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랑의열매 ‘전환의 시대, 사회공헌을 다시 묻다’ 북토크
“ESG 대응 넘어 외부 파트너십과 더 넓은 사회 의제 연결해야”
“기업 사회공헌은 ESG 턱걸이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김소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채그로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이같이 말했다.
북토크는 지난해 11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가 출간한 ‘전환의 시대, 사회공헌을 다시 묻다’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저자인 김소영 연구위원을 비롯해 신혜미 런던대 로열 홀로웨이 경영대학 교수, 고대권 이노소셜랩 대표, 서진석 이노소셜랩 이사, 조성도 마이오렌지 총괄대표가 참석했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와 비영리기관 실무자 약 60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 ESG 전략이 된 사회공헌, 본래 역할 되짚어야
지난 몇 년 사이 ESG는 기업 경영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책은 국내 ESG 열풍이 본격화한 시점을 2020년 4분기로 꼽는다. 관심은 수치로도 드러났다. 2020년 8월 455건이던 ESG 키워드 보도는 2021년 3월 13배 이상 늘었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선언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한편, ESG 평가 대응과 공시 준비, 전담 조직 신설에도 속도를 냈다.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사회공헌도 ESG 전략 체계 안으로 들어갔다. ESG 평가 지표에 맞게 설계되고, 기업의 리스크와 기회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서진석 이사는 “2022년과 2025년 사회공헌·ESG 담당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 ESG 체계로의 전환이 현장에서 체감됐다”며 “2022년만 해도 ‘팀원 세 명이 ESG 업무를 하는데 인원도 예산도 부족하다’고 했던 담당자가, 최근에는 사회공헌을 어떻게 ESG에 접목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사회공헌이 ESG 체계로 편입되면서 본래 목적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 이사는 대표적으로 ESG와 사회공헌 의제 사이의 간극에 주목했다. 그는 “환경 영역에서는 ESG와 사회공헌 이슈가 비교적 맞닿아 있지만, 사회 영역에서는 ESG가 공급망·인권 실사·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기존 사회공헌은 안전·고령화·저출생에 무게를 두고 있어 차이가 생긴다”고 짚었다. 서 이사는 기업 내부의 가치사슬만으로 사회공헌을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혜미 교수는 해외에서는 ESG가 오히려 사회공헌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유럽에서는 사회적 의제를 정부가 해주는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ESG를 통해 사회(S) 영역이 주목받으면서 기업들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경제 위기로 현금 기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물 지원이나 임직원 자원봉사 시스템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회공헌 참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 AI, 업무 효율화 넘어 사회공헌 전략 도구로

AI는 사회공헌의 기획과 실행 방식을 바꾸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조성도 마이오렌지 총괄대표는 AI를 사회공헌 영역의 위기이자 기회로 진단했다. AI 확산이 일자리 재편, 디지털 격차 심화, 알고리즘 편향 등 새로운 위험을 만들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공헌의 판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앤트로픽 연구에 따르면 클로드가 지원한 업무의 27%는 AI가 없었다면 수행하지 않았을 일”이라며 “사회공헌 영역에서도 자금·인력·전문성이 부족해 못 했던 일들이 AI를 통해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AI 활용이 단순히 질문하고 답을 얻는 단계나 보고서·회의록 작성 등 업무 효율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그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코드를 작성하는 ‘바이브 코딩’을 언급하며, 사회공헌 실무자들도 AI를 활용해 새로운 기획과 실행 방식을 실험할 것을 제안했다.
조 대표는 엔비디아가 공개한 한국형 가상 인물 데이터셋 ‘네모트론-페르소나-코리아’를 활용 사례로 들었다. 이 데이터셋은 국내 공공 통계를 바탕으로 만든 700만 개 규모의 합성 페르소나로, 지역·인구통계·직업 등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다. 그는 “사업 기획 단계에서 특정 지역과 대상이 사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상 설문조사나 집단 인터뷰 방식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며 “가상으로 한 차례 실험해보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더 정교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안전하고 익숙한 의제 넘어 사회공헌의 폭 넓혀야

이날 논의는 사회공헌의 대상과 의제를 더 넓혀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고대권 이노소셜랩 대표는 기업 사회공헌이 상대적으로 동의를 얻기 쉬운 대상과 의제에 집중해왔다고 봤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쉽고 누구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 쉽지만,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약자가 되면 별로 도우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고 대표는 사회공헌이 더 다양한 대상과 의제로 확장되려면, 개별 지원을 넘어 사회적 의제 자체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지 영역과 시민사회의 교류가 많지 않은데, 어떤 주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해져야 기업 사회공헌이든 정책이든 움직일 수 있다”며 “사회 이슈 주변의 활동가와 단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사회공헌의 영역도 넓어진다”고 말했다.
신혜미 교수는 사회공헌 의제를 넓히려면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도 작은 시도부터 다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쟁이 생길 수 있는 영역은 비영리도 기업도 내세우기 꺼려 결국 쉬운 길을 가게 된다”면서도 “기존에 잘하고 있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공헌을 이어가되,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GBTQ+ 등 사회적 소수자 의제를 예로 들며 “한국에서는 부담이 큰 사회공헌이 될 수 있지만, 하나하나 의제를 던지는 것 자체가 큰 벽을 깨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책은 사회공헌이 주어진 문제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과 비영리, 시민사회가 함께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날 논의 역시 사회공헌이 ESG 대응이나 평판 관리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 안팎의 자원과 더 넓은 사회적 의제를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모였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