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개원 앞둔 21대 국회, ‘녹색 국회’ 실현될까?

[4.15총선 당선인 기후위기대책 분석]

4.15총선, 기후 위기 대책 주목
‘전체동의’ 73명 중 63명이 여당

지역별로는 광주·충남·제주 순
정당보다는 ‘지역 이슈’에 영향

3선 이상 중진의원 다수 포진
“근본 대책 마련할 것” 한목소리

21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오는 5월 30일 시작된다. 4년간 민심을 대변할 당선인들은 유권자에게 약속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역대 선거에서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이 처음으로 주목받았다. 기후 환경 정책을 강하게 주장한 소수 정당은 대부분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기후 대응을 정당 차원에서 핵심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은 ‘180석 거대 여당’을 구성하게 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더나은미래는 기후 위기 대응의 중요성과 제21대 국회의 역할을 되짚기 위해 4.15 총선 지역구 당선인들이 후보 시절 약속한 기후 위기 대책을 분석했다. 시민단체 연합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지역구 후보자 6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 위기 대응 정책 질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구 당선인의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따져봤다.

당선인 73명 “기후 위기 대응법 만들겠다”

이번 21대 총선의 지역구 후보자 가운데 기후 위기 대응법 제정을 약속한 당선인은 총 73명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후보자에게 기후 대응 관련 ‘4대 정책 요구안’ 동의 여부와 의견을 받았다. 이들이 제시한 4대 정책 요구안은 ▲국회 기후 비상 선언 결의안 통과 ▲탄소 배출 제로와 기후 정의 실현을 위한 기후 위기 대응법 제정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 ▲예산 편성, 법제도 개편 등 탈탄소 사회 기반 마련 등이다. 그 결과 후보자 241명으로부터 동의를 이끌어냈다. 선거구로 따지면 163곳에 이른다. 하지만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국회에 입성하는 당선인은 73명(전체 동의 70명, 부분 동의 3명)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당선인 180명은 조사에 응답하지 않았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홍준표, 윤상현, 김태호 당선인을 비롯한 8명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른바 ‘기후 정책’에 동의한 당선인 73명의 정당 분포를 살펴보면 여당 쏠림이 뚜렷했다. 더불어민주당이 63명으로 전체의 86.3%를 차지했고 미래통합당 9명(12.3%), 정의당 1명(1.4%)이 동참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광주 지역 당선인들이 가장 높은 87.5%의 참여율을 나타냈다. 이어 충남 72.7%, 제주 66.6%, 충북 50.0% 순이었다.

한편 전국에서 가장 많은 59석 지역구가 걸린 경기는 19명(32.2%), 49석의 서울은 20명(40.8%)이 기후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부산, 강원, 전북, 전남, 경북에서는 기후 정책에 지지하는 당선인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구는 지역구 당선인 12명 중 1명, 경남 역시 16명 중 2명에 불과했다. 전북·전남은 여당색이 짙고, 반대로 부산·경북은 야당 강세인 점에서 정당보다는 기후 문제가 지역 이슈에 미친 영향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석탄 화력 집중된 충남…당선인 11명 中 8명 지지

기후 정책에 대한 민감성은 지역 이슈와 큰 연관성을 보였다. 전통적 ‘스윙 보트’ 지역인 충남에서는 민주당 6석, 통합당 5석으로 양당이 비슷하게 의석을 차지했지만, 기후 정책에는 당선인 8명(민주당5·통합당3)이 뜻을 함께했다.

충남은 석탄화력발전소와 대형 제철소가 집중된 지역이다. 환경부가 공개하는 전국 625개 사업장의 굴뚝 자동 측정기(TMS) 통계에 따르면, 충남은 전국에서 대기오염 물질이 가장 많이 배출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대기오염 물질별 연간 배출량으로 따지면 먼지 212만7300kg, 황산화물 3385만3218kg 등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이다. 김정진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당진과 태안을 비롯한 충남 유권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정치권에서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많은 당선인이 기후 위기 대응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이 아닌 만큼 최대한 빨리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21대 총선 결과를 두고 이른바 ‘녹색 국회’ 실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후 정책 지지 당선인은 300명 중 73명에 그치지만, 기후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향후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180석 거대 여당의 의지만 있으면 의석 수에 밀려 실행하지 못했던 과제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언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장은 “기후 위기 대응 법안은 19대, 20대 국회에서 꾸준히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며 “정당을 떠나 기후 위기에 대한 높은 공감대는 확인됐고, 이제 구체적인 움직임을 따져 물어야 할 때”라고 했다.

중진 의원이 다수 포진된 점도 고무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3선 이상 중진 의원은 모두 22명이다. 변재일, 설훈, 송영길, 이낙연, 조정식(이상 민주당) 등 5선 의원이 5명이고, 4선 4명, 3선 11명 등이다. 특히 이낙연 당선인은 이번 정책 질의 답변에서 “기후 위기가 당면한 과제라는 사실에 공감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자원과 에너지의 무한정 공급에만 의존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사회를 형성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민주당 김성환 당선인은 “국회 개원 뒤 조속한 시일 내에 기후 위기 비상 선언 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며 “탄소 제로 사회를 위한 과감한 에너지 전환과 재정 투자가 필요하며, 효과 증진을 위해 ‘탄소 배출 가격제(carbon pricing)’를 통해 시장과도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에서 유일하게 지역구를 따낸 심상정 당선인은 “그린 뉴딜 추진 특별법을 제정해 탈탄소 사회로 전환할 계획 수립 등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의 기후 위기 대응은 세계적 추세

기후 위기에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건 세계적 추세다. 독일 정부는 올해부터 ‘탄소 배출 가격제’를 도입한다. 탄소 배출 가격제는 산업계에서 탄소를 배출한 양만큼 가격을 책정해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독일은 교통·난방 분야를 시작으로 적용 분야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영국은 지난해 ‘기후 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2050년 탄소 중립(Net-Zero)’ 달성을 기후변화법에 반영했다. 지난달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탄소 순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기 위한 유럽 기후 법안을 내놨다.

휘발유와 경유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과감한 정책을 예고한 나라도 많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인도는 2030년, 프랑스와 독일은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금지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수립한 ‘제2차 기후변화 대응 기본 계획’에서 2017년 총배출량 기준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4.4% 감축하기로 목표를 설정했지만, 환경 단체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10만톤으로 전 세계 7위다. 국민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세계 2위 수준이다. 지난달에는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정부와 국회의 기후 위기 방관은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설정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6년 5월 정했던 목표와 같고,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까지 제한하기 위한 파리기후협정을 이행하는 데도 훨씬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이번 헌법 소원에서 원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온다면, 정부와 국회에서 좀 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을 내놔야 한다.

기후 위기는 시간과 싸우는 문제다. 그간 선거 때마다 기후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 있었고, 정치인의 기후 위기에 대한 입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지언 위원장은 “정치인들의 기후 위기 대응에 입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일은 유권자들의 판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현재 기후 위기 대응 요구를 위한 지지서명을 받고 있고 오는 5월 21대 국회 개원 시기에 맞춰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21대 국회 임기 중인 오는 2022년 3월9일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각 정당이 기후 위기 문제를 중요 의제로 삼도록 여러 운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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