋아진다”며 배운 한국어로 마음을 전했다.
조 대표는 올해 안에 샛별학교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전국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동시에 청년들이 ESG·CSR 컨설팅, 사회공헌 플랫폼 구축에도 참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왜 그는 이 모든 계획의 중심에 ‘청년’을 세우려 할까. 그 이유를 묻자, 조 대표는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가 또박또박 답했다. “제가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누리는 자유도, 이전 세대의 희생과 헌신 덕분입니다. 그 빚을 잊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포부가 아니라, 다가올 시간을 향한 묵직한 약속처럼 들렸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