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발언대] 임팩트 생태계의 텃밭에서 싹을 틔우다

한국 공교육 과정을 밟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익숙한 것이 있다. 바로 생활기록부의 ‘진로희망사항’ 칸이다. 희망 직업과 희망 사유를 매 학기 작성해야 하는 이 항목은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진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머뭇거렸다.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뚜렷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불평등과 분쟁을 바라보며 막연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나는 ‘취준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게 되었다. 구직 활동 중이던 나에게 한 지인은 임팩트투자사이자 액셀러레이터인 MYSC(엠와이소셜컴퍼니)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지난 9월, 나는 임팩트 생태계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 ‘사내기업가’로서 싹을 틔우다 MYSC는 ‘미래내일’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3개월간의 인턴십에서 나는 MYSC가 구성원들을 단순히 직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내기업가’로 정의하며 자율성과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곳은 개인의 성장, 성숙, 성과를 전 과정에서 조화롭게 추구하도록 독려했다. 지난 3개월 동안의 경험은 바로 그 ‘3성’에 진심인 조직이었음을 증명했다. 워크숍, 독서 모임, 티타임 등 자발적으로 진행된 활동 속에서 배움과 나눔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디자인씽킹 워크숍이 인상적이었다. 하루의 루틴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문제를 정의하고, 최적의 하루를 설계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성향을 파악하고 일상을 주도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아침형 루틴과 저녁형 루틴을 번갈아 시도하며 독서, 운동, 일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하루를

[사회혁신발언대] 임상시험 담당자로서 환자와 공감한다는 것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기업철학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회사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일하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회사 에자이는 모든 직원이 기업철학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며 일하는 곳이다. 에자이의 기업철학인 hhc(human health care)는 환자와 그 가족을 헬스케어의 중심으로 보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이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약 1만 명의 에자이 직원들이 이 철학을 바탕으로 환자와 가족의 관점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본사에는 hhc 활동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가, 한국에자이에는 기업사회혁신 부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2년 6개월 전, 에자이 의학부 임상 담당자로 입사했다. 임상시험 기획과 운영을 통해 신약 개발을 돕는 업무를 맡아왔다. 입사 초기에는 hhc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환자를 중심으로 약을 개발하는 건 제약회사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저 내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 부서에서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여한 혈액암 환자와의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의외로 임상시험 담당자로서 환자와 직접 마주할 기회는 거의 없다. 나 역시 임상 업무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이 인터뷰는 hhc 철학의 의미를 몸소 체감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은 임상시험과 관련된 실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겪은 불편함은 무엇이었는지?”, “제약회사가 개선해야 할 점은

누하 이자투니사(Nuah Izzatunnisaa)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 인도네시아
[사회혁신발언대] 플라스틱 상술에 갇힌 케이팝

나는 2018년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에이티즈를 보고 케이팝을 처음 알게 됐다. 리듬에 몸을 맡기지 않으려 애쓰다 실패하는 모습에 매료된 나는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고, 강렬한 사운드에 빠져들었다. 일주일 뒤에는 ‘I love you so much Yoonho’라는 트위터 헌정 계정을 만들며 열혈팬이 됐다. 팬이 된 뒤, 케이팝의 세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나보다 8년 먼저 엑소의 팬이었던 동생은 내 유난에 혀를 찼지만, 지금의 팬 활동은 단순히 유튜브 ‘좋아요’를 누르던 예전과는 다르다. 팬들은 밀리언셀러(음반 100만 장 판매 가수)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 직접 앨범을 주문한다. 한 장이 아니다. 앨범에 들어있는 ‘최애’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커버 사진이 다른 앨범을 모으기 위해 같은 음반 여러 장을 사는 것은 이곳 인도네시아 팬들에게도 기초적인 ‘덕질’에 속한다. 특히 한국 아이돌의 공연을 직접 보기 힘든 우리가 꿈에 그리는 덕질은 팬콜(fan call)이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와 1대 1로 화상 채팅을 하는 것인데, 불과 1분 남짓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경험이다. 팬콜 응모권은 앨범 구매에 따라 주어진다. 2021년, 나는 팬콜에 당첨된 친구가 8장의 앨범을 샀다는 소식을 듣고 15장을 주문했다. 그러나 구매대행사는 “30장은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60장을 사고도 떨어진 친구가 있었고, 150장을 구매한 사람도 있었다. 앨범 한 장이 약 22만 루피아(한화 약 2만 원), 150장이면 3300만 루피아(한화 약 29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인도네시아 사회초년생의 열 달 치 월급과 맞먹는다.

[사회혁신발언대] 로컬을 만나 진화하는 디자인씽킹

올해 여러 로컬 지역(제주, 안산, 전주, 경주, 청도, 밀양 등)에서 디자인씽킹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교육 요청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지역활동가는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습니다. “왜 로컬에서 다시 디자인씽킹이 유행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첫째,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접근성, 둘째, 문제 해결 당사자의 참여, 셋째, 문제를 가시화하여 공감을 이끄는 비주얼씽킹의 장점 덕분이 아닐까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돌아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씽킹으로 지역 문제를 정말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유영을 배우면 한강을 건널 수 있을까요? 접영과 배영까지 익히면 도버해협도 건널 수 있을까요? 디자인씽킹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지만, ‘가능성의 문을 연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디자인씽킹은 수영 초심자가 안전하게 물에 들어가도록 돕는 자유영과 같습니다. 특정 문제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감(Empathize), 문제정의(Define), 아이디어 창출(Idea), 프로토타이핑(Prototype), 테스트(Test) 등 다섯 단계의 ‘수영 코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것과 도버해협을 건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디자인씽킹 자체가 로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그것은 ‘누가 디자인씽킹을 활용하는가’라는 주체의 중요성을 간과한 발상입니다. 디자인씽킹은 분명한 가능성과 한계를 지니며, 혁신이라는 바다에서 자유영으로 헤엄칠 자유를 제공할 뿐입니다. ◇ 맹목적으로 사용되던 ‘디자인씽킹’에 눈을 달다 지역과 소셜섹터에서 디자인씽킹을 교육할 때마다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디자인씽킹을 활용해 ‘고객에게 환영받는, 잘 팔리는 신제품’을 개발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씽킹의 존재 가치를 매출 증대로만 한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과 소셜섹터에서는 단기적

[사회혁신발언대] 정년 퇴임 후 소셜섹터에서 새 길을 찾다

2024년 6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정년 퇴임하며 오랜 경력의 한 장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한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나의 여정은 새롭게 시작됐다. 나는 임팩트 주류화를 목표로 하는 액셀러레이터 MYSC(엠와이소셜컴퍼니)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 여정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나의 지속적인 열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MYSC는 그러한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다. ◇ 새로운 업무 문화에 적응하다 MYSC와의 인연은 상상우리에서 진행한 퇴직자 재취업 교육을 통해 시작됐다. 그곳에서 나는 시니어 채용을 추진하는 MYSC를 알게 되었고, 입사 과정을 거치며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나의 경험이 MYSC의 비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입사 후, MYSC의 독특한 문화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입사 첫날부터 나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놀랐다. 대표와 직원 모두가 닉네임을 사용하며, 이 방식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처음엔 다소 낯설었지만, 이내 젊은 세대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행사 중 하나였던 스타트업 데모데이 준비에 작은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었고, 서로의 기여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문화 속에서 소셜섹터의 본질을 체감했다. 나에게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차이점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접근할 때 젊은 동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포용적인 사고방식은 나의 업무 스타일과 협업 방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 멘토로서의 보람 MYSC에서의 업무 중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우리 사회는 ‘비영리 경영인’을 양성하는가?

최근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통해 언론에 이슈가 된 특정 스포츠 협회들은 법적인 비영리 조직이다. 이 조직의 본질적 존재 이유는 돈을 버는 행위와 분명 거리가 있다. 이러한 결사체의 본질적 취지는 구성원들의 권익을 보호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조직은 언제든 문제가 발생하며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비영리성(Not-for-profit)을 가진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경시하고 기업 오너와 같이 독선적으로 결정을 반복하거나, 매사 효율성만 따지는 조직운영을 통해 보여주기식 숫자놀음(bean counting)만 한다면 조직은 본연의 힘을 잃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협회들이 국민들의 시선에서는 공적 조직의 측면이 떠오르지 않는, 그저 이익 단체 정도로만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무엇일까?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조직은 정부 조직과 기업 조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리 없이 사회를 유지하는 조직도 많다. 국가마다 이를 지칭하는 이름과 범위는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비영리 조직(Non-profit organization, NPO)이라 부르고 있다. 과거 시민단체를 일컬어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로 지칭했던 우리 사회의 오래된 오해는 아직까지 혼란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NGO는 국제적인 규모, 의사결정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보유 등의 조건을 통과하여 UN이나 ILO 등의 국제기구에서 승인하는 규모 있는 비영리조직의 인증 용어다. UN이 창설된 1945년 처음 사용된 NGO라는 용어(Thomas Davies)는 UN헌장(United Nations Charter) 71조에서, 경제사회이사회에 협의자 지위를 수여받은 기관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현재 6000개 내외로 추산된다. 일반적인 비영리 조직을 칭한다면 NPO로 불러야 적합하다. 우리 사회의 NPO는 얼마나 많을까? 관행적으로

[사회혁신발언대] 시스템적 사고와 협력으로 향하는 임팩트 투자

지리적으로는 북반구 경제선진국부터 남반구의 저소득국까지, 투자 유형으로는 상장 주식에만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자부터 개발도상국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국제개발 NGO까지. 스스로를 임팩트 투자자로 정의하는 조직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업적 투자와 구분되는 임팩트 투자의 개념이 자리잡는 시기였다면, 바야흐로 무엇이 진짜 임팩트 투자인지에 대한 세심한 논의와 사례가 쌓여가는 시기가 도래했다.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4년 임팩트 투자의 날(Impact Investing Days 2024) 콘퍼런스’는 이런 장면을 잘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 콘퍼런스는 2018년 코펜하겐에서 처음 시작해 올해로 5회를 맞았다. 초기에는 임팩트 투자자, 자선재단 실무자, 사회적기업가와 학계의 만남을 여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점차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오늘’의 임팩트 투자 분야가 직면한 실질적 고민을 털어놓고 방안을 찾는 자리로 그 성격이 깊어지고 있다. 무엇이 임팩트 투자인가? 혹은 임팩트 투자가 아닌가? 임팩트 투자는 일반적으로 ‘재무적 수익과 함께 긍정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지는 투자’로 정의한다. 여기서  ‘측정 가능한’ 그리고 ‘창출하려는 의도’ 라는 표현은 임팩트 투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를 구분 짓는 데 있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투자와 임팩트 창출 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투자,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고려하지만 그 결과로 측정가능한 임팩트를 만들지는 못하는 투자, 혹은 단순히 사회적·환경적 가치와 원칙을 재무 목표와 일치시키기만 하는 투자는 엄밀히 말해 ‘임팩트 투자’ 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콘퍼런스에서는 방글라데시 모바일 금융서비스 기업 ‘비캐시(bKash)’에 대한 투자 사례를 두고

나민수 아산나눔재단 선임매니저
[사회혁신발언대]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에 나타난 세 가지 변화

내년 소셜섹터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그 힌트를 아시아의 사회적가치 창출 지원기관이 한데 모인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 네트워크(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AVPN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여러 세션 가운데 투자 형식으로 자선사업을 펼치는 ‘벤처 필란트로피’ 관련된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신뢰 기반(Trust based)’과 ‘담대한 필란트로피(Bold Philanthropy)’, 그리고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였다. 기부자와 단체 간 신뢰 기반의 필란트로피 벤처 필란트로피에서 기부자와 기부금·보조금을 받는 단체 간의 신뢰를 강조하는 담론이 등장한 배경은 바로 팬데믹이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국제개발과 비영리 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국제개발 분야는 기부자와 현지 단체가 지리적으로 나뉘어 있어 국가·지역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현지 단체에 현장 사업 운영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 청년들을 위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인 ‘아큐먼 아카데미 말레이시아(Acumen Academy Malaysia)’다. 말레이시아 ‘YTL 재단’과 세계적인 비영리 벤처캐피털 ‘아큐먼’은 갑작스러운 팬데믹 때문에 최초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글로벌 강사와 참가자 사이 시차, 온라인 교육의 효과성 등 염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큐먼의 발자취를 믿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팬데믹이라는 역경이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도전을 촉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 과정에서 얻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축적된 협업 경험들은 기부자와 단체 간의 신뢰를 다지며 필란트로피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담대한 필란트로피 그동안 임팩트 투자가 보다 역동적이고 과감한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
[D.MZ 칼럼] 청년 활동가들은 이렇게 연결된다

선배 활동가들을 보면 부러웠다. 연륜과 경험, 빠른 정세 분석,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발언, 필요하면 뚝딱 써내는 성명서와 논평….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선배들의 끈끈한 연대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서로 돕고, 당연하게 의지하고, 든든하게 일을 나누는 연대. 선배들의 연대는 업무적인 연대를 넘어서서 정서적인 지지가 되기도 했다. 평일에는 업무 연대로 만나고, 주말에는 취미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동료’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너무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동료가 필요했다. 힘들 때 손을 내밀 수 있고, 당연하게 그 손을 잡는 끈끈한 연대가 필요했다. 청년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그런 자리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기회를 만들어 봤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기록단’의 ‘요즘 것들 이야기’는 총 11명의 청년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였다.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어렵고 힘든지, 그런데도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두 시간은 기본이고, 네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비슷한 경로로 활동을 시작했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비슷한 것들을 활동의 원동력으로 꼽고 있었다.  청년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경험하며 거리로 나와 행동했고, 그 행동의 경험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활동하면서는 조직 내에서 느끼는 소통의 문제와 가족·지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등의

최한빛 마이오렌지 콘텐츠에디터
[D.MZ 칼럼]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감각

‘소셜섹터’나 ‘임팩트 생태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작 내가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업무 특성상 소셜섹터 내 여러 소식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또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하지만, 때로는 붕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만드는 임팩트가 선명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업무 중 느끼는 혼란한 마음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어쩌면 그 시기를 이미 통과해 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보다 그저 지금 나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 앞에 있는 그대로 꺼내어 보고 수용 받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 시기에 소셜섹터 활동가들의 네트워킹 모임 ‘D.MZ’에 참여하게 됐다. 직장 밖 동료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또래들과 편안한 대화 그 자체로 기대됐다. ‘D.MZ’는 첫 모임부터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원하는 닉네임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원치 않으면 굳이 소속을 밝히지 않아도 됐다. 모임 중간중간 우리를 안심시키는 운영진에게서 이곳이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덕분에 경계를 허문 채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뭘 굳이 잘 하지 않아도, 슬쩍 약한 모습을 내비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모임은 3주간 매주 수요일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진행됐다. 지금까지도 각 회차가 제법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다 같이 빙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첫 모임이 인상적이었다. 말을 꺼낼 때마다 일제히 나를 향하던 시선들,

김현숙 서울YWCA 간사
[D.MZ 칼럼] ‘안 될 것 같은 일’을 지속하는 힘은?

모 홍보대행사 재직 시절, 주변 동료들은 늘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다투며 일했다. 특히 어느 기업 오너의 부정기사라도 나는 날이면 컵라면도 반납하고 연신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아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출퇴근 때마다 다짐했고 결심했다. 이렇게 살지 않기로. 사장님이 아닌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선한 마음으로, 그리고 매출 목표가 아닌 조금 더 숨통이 트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비영리 단체에 문을 두드렸다. 사실 비영리에 엄청난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로 입사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세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곳 시스템에 많은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돈 얘기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늘 재정 걱정에 시달렸고, 대의를 내세우며 당장의 물질적 이득을 내칠 때는 우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무려 100년도 더 전에 기독 여성들이 의기투합하며 만들어졌다. ‘여성’과 ‘기독교’라는 특수성이 공존한다. 이 때문인지 가끔 이유 없는 질타와 욕을 먹기도 하는데, ‘제로웨이스트’나 ‘기후위기대응’ 캠페인을 할 때면 이유 없이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하기에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가 눈떠서 생활하며 아무 의식 없이 지나쳐 온 모든 시스템, 법적 규제, 사회적 합의 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은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며 많은 선배들이 사회적 아젠다를 던지고 싸워 결과를 이뤄왔다. 그렇다 보니 50여 년 넘게 우리 단체를 지켜봐 온 선배들과 2023년을 살고

전혜경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어린이날, 난민 아동의 보호 받을 권리를 생각한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한껏 부푼 마음과 기대에 찬 눈망울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어린이날의 들뜬 분위기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아동복지법 6조에 따르면, 어린이날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보호’를 받고, 나아가 삶의 여러 가지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출생신고’가 필수적이자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어린이들에게 출생신고가 중요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출생이 등록되지 않을 경우 교육, 노동, 의료 서비스, 이동 등 삶의 다양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무국적자가 될 위험에 더욱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2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출생신고’가 당연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난민의 자녀들이 그러하다. 현재 대한민국 내 외국인 자녀의 출생신고는 출신국 대사관을 통해서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본국에서 박해를 당할 위험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그들이 출신국 대사관에 찾아가는 것은 여의치 않다. 비단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본국의 출생등록 관련 법 제도상의 문제나 대한민국 내 체류 자격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본국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이 거부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출생신고는 국가가 아동의 존재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