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가 보는 K-유산기부의 현실 <5>
‘남기는 것’을 넘어 ‘돌보는 것’으로
유산기부 상담 현장에서 최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재산을 사회에 남기겠다는 의사와 함께 “나를 돌봐줄 수 있느냐”는 문의다. 고령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유산기부는 단순한 자산 이전을 넘어 ‘돌봄’의 문제와 맞닿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실제로 일부 기관에는 기부 상담을 계기로 관계를 맺고 싶어 하거나, 생애 말기 돌봄과의 연결 가능성을 묻는 사례가 이어진다. 가족 중심의 돌봄 구조가 약해지면서, 유산기부가 관계의 공백을 드러내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분석된다.
◇ 유산이 향하는 곳은 ‘돌봄’…상속 패러다임의 변화
유산기부는 자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계와 돌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실무자는 “수십억 원대 자산가인 고령 후원자가 상담 과정에서 한 시간 만에 자신의 삶을 모두 털어놓으며 임종과 장례까지 맡아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며 “경제적 여유와 별개로, 돌봄을 요청할 관계가 없는 ‘고립’ 상태를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유산기부 상담은 단순한 후원 안내를 넘어 ‘생애 설계 상담’으로 바뀌는 중이다. 과거에는 자녀가 재산을 상속받는 대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가족 중심의 돌봄 체계가 약해지면서, 그 역할을 비영리나 공공이 일부 나누어 맡기 시작했다.
고영주 희망친구 기아대책 IMC본부 차장은 “1인 가구 고령층에게는 단체와의 지속적인 관계와 소통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NGO의 역할이 단순 후원을 넘어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현장에서 부딪히는 한계도 분명하다. 기부자는 ‘관계로서의 돌봄’을 기대하지만, NGO는 기부금을 통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직접 돌봄이나 후견을 맡기에는 제도적·기능적 제약이 있다.
한계를 먼저 풀어낸 곳은 해외다. 일본은 유산기부와 돌봄을 결합한 모델을 이미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NPO법인 ‘리스(LISS)’는 ‘계약 가족’ 서비스를 통해, 기부나 유증을 약정한 개인에게 신원 보증부터 입원 수속, 간병 연계, 장례와 유품 정리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유산기부가 단순한 후원을 넘어 ‘생애 설계 서비스’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지원 세이브더칠드런 필란트로피팀장은 “유산기부는 자산을 가족이 아닌 사회에 남기는 방식인 만큼, 기부자에 대한 돌봄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돌봄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기관과의 협업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경 밀알복지재단 ESG협력실 특별후원팀장도 “돌봄 수요가 커진 오늘날,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가 곧 가족”이라며 “돌봄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유산기부 역시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짚었다.
◇ 확장되는 NGO의 역할, ‘돌봄’의 연결자로
돌봄 수요와 제도적 한계가 맞물리면서 NGO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직접 돌봄을 맡기보다는,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일부 단체들은 후견, 장례, 건강관리 등 영역에서 외부 기관과 연계해 대응하고 있다. 윤예슬 초록우산 자산기금팀장은 “성년 후견이 필요한 경우 후견 법인과 연계해 계약을 지원하고, 이후에도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소견 개시 시점 등을 살피는 등 관리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장례 영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다. 굿네이버스, 유니세프, 밀알복지재단 등은 웰다잉 지원 차원에서 장례 업체와 협약을 맺고 있다. 임현빈 굿네이버스 특별후원팀장은 “가족이 해외에 있어 장례를 맡겨야 하거나, 1인 가구가 소규모 장례를 원하는 경우 등 현장의 수요가 늘면서 이를 반영해 협약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한다. 굿네이버스는 별도의 재단법인을 통해 경기도 시흥에 시니어 공동 거주 공간을 조성하고 있으며, 후원자들이 거주와 봉사를 병행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다. 이는 유산기부 상담 과정에서 노후 거주 문제를 고민하는 기부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 ‘자산 이전’에서 ‘삶의 마무리’로, 유산기부의 재정의
이러한 변화는 유산기부의 의미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든다. 단순한 재산 이전을 넘어,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됐다.
이진아 월드비전 고액후원팀 책임매니저는 이를 ‘자산의 사회적 환원’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측면으로 설명했다. 그는 “1인 가구의 경우 사후 자산이 국가로 귀속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공익단체를 통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며 “평생 일군 자산의 사용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산기부는 하나의 웰다잉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김봉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회공헌본부 고액후원팀 매니저는 “유산기부는 부의 재분배와 공공 부담을 분산할 뿐 아니라 1인 가구 증가와 노년기 고립 등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며 “최근에는 약정 이후 커뮤니티 참여를 문의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사회적 관계와 참여를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전했다.
지윤진 사랑의열매 전략모금팀장은 “고령화로 복지 수요는 늘어나고 이를 부담할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이라며 “유산기부는 개인의 자산이 다시 사회에 쓰이도록 하는 하나의 자원 순환 방식”이라고 짚었다.
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