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기부, 늘고는 있지만…여전히 1% 안팎에 그쳐

단체가 보는 K-유산기부의 현실 <1>
문의 늘고 연령 낮아지고…‘전 재산’ 아닌 일부 기부도 확산

유산기부를 둘러싼 움직임은 분명 이전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부로 이어지는 비중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변화의 흐름과 현실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을까요. <더나은미래>는 국내 주요 비영리단체 8곳(굿네이버스, 기아대책, 밀알복지재단, 사랑의열매, 세이브더칠드런, 유니세프, 월드비전, 초록우산)을 대상으로 공동 인터뷰를 진행해 유산기부의 현주소를 짚었습니다. 상담 현장에서 감지되는 변화부터, 진입·실행·문화 전반에 걸친 장벽까지 기관의 시선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유산기부의 현주소부터, 이를 가로막는 장벽과 구조적 과제까지. 유산기부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단계적으로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요즘 유산기부 문의가 확실히 늘었습니다.”

국내 주요 NGO 담당자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현장 분위기다. 아직 전체 기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유산기부를 둘러싼 관심과 움직임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평가다.

재단별로 구체적인 수치는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문의는 증가세를 보인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지난해 유산기부 문의가 전년 대비 약 1.5배 늘었다고 밝혔다. 굿네이버스와 월드비전 역시 상담 건수가 2배 가까이 뛰었다고 전했다.

약정 규모도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초록우산은 유산기부 약정자가 전년 대비 144% 증가했다고 밝혔으며,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전체 유산기부 약정의 약 44%가 최근 3년 사이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누적 82건의 유산기부 약정을 기록한 가운데, 2025년에만 23건이 새롭게 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산기부를 바라보는 기부자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유산기부가 무엇인가”를 묻는 말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나”를 묻는 상담이 늘었다. 지윤진 사랑의열매 전략모금팀장은 “예전에는 유산기부의 정의 자체를 많이 물었다면 요즘은 구체적인 창구와 절차를 알려달라는 질문이 많다”며 “공증이나 유언대용신탁 같은 실행 방식까지 알고 오는 경우도 늘었다”고 말했다.

기부 동기도 더 구체적이고 분명해졌다. 단순히 재산을 남기는 차원을 넘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문제의식을 마지막 자산 배분에 반영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임현빈 굿네이버스 특별후원팀장은 “예전에는 처분이 어려운 자산을 어떻게 정리할지 묻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어떤 사회문제에 쓰이고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한 뒤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 낮아진 연령대, 늘어나는 1인 가구

유산기부자의 연령대도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70~80대 고령층 중심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60대는 물론 40~50대, 나아가 20~30대까지 문의와 약정이 이어지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에는 만 26세에 보험 수익자를 공익단체로 지정한 사례가 있었고,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도 지난해 만 30세 약정자가 나왔다.

김봉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회공헌본부 고액후원팀 매니저는 “최연소 약정자는 ‘열심히 모으고 불려서 기부한다는 평생의 목표가 생겨 뿌듯하다’고 말했다”며 “유산기부가 당장의 지출이 아니라 삶 전체를 두고 설계하는 목표로 받아들여지면서 젊은 층의 관심도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부자 유형의 확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호경 밀알복지재단 팀장은 “자녀가 없는 1인 가구뿐 아니라, 이미 자녀들에게 충분히 자산을 물려준 뒤 남은 ‘여분의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분들도 ‘이제는 때가 됐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진아 월드비전 고액후원팀 책임매니저 역시 “40~50대에서도 미래를 대비해 자산 계획의 한 축으로 기부를 선택하는 사례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맞물려 1인 가구 증가는 유산기부 확산의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주요 NGO들은 빠짐없이 1인 가구의 유산기부 문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배우자나 자녀 등 가까운 상속인이 없는 경우가 많아 자산의 사후 처분을 보다 자율적으로 설계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록우산에 따르면 지난해 유산기부 신탁 가입자 중 3분의 1 이상이 1인 가구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국내 1인가구는 전체의 36%인 약 804만 가구에 달한다. 이들은 상속 구조상 제약이 적어, 평생 형성한 자산을 공익에 활용하려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삶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사회에 유산으로 남기고자 하는 문의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후 절차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점도 유산기부를 고민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일부 1인 가구의 경우 유산기부 상담이 단순한 기부를 넘어 장례나 행정 처리 등 사후 준비 전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건강 이상이나 입원 등을 계기로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산기부를 결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 유언장 넘어 신탁·보험까지…기부 방식도 진화

유산기부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한 기부가 늘고 있다. 이는 생전에 신탁 계약을 통해 자산의 관리·처분 방식을 미리 정해두는 금융상품으로, 생전에는 자산을 운용하며 생활비로 사용하고 사후에는 남은 재산을 공익단체에 기부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기부 자산의 형태 역시 확장되는 추세다. 전통적인 부동산이나 현금뿐 아니라 보험 수익자를 단체로 지정하는 ‘보험기부’,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자산을 활용한 기부에 대한 문의도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유산기부가 더 이상 ‘전 재산을 남기는 고액 자산가의 선택’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재산만 기부하거나 보험 수익금, 신탁 일부를 지정하는 방식이 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접근 가능한 기부 방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지원 세이브더칠드런 필란트로피팀장은 “과거에는 사망을 앞둔 고령층이 전 재산을 기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부담이 적은 형태의 유산기부가 늘고 있다”며 “보험이나 신탁을 통해 자산 일부를 기부로 설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특히 보험기부는 젊은 세대에서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영주 희망친구기아대책 IMC팀 차장도 “유산기부를 전액 기부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금액이라도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기부를 부담이 아닌 일상적인 선택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부 이후’까지 관리…NGO의 대응 전략 변화

유산기부 확대에 맞춰 NGO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8개 기관 중 6곳이 유산기부자를 위한 별도의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유산기부의 특성상 약정과 실제 집행 사이에 긴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집행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장기간에 걸쳐 기부자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각 기관은 정기적인 연락, 행사 초청, 맞춤형 상담 등을 통해 기부자와의 접점을 유지하고 있다.

초록우산은 2019년 유산기부 약정자를 위한 ‘그린레거시클럽’을 발족하고 별도의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서약식이나 헌액식 등 기부 의사를 공식화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정기적인 안부 확인과 상담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장례나 사후 행정과 관련된 정보를 안내하거나 외부 서비스를 연계하기도 한다.

윤예슬 초록우산 자산기금팀장은 “클럽을 통해 절차를 안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부자의 연령이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주기적으로 연락하거나 방문을 진행하고 있다”며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면 추가 상담을 제공하는 등 기부자의 삶의 과정에 함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과 달리, 실제 유산기부는 여전히 제한적인 규모에 머물러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개인의 상속·증여 재산 가운데 공익법인으로 이어지는 비중은 1% 안팎에 그친다. 인식 역시 충분히 확산했다고 보긴 어렵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사회조사’에서 유산기부 의향은 22.2%로 집계됐다.

반면 제도적 조건이 갖춰질 경우 참여 의향은 크게 높아진다. 지난해 11월 초록우산의 조사에 따르면, 재산의 10%를 기부할 경우 상속세의 10%를 감면해 주는 이른바 ‘레거시 10(Legacy 10)’ 제도 도입 시 응답자의 72%가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해 12월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유산기부 인식 조사’에서는 상속세 감면 등 제도 도입 시 기부 의향이 53.3%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기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유산기부가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진단하며 “자산 축적으로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과 잠재적 기부층은 확대됐지만, 상속에 대한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데다 세제 구조가 복잡해 실제 기부로 이어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부자에 대해 국가가 예우한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고, 세제 측면에서도 보다 단순한 구조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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