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 세계 ‘탄소 배출권 가격’ 전쟁
탄소 배출권·탄소세 나라마다 천차만별
탄소 가격 낮추면 배출 감축 효과 ‘뚝’
중국, 배출권 거래 확대… 시장 더 커질 듯
최근 테슬라의 실적에 대한 엇갈린 전망이 쏟아졌다. 지난 4일(현지 시각) 세계 4위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가 테슬라에서 탄소 배출권을 사들일 필요가 없다고 발표하면서다. 스텔란티스는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앵의 합병으로 지난 1월 출범한 기업으로 탄소 배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면 2억유로(약 2700억원)에 달하는 탄소 배출권을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테슬라는 올해 1분기 순이익 4억3800만달러(약 495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탄소 배출권 판매로 챙긴 금액은 순수익을 웃도는 5억1800만달러(약 5850억원)에 이른다. 탄소 배출권 판매 수익이 없었다면 사실상 1분기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본업인 전기차 판매만으로 흑자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테슬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향후 탄소 배출 부담이 줄지 않으리란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탄소 배출 규제는 2030년까지 점차 강화되는 흐름이고, 이에 탄소 배출권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가별 제각각인 ‘탄소 값’ 감축 효과 있나?
탄소 중립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각 정부에서 내세우는 정책은 탄소 배출권(CER), 탄소세(Carbon Tax)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탄소 배출권은 정부에서 기업마다 탄소 배출량을 할당하고 이를 초과하면 경제적 부담을 지게 하는 이른바 ‘탄소 가격제’ 중 하나다. 테슬라가 지난해 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고 사상 첫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15억8000만달러에 이르는 CER 판매 수익 덕분이었다.
문제는 나라별로 매겨지는 탄소 가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세계 최대 탄소 거래 시장인 EU에서는 1이산화탄소 환산톤(tCO2eq)당 약 7만50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우리나라에선 1만8000원대에 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출 허용량을 초과한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탄소 가격이 싼 국가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탄소 가격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원래 목적인 탄소 배출 감축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 전문가들도 국가별 탄소 가격 비대칭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올초 한국경제학회 주관으로 열린 ’2021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탄소 배출권 거래에서는 한 상품에 한 가격이라는 ‘일물 일가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며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개도국이 선진국과 동일한 탄소 가격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동일한 가격으로 책정해야 한다면 낮은 수준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U에서는 CER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도 급등 중이다. 지난 12일 기준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탄소 배출권 가격은 1이산화탄소 환산톤당 54.83유로(약 7만5000원). 사상 최고가다. 탄소 배출권 가격은 지난해에만 약 37% 상승했고, 올해 들어서는 62.7% 급등했다. 2017년 2분기만 해도 5유로대에서 움직이던 것을 감안하면 3년 만에 10배 이상 오른 셈이다. 시장 규모로 따지면 지난해 2790억달러(약 310조원) 수준이며, 2017년 대비 다섯 배 성장했다.
문제는 탄소 배출권 시장이 조만간 대폭 확대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기후정상회의에서 주요국이 2030년까지 배출 감소 목표를 대폭 높이면서 탄소 배출권 가격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작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탄소 배출량이 어느 정도 감소했지만, 올해 경기 회복으로 다시 배출량이 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탄소 최다 배출국인 중국이 6월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행하던 배출권 거래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탄소 거래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세금이 탄소 배출 억누를까
탄소 감축의 또 다른 대안으로는 탄소세가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는 자금을 투입해 초과 배출량을 상쇄하는 방식이지만, 탄소세는 배출 절대량을 줄이지 못하면 기업에 직접 비용을 물리는 제도다. 세계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2020 탄소 가격제 현황 보고서’를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권 적용 대상은 31곳, 탄소세는 30곳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2%인 120억tCO2eq 규모가 관리되고 있다.
탄소세는 탄소 배출량이 적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은 나라에서 주로 운용되고 있다. 지난 1990년 핀란드가 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이후 유럽 국가 중심으로 확산했다. 세금 역시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스웨덴은 tCO2eq 당 119달러에 달하고, 스위스 99달러, 핀란드 58달러 수준이다. 탄소 배출량 세계 순위 5위인 일본은 1tCO2eq에 3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탄소세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탄소 가격 부과 체계 개편 방안’을 위한 연구 용역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발주했다. 결과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국회에도 탄소세 도입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세제 개편은 사회적 파급력이 상당하다. 국내에 탄소세가 신설되면 발전 에너지, 철강, 화학 등 탄소 집약 산업은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설문 결과에서도 기업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 중인 기업 684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2050 탄소 중립 목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57.3%가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라고 답한 반면 42.7%는 ‘현실적으로 탄소 중립은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탄소 중립 정책에 대응 중이라는 기업은 전체의 31.0%에 불과했고, 대응 계획 중인 기업은 33.8%, 대응하지 못한다고 답한 곳은 35.2%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탄소세 도입 시 2019년 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추가 부담을 추정한 결과 한 해 최소 7조2557억원에서 최대 36조2787억원으로 예측됐다. 전경련은 이산화탄소 환산톤당 세액 10달러를 부과했을 때 약 7조원, 30달러일 때 약 21조원, 50달러면 약 36조원을 부담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법인 세수와 비교하면 각각 10.8%, 32.3%, 53.8%에 해당하는 규모다.
탄소 가격제 확대로 기업에 미치는 충격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OECD 국가 중 무역 의존도가 둘째로 높고 석탄발전 비중도 크기 때문에 탄소 배출 비용에 대한 영향이 클 전망”이라며 “탄소세를 톤당 10달러 부과하면 업종별 영업이익률은 철강 1.7%p, 석유·화학 0.7%p, 전지 0.1%p 등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탄소 못 줄이면 땅에 묻어야
전 세계가 탄소 배출 감축에 속도를 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당선된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EU를 비롯해 중국과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특히 올해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국제적 행사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지난달 세계 40국 정상이 참석한 기후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오는 30~31일에는 한국 주도로 P4G 서울정상회의가 열리고, 6월 G7 정상회의,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이 개최된다.
기업들은 탄소 규제 강화 흐름에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월가에서는 탄소 포집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도 쓰레기처럼 땅에 매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유럽 국가들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저감에 대규모 자금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9일 네덜란드 정부는 로테르담 지역에서 벌이는 탄소 포집·저장(CCS) 산업에 보조금 20억유로(약 2조7100억원)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로테르담 항만의 공장과 정유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북해에 있는 네덜란드 소유의 빈 가스전으로 옮기는 사업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기술에 올해만 총 50억유로(약 6조8200억원)를 지급할 계획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CCS 산업의 규모를 2050년까지 100배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CCS에 대한 누적 투자금은 1조달러(약 112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CCS 기술로는 탄소 저감을 이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기존 이산화탄소 저장 기술은 기후변화 때문에 개발된 신기술이라기보다 석유를 시추할 때 쓰이는 기술에서 출발했다”면서 “지하 깊숙이 탄소를 주입하고 압력 캡을 씌우는 원리인데 현재로서는 경제성이 낮은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획기적 도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비영리단체 ‘엑스프라이즈’를 통해 탄소 포집 기술 공모에 상금 1억달러(약 1120억원)를 걸고 ‘탄소 제거(Carbon Removal)’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5년 지구의날까지 4년간 지속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 중 탄소를 연간 1000tCO2eq 제거하는 게 목표다. 포집한 탄소는 최소 100년 동안 격리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하는 조건도 달렸다. 머스크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확률이 0.1%에 불과하다고 해도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냐”며 “올바른 해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상금 규모도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