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웨이브
[기후 유니버스]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한 당신에게

퇴근 후 샤워를 하고 나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제철 요리를 해 먹는 시간이 요즘 가장 행복하다. 어떤 곳에서는 40도에 이르는 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올여름은 햇빛만 피하면 비교적 시원한 날이 길었고, 우기에 가까운 장마도 오래 이어지지 않아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7월 말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대로 곱게 지나갈 리 없다. 지난 6월 말 유럽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일주일 동안 무려 1만 명이 숨졌다. 올해도 이미 심각하지만 내년에는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지난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올해 슈퍼 엘니뇨가 발달하면서 2027년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폭염과 산불, 태풍, 가뭄과 같은 자연재난을 더욱 빈번하고 심각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기후위기로 인해 심화된다. 지난 3월 그린피스가 산불 피해 주민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난심리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확인됐다. 기후재난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트라우마는 오래 지속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은 주변 온도가 1~2도 오를 경우 폭력범죄가 3~5%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는 불쾌지수가 아니라 ‘기후범죄지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기후까지 걱정해야 하니, 비슷한 또래 여성들 사이에서는 출산 전부터 우려가 앞선다. 2021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3%가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 때문에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 특히

[기후 유니버스] 이재명 대통령님, 탄소중립 집무실은 어떠세요?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어. 근데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1박 2일로 놀러 간 펜션에서 고등학교 친구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10년 가까이 활동해왔지만, 들을 때마다 답하기 쉽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구나 싶어 고무적인 질문이다.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실천은 텀블러와 손수건 사용이었다. 가장 손쉬운 실천이면서, 몸이 먼저 움직이면 의식도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사무실엔 항상 텀블러를 두고, 손수건은 매일 아침 주머니에 꼭 챙겨 나간다. 환경을 위한 행동으로 시작했지만 덕분에 쓰레기통 비울 일도 줄었고, 매너 있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괜스레 어깨가 올라간다. 몇 번 하다 보니 자신감이 붙어 소비 생활도 달라졌다. 대나무 칫솔로 바꾸고, 저탄소 친환경 브랜드에서 옷을 주로 산다. 처음엔 이것저것 바꿔가며 나에게 맞는 걸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은 한 곳에 잘 정착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추천한 물건이 좋았다는 후기만큼 뿌듯한 것도 없다. 몇 년 전부터는 투자로도 기여할 방법을 찾았다. 바로 태양광 발전소 투자다. 앞서 했던 실천들보다 훨씬 많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정기적인 배당수익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햇빛발전협동조합을 찾아 가입하는 방법도 있고,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한 서비스도 생겨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최근 선거에서는 기후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했다. 불필요한 개발 공약은 없는지, 지역 단위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은 충분한지, 기후 피해로부터 주민을 보호할 대책은 있는지를 중심으로 따져봤다. 공보물만으론

[기후 유니버스] 기후와 늑구의 시간을 넘어

올해부터 야구 경기 관람에 취미를 붙였다. 초보 야구팬으로서 처음으로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자체에서 안전 안내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며칠 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구를 찾기 위한 수색이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고 나서야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스쳐 지나갔던 뉴스 헤드라인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혹시 대전을 돌아다니다 늑대와 마주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한편으로는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 야생성이 거의 없어 스스로 먹이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대전에 간 날은 늑구가 탈출한 지 나흘째였다. 늑구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반응이 뉴스를 뒤덮고 있었다. 공포로 시작된 관심이 어느새 한 생명체를 향한 걱정과 애정으로 바뀐 것이다. 너무 오래 발견되지 않아 어디선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닐까 싶던 무렵, 늑구 생포 소식이 들렸다. 일면식도 없고 대전 사람도 아니며 오월드를 가본 적조차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 늑구가 진정으로 바라던 삶이었을까 하는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늑구의 탈출기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국회에서 진행한 장기 감축경로 공론화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2월, 탄소중립기본법 입법 시한을 앞두고 국회는 대국민 공론화를 통해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권자인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공론화의 특성상 짧은 기간 안에 진행될 경우 충분한 학습과 숙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헌법불합치 판결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후기

2026년, 더나은미래 필진 12人을 소개합니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 실천적인 해법이 간절한 시대. 더나은미래가 새로운 필진 12인과 함께 변화를 이어갑니다. 기후위기부터 임팩트 금융, 비영리 거버넌스까지 우리 사회의 복잡한 난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구조적 대안을 제시할 필진을 소개합니다. 먼저 강창모 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자본과 사회 사이’를 연재한다. 기업금융과 자본시장 연구를 바탕으로, 복잡한 금융의 언어를 사회문제 해결의 맥락과 연결해 자본이 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쉽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의 최전선에 선 청년들의 목소리는 김민 빅웨이브 대표가 전합니다. NGO와 국회, 정부 위원회를 두루 거친 경험을 토대로 ‘기후 유니버스’ 코너를 연재하며, 사회 문제를 기후위기라는 렌즈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김성주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는 ‘필란트로피 인사이트’ 집필을 맡습니다. 단순한 기부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의 시스템으로서 자선을 조망하고, 글로벌 비교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적 맥락에 맞는 ‘K-필란트로피’의 방향과 거버넌스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을 담을 계획입니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은 ‘영리한 비영리’를 통해 현장의 고민을 전합니다. 15년간 공익활동을 지원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복잡해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거버넌스와 다자 협력의 필요성을 짚습니다. 임팩트 비즈니스 현장의 목소리도 담았습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임팩트비즈니스리뷰’ 코너를 통해 소셜벤처 투자와 ESG 신사업, 글로벌 확장 경험을 바탕으로 임팩트 비즈니스의 흐름과 변화를 분석합니다. 박훈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나눔과 세금 사이’를 통해 상속세와 기부세제를 중심으로 공익을 해석합니다. 세금이 공동체의 약속으로 작동하는 구조와 공익법인을 둘러싼 제도를 짚어볼 예정입니다. 윤세리 사단법인 온율 이사장은 ‘공익단체의 사업모델 혁신’을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율촌의 설립 파트너로서

[기후 유니버스] 평균의 함정에 빠진 기후정책

설날이 다가오면 어떻게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를 방어할까 고민이다. 결혼 적령기의 30대 멀쩡한 사내가 아직도 미혼이니까 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어 온 나의 부모 세대가 갖고 있는 삶의 법칙으로는 잔소리를 안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 때에 맞춰 인생의 중요한 미션들을 해결하길 자식에게 기대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써본다. 그러나 지금 내 직업과 자산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수도권에 자가를 보유하고 아이를 2명 기르고 있는 과거의 평균적인 삶이 청년세대에게 꿈 같은 이야기다. 결혼 시장에서 ‘육각형의 남자’라는 말이 있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6가지 조건(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을 모두 갖춘 남자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배우자의 모습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균보다 좀 더 나았으면 하는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평균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따져보면 실제로는 상위 1%다. 모두 충족하는 사람을 찾기 때문에 결국 여러 조건을 고려하다 보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균은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많은 사실을 감춘다.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그렇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1.5도 목표에서 1.5도는 전 지구적인 평균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구 온난화 속도는 평균 보다 2배나 빠르다. 작년 9월 기상청에서 발표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24년까지 113년 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2.8도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보다 2배나 빠르다. 이러한 사실은 외면하고 누군가는 기후위기 대응이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미국과

[기후 유니버스] 야 너도 태양광 할 수 있어

아파트, 주차장, 옥상 등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심심치 않게 태양광 패널을 볼 수 있다. 탄소중립 이행의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재생에너지, 그 중에서 태양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작년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설비 보급 목표는 72GW이며, 이 중 태양광이 약 75%(53.8GW)를 차지한다. 올해 새정부 출범 후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100GW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자가 소비를 제외한 태양광 설비는 작년 기준 27.1GW로, 3~4배 이상 늘어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재생에너지가 최소한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럼 재생에너지가 더 많아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변동성 문제를 보완할 ESS도 필요하고, 석탄과 원전 등 대형 발전원 중심의 전력망 운영 시스템도 바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혁신과 변화의 과정에는 양면이 있듯이, 재생에너지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석탄, LNG 등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 풍력이 많아지면 에너지 수입 비용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수입액은 1600억 달러, 약 234조 원에 달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면 그만큼 국제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충격도 줄어들고,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재생에너지로 인해 일자리도 새롭게 창출될 수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와 국제노동기구(ILO)는 2023년 전세계 재생에너지 일자리 수가 1620만 개로 2022년 보다 18%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다수의 일자리가 중국에서 창출되었는데, 이는

[기후 유니버스] ‘실현 가능한 NDC’라는 핑계에 대하여

2035 NDC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NDC란 파리협정에 따라 5년 주기로 각 국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일 지 제시하는 목표를 의미한다. 엄밀하게 보면 ‘국가 결정 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로 감축목표 외에 적응, 재원 등 다른 내용도 포함되지만, 이 글에서는 국내 여론과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법제화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의미한다고 해두겠다. 정부가 11월 초까지 2035 NDC를 확정하기로 발표한 가운데 4가지 복수안(48%, 53%, 61%, 65%)을 제시했다. 6차례 정부 주도로 토론회가 진행되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필자가 눈 여겨 본 것은 48%를 주장하는 산업계였다. 산업계의 의견은 2가지로 요약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업황이 어렵고, 국내적으로는 정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 감축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 필자가 탄녹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4년 전 2030 NDC 수립 당시에도 ‘실현 가능성’을 이유로 산업계는 40% 목표에 반대했는데, 그 때와 똑같은 주장에 기시감을 느꼈다. NDC 목표치에 대해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을 논한다면 최소한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산업계는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축수단별 감축량, 배출원단위, 설비 전환 계획 등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 정부 지원금이 얼마나 필요한 지만 말한다. 작년 기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국내 기업은 41곳이며, 주요 대기업은 로드맵과 청사진도 발표했다. 개별 기업은 앞다투어 탄소중립을 내세워 홍보하고, 기업 10곳 중 7곳은 탄소중립이 기업 경쟁력에

[기후 유니버스] 청년은 미래세대인가, 현재세대인가

기후 관련 공론장에 참석하면 늘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다.” 이 말은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일종의 ‘치트키’처럼 통한다. 곧이어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청년들”이라는 수식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필자 역시 여러 번 이런 자리에 섰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묘한 머쓱함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왜일까. ◇ 미래세대, 어디까지 포함되나 먼저, 미래세대는 누구인가. 국립국어원은 이를 “사회를 이끌어 갈 어린세대, 또는 앞으로 태어날 세대”로 정의한다. 범위를 좁히면 6세 미만의 영유아에서, 넓게는 10~20대 청소년과 20~30대 청년까지 해당된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00만 명에서 0세~34세 이하 인구는 약 1700만 명이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인구로 구분하자면 3명 중 1명(33%)이 미래세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를 ‘대표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를 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이익까지 고려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미래 지향적이냐는 점이다. 젊더라도 소비만 좇는 이른바 ‘욜로(YOLO)족’은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 반대로 나이가 많더라도 기후 대응을 위해 현재의 비용을 기꺼이 감당한다면, 오히려 미래세대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청년이 미래세대를 대표한다는 명제는 그럼 틀린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16세에 ‘기후 결석 시위’에 나섰고, 이는 전세계적 기후 파업으로 확산됐다. 그 결과 각국 정부는 앞다퉈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대중의 행동 문턱도 낮아졌다. 지난해 8월에는 탄소중립기본법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지며,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기후소송에서 승소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

전 세계 2967건…기후소송, ‘행동의 판결’로 간다

60개국 2967건 분석한 연례 보고서 공개 韓 헌재 판결, 동아시아 첫 기후책임 인정 사례로 주목 전 세계에서 기후소송이 확산하는 가운데,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판결의 이행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인정하면서, 동아시아 최초로 정부 기후책임을 명문화한 판결 사례로 기록됐다. 런던정치경제대(LSE) 산하 그랜덤 기후변화·환경연구소는 25일 ‘기후변화 소송의 글로벌 동향: 2025 스냅샷’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세계 최대 기후소송 데이터베이스인 ‘사빈 기후변화법 센터’의 자료를 바탕으로 1986년부터 2024년까지 총 60개국 2967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미국(1899건), 호주(164건), 영국(133건), 브라질(131건), 독일(69건)이 주요 소송 국가로 꼽혔으며, 코스타리카는 2024년 처음으로 기후 소송국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소송의 80% 이상은 각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됐으며, 276건은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등 최고 법원까지 올라갔다. 한국의 경우, 2023년 말 헌법재판소가 정부에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전환점을 만든 사례로 평가받았다. 보고서는 “단순한 승소 판결을 넘어, 정부가 실제로 얼마나 이를 이행하는지가 향후 기후소송의 최대 변수”라고 진단했다.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스위스 노인 여성들의 손을 들어주며 정부의 기후대응 실패가 생명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한 사건도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제사회는 해당 판결이 얼마나 현실에 반영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신규 소송의 20%는 기업이나 경영진을 상대로 진행됐고, 이 중 ‘기후 워싱(Climate-washing)’을 문제 삼은 사건이 25건에 달했다. 특히 호주에서는 ESG 채권을 홍보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 인베스트먼트’가

[기후 유니버스] 기후 용어가 기후 인식을 바꾼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관료나 전문가들만의 주제가 아니다. 이제는 밥상머리에서, 날씨를 묻는 일상 인사에서, 거실의 TV 앞에서 누구나 언급하는 공통의 화두가 됐다. 2022년 구글코리아가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 1위가 ‘기후변화’였다는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렇게 모두가 이야기하는 주제일수록 그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일이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미국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는 “언어는 사고의 본질과 내용을 규정한다”고 했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단어 하나에도 생각의 방향과 세계관이 담긴다. 그 단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관점이 읽힌다. 예를 들어보자. 흔히 ‘신재생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용어다. 신재생에너지는 3종류(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 액화∙가스화 에너지)의 신에너지와 태양광, 풍력을 비롯한 9종류의 재생에너지로 구분한다. ‘신재생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일부 포함하고 있어 친환경으로 보기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재생에너지’를 ‘소비되는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자연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정의한다는 것을 참고하자. ‘무탄소’와 ‘탈탄소’,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맥락은 다르다. 영어로는 각각 ‘Carbon-free’와 ‘Decarbonization’으로 번역된다. 전자는 단순히 탄소 배출이 없다는 ‘상태’를 뜻하고, 후자는 탄소를 줄여나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다시 말해, 결과 중심이냐 과정 중심이냐의 차이다. 수학으로 치면 스칼라와 벡터의 관계와 비슷하다. ‘무탄소’는 기술중립적 개념이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원자력 발전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기술낙관론과 결과 중심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지 탄소 배출을

[기후 유니버스] 대선후보의 기후공약, 무엇을 봐야 할까요?

대선후보들의 본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조기 대선으로 시간이 부족하지만, 유권자는 각 후보의 공약을 냉정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기후재난이 일상화되면서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파리협정 1.5도 목표를 일시적으로 초과했다고 밝혔다. 기후 마지노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술 현실성을 감안할 때, 화석연료 신규 프로젝트 중단과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다. 산업·교통·건물 등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임기 동안 가장 시급히 집중해야 할 분야는 에너지다. 온실가스 감축은 미래세대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이 관점에서 차기 정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6가지 기후 공약을 소개한다. ① 탄소예산 기반 2035년 감축목표 수립 ‘탄소예산’이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특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총 온실가스 양을 뜻한다. 올해 9월, 우리 정부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를 제출해야 한다. IPCC 6차 보고서는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2035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를 60% 감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국내 기후단체인 플랜1.5는 한국의 목표 감축률을 최소 66.7%로 제안한 바 있다. 환경부는 관련 초안을 오는 6월 말~7월 초 공개할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와 같은 혼란이 있었지만,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새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밝힐 감축 목표인 만큼, 한국의 기후 리더십에도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② 2049년까지의 장기 감축경로 법제화 2035년 목표뿐

[기후 유니버스] 연금개혁하면 기후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지난 3월 20일,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높아졌다. 그러나 본회의 표결에서는 반대와 기권을 합쳐 84표가 이탈했고, 사흘 뒤 여야 30‧40대 의원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개정안을 비판했다. 대학교 총학생회 등 청년 세대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국민연금 개정안은 명확하게 세대 갈등을 보여준다. 더 오래, 더 많이 보험료를 내야 할 미래세대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제한적이다. 부동산 자산과 연금을 모두 누리는 기성세대와 대비되는 구조다. 여기에 연금 부족분을 국고로 메우겠다는 방안 역시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일 뿐이다. 군 복무 크레딧 기간 축소, 출생률 1.2명 가정 등도 젊은 세대를 배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 1213조 굴리는 연금…청년은 왜 불안한가 세대 갈등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같은 모수 개혁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납부한 보험료가 어디에, 어떻게 운용되는지도 핵심 쟁점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말 기준 1213조원의 기금을 굴리는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지난해 수익률은 설립 이래 최고인 15%를 기록했고, 운용수익은 160조원에 달했다. 최근 5년 평균 수익률도 6.8%로, 글로벌 기준에서도 우량 투자기관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보험료 수지가 몇 년 뒤 적자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중기 재정전망(24-28년) 보고서에 따르면, 개혁안 통과 전 기준으로 2028년부터는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출이 많아진다. 개정안 반영으로 시점이 다소 늦춰질 수는 있지만, 적자 전환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보험료 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면 기금 운용의 원칙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장기 수익률을 추구하지만, 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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