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노릇’을 되돌아볼 때 종종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이다. 아픈 아이를 두고 회의실로 향한 날, 학부모 모임 대신 야근을 택한 순간. 이런 경험은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 ‘죄책감’으로 남는다.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양육 죄책감(Parental Guilty)’이라는 개념으로 주목하고 있다.
‘양육 죄책감’은 부모가 자녀를 충분히 돌보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겪는 감정이다. 특히 어머니에게 빈번하게 나타나며,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할수록 그 강도는 높아진다. 돌봄 부담이 집중되는 한부모 가정이나 장애아 가정에서도 양육 죄책감이 더 두드러진다.

임혜빈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교수는 지난달 22일 루트임팩트가 개최한 DEI LAB 세미나 ‘돌보는 조직은 무엇을 바꾸는가’에서 국내 워킹맘 45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루 6시간 이상, 주 5일 이상 일하는 여성 대다수가 양육 죄책감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이 감정이 ‘경력 몰입(일에 대한 애착과 지속 의지)’을 낮추는 주요 요인으로 확인됐다.
연구에 따르면, 양육 죄책감이 커질수록 경력 몰입은 줄고 일·가정 갈등은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일과 가정이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할 때는 죄책감이 줄고 직무 만족도는 높아졌다. 특히 업무 자율성이 높을수록 양육 죄책감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임 교수는 “일에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관리·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완충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유연근무제, 직장 어린이집 등 돌봄 친화적 지원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임팩트 지향 조직을 위한 공동 직장어린이집 ‘모두의 숲’(루트임팩트) ▲입주자 대상 ‘다람 패스트파이브 어린이집’(패스트파이브) ▲거점형 ‘우리동네 토스 어린이집’(비바리퍼블리카)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주목받고 있다.
다만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는 여전히 더디다. 여성가족부 통계(2023년)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7분으로, 남성(54분)보다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 “자녀 양육은 여성이 주 책임”이라는 인식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그리디 워크(Greedy Work)’ 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리디 워크’는 무한한 시간과 헌신을 요구하는 조직 문화로,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 몰입 없이는 성과를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조직 문화 속에서는 일·가정 균형을 위해 업무 속도를 조절하면 전문성 저하로 평가받기 쉽다.
이수란 서울사이버대 군경상담학과 교수는 “성별이나 자녀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