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 77% 계획했지만…실제 활용은 19% 불과
“기술 투자 없이 뒤처질 것” 위기감 커져
미국의 다수 비영리단체가 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과 전문 인력 부재로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역량이 있는 단체와 그렇지 못한 단체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비영리 전문 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Chronicle of Philanthropy)는 최근 미국 내 350여 개 비영리단체 리더를 대상으로 기술 관련 인식과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들은 “기술 역량에 따라 단체 간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기술은 중요하지만 투자 여력은 ‘한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기술 역량 강화를 조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기술 투자 비중이 전체 예산의 5% 이상인 단체는 13%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딜로이트는 영리 기업이 평균적으로 기술에 매출의 5.85%를 투자한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한참 적은 수치다.

기술 투자 격차는 단순한 업무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예산이 부족한 단체일수록 기본적인 이메일 관리나 사이버 보안 유지에도 애를 먹고 있었다. 반면 기술에 예산의 3% 이상을 투입한 단체는 첨단 도구 활용 비율이 2배 이상 높았다. 기술 역량이 높은 단체는 AI 기반 도구로 모금 활동 성과를 높이고, 이를 다시 기술 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기술력이 부족한 단체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셈이다.
기술 준비 부족도 심각하다. 77%의 단체가 “향후 5년 내 AI 도입 계획”을 밝혔지만, 현재 “AI 등 선진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9%에 그쳤다.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는 “다가오는 변화를 인지하면서도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가면, 기술 격차는 단체뿐 아니라 이들이 지원하는 지역사회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줄리 레이스킨 콜로라도 장애인 연합 사무국장은 인터뷰에서 “AI를 활용해 매력적인 자료를 제작하는 기술 중심 단체들과 달리, 당사자 주도 단체는 점점 자금 유치에서 밀리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직접 지원하는 단체일수록 더욱 뒤처지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 디지털 격차 빈익빈 부익부, 기초 지원조차 부족
예산 부족은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혔다. 응답자의 88%는 “기술 전략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예산 부족”이라고 답했다. 64%는 내부에 기술 전문 인력이 없다고 밝혔으며, 62%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검토할 시간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인력·시간·자원이 모두 부족한 형편이다.
뉴햄프셔에서 소규모 비영리단체를 자문하는 데이터베이스 전문가 베키 케이트는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다”며 “많은 사람들이 기술 자체와 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술 지원 예산을 후원하는 기금은 많지 않다. 비영리 이사회와 기술 전문가를 연결하는 플랫폼 ‘보드데브(Board.Dev)’의 알리시아 하네만 대표는 “기술 관련 지원금을 주는 기금이 거의 없으며, 있어도 혁신적인 AI 프로젝트에만 집중된다”고 밝혔다. 그는 “기초적인 기술 역량조차 갖추지 못한 단체에 AI를 시도하라고 압박하는 기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네만 대표는 팬데믹 당시를 거론하며 “기술 전환에 실패했던 단체들이 당시 시장에서 사라졌다”며 “현재 연방 정부 예산 삭감과 국제개발 예산 축소 국면에서 다시 한 번 디지털 전환이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때는 긴급자금과 기부자들의 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더 어렵다”며 “마이크로소프트, 훗스위트, 메일침프 등이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제공하던 시대도 끝났다”고 말했다.
◇ AI, 효율적 도구인가…만병통치약 환상 경계해야
일부 기술 친화적 단체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잡고 있다. 푸드스탬프 신청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로 출발한 ‘엠릴리프(mRelief)’는 최근 AI를 활용해 복지 자격 판별·신청을 돕고 있다. 사업 영역도 여성·영유아 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확대됐다.
기술은 자원이 부족한 단체일수록 효율적 업무 처리를 돕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캔자스주 노숙인 지원 단체 ‘패밀리 프라미스 오브 그레이터 위치타’는 개발 부서 직원 1명이 ChatGPT 등 도구를 활용해 모금·커뮤니케이션·커뮤니티 업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다.
우울 및 조울증 지원 단체 DBSA는 자동화 도구를 도입해 주당 10~15시간의 행정 업무를 줄였고, 이를 전략적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DBSA는 “AI는 직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과중한 업무 속 여유를 만들어주는 도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술 기반이 약한 단체들이 무리하게 AI를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테크 매터스(Tech Matters)의 창립자 짐 프럭터만은 “기금이 끊긴 단체들이 커뮤니케이션팀을 해고하고 블로그를 AI로 도배하거나 저소득 농가에 AI를 무리하게 실험하려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신 기술에만 집착하지 말고, 접근이 쉬운 기술부터 차근차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