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일주일에 한 번 통화 한 달에 한 번 방문이… 할머니에게는 살아갈 힘 된대요

[동행 취재] 노인 자살 막는 생명지킴이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생명지킴이 이명희씨가 관리 대상자인 김정순 할머니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 사망률은 2017년 기준 10만명당 56.1명. 전 연령대 평균 수치인 24.3명의 2배를 웃돈다. 70~79세 연령층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은 6위로, 교통사고(7위)나 간 질환(8위)을 앞섰다. 2018년 OECD에 가입하며 한국을 제치고 ‘자살률 1위 국가’ 오명을 얻은 리투아니아도 노인 자살률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노인 자살의 주요 원인은 빈곤, 질병 그리고 외로움이다.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혼자 사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자살 가능성이 2배 이상 높다”며 “노인 자살을 예방하려면 지역사회가 이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시작한 ‘생명지킴이(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양성 사업은 지역사회 기반의 자살 예방 복지 서비스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생명지킴이들은 주변에 사는 자살 위기자를 방문해 관리하고 이들이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 기관에 연결해준다. 중앙자살예방센터나 광역 단위의 정신보건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 등에서 ▲자살 신호 인지 방법 ▲자살 위기자를 대하는 태도 ▲위기 상황 대응법 등 자살 예방 교육과정을 수료한 시민이면 누구나 생명지킴이가 될 수 있다.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길음2동 생명지킴이로 활동 중인 이명희(61)씨를 동행 취재했다.

 

매일 ‘죽고 싶다’ 생각했던 할머니 “내가 그랬나?”

“여보세요? 할머니, 지금 가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오전 11시 5분. 통화를 마친 이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11시에 간다고 했는데, 안 오니까 할머니가 전화하셨네요.”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김정순(75) 할머니의 집. “아이고, 선생님. 추운데 뭐 하러 와. 얼른 들어와서 여기 따뜻한 데 앉아.” 김 할머니가 전기장판이 깔린 방으로 이씨를 잡아끌었다. 이씨는 생명지킴이 활동을 시작한 2013년부터 지금까지 김 할머니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셨어요, 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씨가 김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할머니는 기억상실증이 올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어요. 처음엔 저한테 마음도 안 열고, 전화하거나 찾아가면 그저 귀찮아하셨죠.” “어휴, 내가 그랬나.” 김 할머니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김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요즘은 시간 맞춰 당뇨와 고혈압 약을 챙겨 먹으며 건강을 관리하고, 꽃대가 올라온 난을 가꾸며 기쁨을 느끼고 있다. 목표도 생겼다. “LH에서 나 같이 돈 없고 가족도 없는 노인들한테 임대아파트를 준다는데, 죽기 전에 거기 한번 들어가 살았으면 싶어요.” 이씨가 김 할머니 손을 꼭 쥐며 “저도 힘닿는 대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으니까 할머니도 포기하지 말고 자리 날 때마다 응모하시라”며 격려했다.

 

생명지킴이 활동 이후 노인 자살률 감소해

생명지킴이의 기본 업무는 관리 대상 어르신에게 주 1회 전화로 안부를 묻고 월 1회 직접 집을 방문해 건강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어르신 건강이 특히 좋지 않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걸고 매주 방문하기도 한다. 이씨는 “관리 대상 어르신과 가까이 사니까 오며 가며 잘 계시나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며 “자주 얼굴 뵙고, 수시로 전화해서 어르신의 외로움을 덜어 드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응급조치를 취하는 것도 생명지킴이의 임무다. 이씨는 “아침에 머리 감고 있는데 돌보는 어르신이 ‘죽어버리겠다’고 전화해서 샴푸도 덜 씻어내고 뛰어나간 적이 있었다”면서 “그래도 위기의 순간에 저를 찾아 주시는 게 고맙다”며 웃었다.

이씨와 김 할머니는 이웃 사람들의 근황이나 건강 문제 등 평범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저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은 거예요. 예전에는 열불이 나서 잠을 못 잤어. 그러면 그냥 나가서 아무 데나 막 돌아다녔지.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이게 다 고마운 우리 선생님 덕분이야.”

지난 2012년 생명지킴이 사업을 시작한 성북구에서는 올해 주민 220명이 생명지킴이로 활동하면서 노인 402명을 돌보고 있다. 박지용 성북구자살예방센터 생명지킴이 사업 담당자는 “2017년 성북구 노인 자살자는 20명으로, 사업 전인 2011년 자살자 50명에 비해 60% 감소했다”며 “주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게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해 생명지킴이 사업을 더욱 체계화할 예정이다. 배인정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행정사무관은 “100만명이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았다”며 “더 많은 사람이 생명지킴이로 활동할 수 있게 지침을 만들고 활동 성과를 연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은 “심각한 수준의 국내 노인 자살률을 생각하면 국내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지자체 중심으로 진행되는 생명지킴이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예산 확충 등 중앙정부 차원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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