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공익 칼럼]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한 정부-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은?

공익 칼럼

정선애 서울시NPO지원센터장

시립여성보호센터, 아동학대예방센터, 노인요양센터…. 우리 주변에 익숙한 민간 위탁형 지원 조직은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재정 적자가 심해지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공 부문의 사무를 민간으로 이전·확대한 것이다. 민간에서도 의사 결정과 예산 사용에 제약이 따르더라도 취약 계층 돌봄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적 서비스를 안정적인 재원으로 제공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서울시NPO지원센터, 대구 공익활동지원센터, 대전 사회적자본지원센터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위탁 방식으로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의제와 대상을 지원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시민사회 조직이 운영하는 민간 위탁형 조직들이 공적 서비스의 전달 체계 역할을 했다. 이들은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행정기관과의 ‘갑-을 관계’와 저예산 구조를 감내했다. 그러던 중 등장한 중간지원조직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중간지원조직은 다양한 동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여하는 시민이 많아지도록 뒷바라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무형의 공공재가 활용되도록 돕고, 시민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든다. 중간지원조직은 이처럼 시민에게 공간과 기회가 열리도록 행정을 설득하고 협업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중간지원조직은 프로그램 제공을 넘어 정부와 현장 조직과의 정책 공동 생산의 촉매 역할을 한다. 또 권한의 위임, 생태계 조성, 시민력 강화, 핵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개방적 의사 결정 구조 등에 관심을 갖는 조직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시민사회와 만나온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당신들이 하는 일이 괜찮은 거 같은데 우리가 돈을 좀 보태줄게’와 같은 접근은 보조금 제도와 연결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당신들이 좀 더 잘할 것 같으니 돈을 좀 보태줄게’와 같은 방식은 민간 위탁 제도와 만난다. 문제는 파트너십에 기반을 둔 협력 관계, 즉 ‘우리에게도 중요하고 당신들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의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서 해결할 일’에 대한 맞춤 제도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과거 시민 참여는 제안 공모 사업 혹은 의견서 제출 같은 의견 수렴 기능에 그쳤지만, 각종 위원회 제도나 공청회 제도가 생기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참여 기제로서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시민 참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고 있다. 시민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적 서비스의 공동 생산자이자 사회문제 해결의 능동적 주체가 됐다. 당면한 복잡한 사회문제를 정부 혼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노인 돌봄의 경우 지역사회 내의 호혜의 관계망에 따라 서비스 질이 달라진다. 해당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본의 성숙도에 따라 돈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어두워진 놀이터의 안전 문제를 CCTV나 민간 경비 회사에 맡길 것인지, 동네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언니·오빠·형·누나가 많아지게 하면서 해결할 것인지를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저소득·저성장 사회에서는 공공재를 만들어 공유하고 서로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이는 ‘강한 시민사회’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린이대공원을 ‘시설’로 관리하면 시민은 단순히 이용객에 그친다. 하지만 어린이와 놀이공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10년 후를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기회와 권한을 준다면 시민들은 그 공간의 주인이 될 것이다. 파트너십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참여가 아닌, 권한을 나누고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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