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가 보는 K-유산기부의 현실 <2>
전시회·캠페인·웰다잉 프로그램 등 ‘상속 문화’ 정착 선도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기부로 이어지는 규모와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 배경에는 ‘인지 부족’이 자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선택지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고, 유산기부는 일반 시민은 물론 복지 현장 실무자에게도 낯선 영역으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최지원 세이브더칠드런 필란트로피팀장은 “유산기부를 받을 수 있는 복지단체의 실무자조차 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관련 분야 종사자들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의 인식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제도와 사례 부족으로 실무 단계에서는 선례가 없어 혼선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윤예슬 초록우산 자산기금팀장은 “주택연금 잔액을 유산기부 하겠다는 사례가 있었지만 담당 공공기관에서도 전례가 없어 검토가 필요했다”며 “유산기부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사회적 준비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남기는 기부, 어떻게 전할까”…단체들 ‘공감 설계’에 주목
이 같은 상황에서 각 기관은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직접적인 기부 권유보다는 접점을 넓히고, 실제 유산기부 사례와 기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이 중심이다. 아직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만큼, 기존 후원자를 대상으로 관련 내용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 유산기부를 통해 조성된 기금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지난해 유산기부 후원자 모임 ‘헤리티지클럽’ 10주년을 맞아 기부자 사례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편지와 유품, 사진 등을 통해 기부자들의 삶과 철학을 조명했으며, 이를 계기로 신규 약정 23건과 상담 60건이 이뤄졌다. 고령 후원자를 대상으로 한 ‘노후를 바꾸는 시간’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강의와 함께 유산기부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고영주 기아대책 IMC본부 차장은 “유산기부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쉽게 이어지기 어렵다”며 “권유보다 실제 기부자들의 삶과 선택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중심 접근으로 인식을 확장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2021년부터 ‘내 인생에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상황을 가정해 삶의 마지막 순간 남기고 싶은 내용을 기록하는 ‘3일 노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남길 가치와 메시지를 돌아보게 하고, 사후 기부까지 생각을 확장하도록 유도하는 취지다.
사랑의열매와 밀알복지재단은 ‘웰다잉’ 문화 확산 사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웰다잉’은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미리 고민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사후 자산 활용까지 함께 고려되면서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추모기부는 유산기부의 한 방식이면서, 유산기부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초록우산은 온라인 추모관을 운영하며 추모기부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누구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산기부가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두려움과 연결되기 쉬운 만큼, 추모기부를 통해 죽음과 기부의 연결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돕는다는 설명이다.
◇ 신뢰, 유산기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현장에서는 유산기부에 대한 관심이 실제 기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본다. 유산기부는 사후 집행되는 특성상 기부자가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떠난 뒤에도 이 단체가 남아 있을까”, “내 뜻대로 집행될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유니세프에 유산기부를 약정한 한 후원자는 정기 후원을 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지만, 유산기부처로는 유니세프를 선택했다. 김봉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회공헌본부 고액후원팀 매니저는 “이 후원자는 자기 뜻이 실현되는 시점까지도 기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신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유니세프를 선택했다고 밝혔다”며 “유산기부는 일반 일시후원이나 정기후원보다 기관에 대한 신뢰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아 월드비전 고액후원팀 책임매니저도 “유산기부를 비롯한 고액 후원자들은 여러 단체를 두고 사업의 체계성과 운영 역량을 중요하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에 단체들은 유산기부 상담 단계에서부터 기부 이후 사업 진행 상황과 결과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어떻게 공유할지 설명한다. 사후에도 고인의 뜻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과정 자체가 신뢰를 쌓는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기부자가 가족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을 때는 함께 기부가 이뤄진 다른 단체나 지정한 대상에게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유가족을 직접 사업 현장으로 초청하는 사례도 있다. 임현빈 굿네이버스 특별후원팀장은 “올해 1월, 사망보험금을 기부한 유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1주기에 맞춰 네팔을 찾았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기부금으로 조성된 산지 진료소를 직접 둘러보며,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와 그로 인해 나타난 변화를 유가족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 장기전 되는 유산기부…리더십·전문성·시스템이 성패 가른다
“일시 기부나 정기 기부가 ‘콩나물’이라면, 유산기부는 ‘산삼’이죠. 당장 성과가 나는 구조가 아니고, 워낙 장기이기 때문에 조직이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김호경 밀알복지재단 ESG협력실 특별후원팀장의 말이다. 유산기부는 약정을 하더라도 기부금이 바로 집행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기 성과보다 장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유산기부는 신뢰와 투자가 바탕이 되는 기부다. 약정 이전뿐 아니라 이후에도 사망 시점까지 기부자와 장기간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시간과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영역인 셈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조직의 리더십이 유산기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더해 담당자의 전문성과 역량에 대한 투자도 함께 요구된다. 법과 세금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하고, 자산 처분 과정까지 따져야 해 일반 기부보다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 기부자마다 자산 형태와 가족 관계, 법에 따른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상담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변수도 많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안내가 이뤄지지 않으면 “복잡하다”, “잘 안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져 기부 의사가 꺾이기도 한다.
유산기부 문의가 들어올 경우 이를 조직 내에서 공유하고 학습하는 체계를 통해 상담 역량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사례 관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조직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리더십의 의지라는 설명이다.
지윤진 사랑의열매 전략모금팀장은 “현재 상담 추이를 보면, 앞으로 5~10년 안에 유산기부는 일부의 선택이 아니라 더 보편적인 상속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발맞춰 상담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부뿐 아니라 전국 지회 담당자들이 다양한 사례에 응답할 수 있도록 실무 관리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하나다.
전담 조직을 별도로 두는 경우도 있다. 초록우산은 고액 후원과 유산기부를 함께 관리하던 체계에서 나아가, 2024년 유산기부만 전담하는 자산기금본부로 개편했다. 다양한 형태의 자산으로 유산기부를 희망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 배경이다. 본부 개편을 통해 사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직 내 학습을 이어가면서 상담의 전문성과 대응 역량을 높여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산기부는 단순한 기부 방식이 아니라, 인식과 신뢰, 그리고 조직의 준비가 맞물려야 비로소 작동하는 영역이다. 인지 부족이라는 초기 장벽을 넘고, 기부 이후까지 이어지는 신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가 갈린다. 결국 유산기부의 확산은 개인의 결심을 넘어,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조직, 그리고 신뢰의 조건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김규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