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벤처, 건강하게 성장하기] 사람처럼 조직도 건강이 중요하다

누구나 건강한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어떤 조직이 건강한 조직인데?’라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모습은 제각각이겠지만, 건강한 조직에 관한 바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조직 건강성(Organizational Health)’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고 느낀다. 표현과 강조점은 달라도 직원 웰빙, 직원 경험, 조직문화같이 건강한 조직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책이나 강의, 워크숍을 찾기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심지어 외부 세미나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당장 유튜브에 ‘건강한 조직’으로 검색하면 2년 이내에 올라온 퀄리티 높은 영상을 수십 건 이상 바로 볼 수 있다. 글을 쓰며 구글 트렌드에서 확인하니 한국에서만 최근 1년 새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검색량이 약 3배 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현실 체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미나, 강의 등 네트워킹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건강한 제도나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실 저도 그쪽에 관심이 정말 많아요”라는 말을 꽤 자주 듣는다. 특히,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영리·비영리 스타트업이나 소셜벤처의 리더들은 조직 건강성이나 조직문화를 사업 성공만큼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사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도전적인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당하다 보니 지난 몇 년간 이런 질문을 가장 자주 떠올렸다. “어떻게 하면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본 칼럼에서도 같은 질문을 곱씹어가며 조직 건강성에 관한 현실에서의 고민과 배움을 나눌 생각이다. 다만, 조직 건강성이라는 주제가 워낙 포괄적이다 보니 세부적인 관심 범위와 다루고자 하는 내용에 있어 독자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얼마나 ‘포기’할 수 있나요?

토요일 이른 오후, 침대에 내맡길 권리를 포기하고 나온 이들이 있다. 그들은 청년들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기 위해 모였다. 이들 앞에 놓인 종이 속 여러 질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었다. 하나의 질문이 ▲과연 나는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사회는 무엇이지? ▲내가 가진 것들이 뭐가 있지? ▲그중에 어떤 걸 포기할 수 있지? 등 여러 질문으로 파생된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포기한 적이 있던가?’ 우리의 첫 만남은 ‘포기’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N포 세대. 첫 신조어는 2011년에 등장한 삼포세대였다.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취업난 등을 겪는 2030 세대의 어려움이 드러났다. 이후 오포세대가 나왔다. 앞의 세 가지에 취업과 내 집 마련이 더해졌다. 이어 칠포세대가 나왔다. 앞선 다섯 가지에 건강과 외모 관리가 더해졌다. 다음으로 구포세대가 나왔다. 앞선 일곱 가지에 인간관계와 희망이 더해졌다. 급기야는 십포세대, 완포세대, 전포세대가 나왔다. 그들은 삶을 포기했다. 포기가 주는 어감은 부정적이다. 결과주의적인 사회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 어딘가 모자란 사람. 이런 사회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얼마나 포기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나를 자극했다. 포기했는데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마이너스로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포기가 긍정적일 수는 없을까. ◇ 개인을 존중하며

[우리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자궁경부암에 관한 불편한 진실

국제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은 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달은 불편한 진실이 있다. 부의 분배가 공평하지 않듯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도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죽고, 더 빨리 죽고 있었다. 그 죽음들의 상당 부분은 집 근처에 병원이 있었다면, 백신을 맞았다면, 모기장을 치고 잤다면, 심지어 깨끗한 물만 마셨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만큼 죽음에 더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역설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 여성들을 살리는 백신의 이야기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66만 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있고, 그 숫자의 반 이상인 35만 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쉽게 말해 매년 세종시 인구 정도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죽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자궁경부암으로 죽는 여성들의 10명 중 9명은 개발도상국 여성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여성들의 자궁경부암으로 인한 사망은 지난 20년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꾸준히 사망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자궁경부암으로 죽는 여성의 숫자가 암 관련 사망의 1위를 차지한다. 어디서 태어나느냐가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은 백신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다. 자궁경부암의 90% 이상을 유발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는 대부분의 성인들이 한 번쯤은 감염되는 흔한 바이러스다. WHO(세계보건기구)의 권고에 따르면 9~14세 여아에게 HPV 백신을

소비를 ‘줄이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2018년 IPCC는 ‘1.5℃ 특별보고서’에서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 높아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나 5년이 2023년, 그 기준치를 넘겨버렸다. 이는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 5년 사이에 한국 바다에서 열대지방 바다에서 서식하는 백상아리나 고래상어가 나타나고,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도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아 가격이 치솟는 등 우리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해졌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필자는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이 ‘환경을 위한 소비’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정치인의 당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투표하는 것처럼, 시민은 기업의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기업의 생존 여부에 투표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 소비는 기업 생존 여부에 대한 투표 기업이 물건을 생산하는 이유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적정 수준의 이윤을 발생시키지 못한다면, 기업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 이윤의 원천은 생산한 물건의 판매이며,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는 시민이다. 따라서 시민이 특정 기업의 물건을 전혀 구매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물건을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기업이 어떠한 상품도 생산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기업은 도산하게 된다. 즉, 시민이 어떤 기업의 어떤 물건을 구매하느냐는 작게는 그 물건의 생산 여부를 결정하고, 더 나아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투표인 셈이다. 최근 다국적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사람을 배려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미국은 부자 나라다. 그러나 동시에 가난한 사람이 정말 많다. 불평등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정한 ‘식량 불안(food insecurity)’이란 개념이 있다. 이 말은 생활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가계나 개인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밥을 제때 못 먹는 사람들이다. 2022년 미국 농림부 통계를 보면 미국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큰 지 감이 잡힌다. 미국에서는 식량 불안정에 속한 가정은 1700만 가정에 달한다. 이 가정에 속한 개인을 다 합치면 4420만 명(한국 총 인구의 86%)이나 된다. 성장기 아이들만 따로 뽑아서 관련 통계를 내보면, 미국 아이들 다섯 명 중 한 명이 제때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이 숫자들이 중요한 까닭은 이 부자 나라에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식량 불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미국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한 많은 정부 정책들이 있다. 이들을 묶어 사회 안전망이라 부른다. 이 중에서 밥 먹는 문제와 관련된 대표적 정책은 ‘보조영양지원정책(Supplementary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이 정책에 신청하면 식비에 쓸 수 있는 지원금이 나온다. 주에 따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다르긴 한데, 일반적으로 가구 구성원 한 명당 최대 한 달에 4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 구성원이 많으면 100만원 넘게 받는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이 정책을 ‘푸드 스탬프’라 부른다. 요즘에는 직불카드로 이 지원금을 주지만, 예전에는 종이로 된 교환권(스탬프)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전국

카카오톡으로 사람과 세상의 연결은 더 나아졌을까요?

장면 하나. 오늘 만날 사람? 내일이 휴가라 일찍 자기 아쉬워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를 찾는다. 누구와 보낼지 고민하고, 전화번호부를 펼쳐서 일일이 찾을 필요도 없다. 친한 친구들이 있는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단톡방)에 카톡을 보낸다. 딱 여섯 글자. ‘오늘 만날 사람?’ 장면 둘. 홈택스도 카톡으로 세금을 내기 위해 홈택스에 접속한다. 맥북으로 공동인증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카카오톡으로 로그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그램을 깔 필요 없이 손쉽게 로그인했다. 장면 셋. 가족과의 소통 공간 2017년도에 중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걱정한 가족은 단톡방을 만들어 내 근황을 계속 물어봤다. 내가 잘 살아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전까지 가족은 단톡방이 없었고, 필요한 연락만 가끔 했다. 가족 단톡방이 생긴 이후에 가끔은 잡담을, 가끔은 근황 공유를, 가끔은 외식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눈다. ◇ 10년의 시간이 바꾼 순간들 2010년 3월,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불과 10여 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카카오톡은 우리의 삶을 바꿨다. 친구들 사이의 소통부터 대학교, 군대에서의 공지와 회사 업무까지 사용하는 목적과 범위도 다양하고, 심지어 정부 사이트도 카카오톡으로 로그인이 가능하다. 카카오톡에 오류가 나타날 경우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멈추고, 뉴스는 카카오톡 오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런 삶이 단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카카오톡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우리는 지금, 카카오톡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에게 카톡이란 어떤 의미일까? 일상 대화뿐만 아니라 업무도 카톡으로 진행하면서 어느 순간 단톡방이 하나둘

[기후 유니버스] 당신의 2024년 여름은 어땠나요?

언제부턴가 여름이 오면 걱정부터 앞선다. 안타깝게도 그 걱정은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현실이 되었다. 지난 8월 13일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아르바이트로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 청년이 작업 도중 폭염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 사례가 아니라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여름철 온열질환자는 3226명으로 지난해 2818명을 넘어섰고, 2018년 4526명에 이어 통계를 작성한 이래로 두 번째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2022년 강남역 일대와 2023년 오송 지하차도에서처럼 대형 재난만 없었을 뿐이지 기후위기로 올해도 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올해 3월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작년 한 해 글로벌 기후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공식 보도자료에 이런 표현을 썼다. “off the charts”, 모든 기후 지표가 “차트를 벗어났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여름도 그러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패턴이 매일 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하늘에서 구멍 난 것처럼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가 일상이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우산을 챙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급한 대로 우산을 샀더니 금세 비가 그치며 쓰레기가 된 일회용 비닐우산, SNS와 커뮤니티에 퍼진 비현실적인 국지성 호우 사진들, 이러한 장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번 여름이 유난히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6월에 노동자들이 국회에 ‘폭염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올해부터 택배기사 일을 시작한 친한 친구와 여름이 시작할 때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생수만 나르는 택배기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블로그에

미디어가 말하는 청년, 저희는 그거 아닌데요?

여기 한 청년이 있다. 김민준은 1994년생으로, 31살이다. 현재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해 제조업 계열의 총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에 7시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자차를 운전해 1시간 10분 정도 서울로 이동한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OTT로 이것저것 보다가 새벽에 1시쯤 잠이 든다. 민준은 정치엔 관심이 없고, 투표 외엔 정치적인 활동은 전혀 해본 적이 없어 캠페인에 참여해 본 적도, 집회에 나가본 적도 없다. 주말엔 수면시간이 두 시간 정도 늘어나고, 토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하고,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평일과 다른 점이다. ‘공정’과 관련해 김민준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데에는 반대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상관없이 빈곤하거나 욕구가 있는 사람을 돌봐야 공정하다는 의견에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얻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한데, 노력 없는 도움을 줄 순 없다. 그렇지만 어려운 사람은 돕고 살아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쉽게 고르기 어려워 의견을 유보하고 있다. 김민준의 연간 총소득은 3200만원으로 98%가 회사 다니면서 번 돈이고, 나머지 2%는 주식에 투자해서 번 돈이다. 지금 갖고 있는 자산은 적금을 붓고 일해서 모은 돈이 1131만원이고, 주식에 투자해서 모은 돈이 259만원, 가상자산에 투자해서 모은 돈이 25만원 정도 있다. 여기에 부채도 비슷한 정도로 있는데, 학자금 대출 남은 돈이 58만원, 초반에 주식에 투자해 보겠다고 대출받았던 돈 36만원과 출퇴근을 위해

[임팩트로의 초대] 동료를 찾습니다

우리는 AI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2022년 말 ChatGPT가 세상에 공개되고 사람들은 AI가 인터넷과 모바일 다음의 커다란 혁명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2023년 약 436조 원의 VC 투자금 가운데, 분야별 투자금 총액을 분류했을 때 가장 많이 투자된 분야는 Gen AI(29조 원), 그다음으로는 Gen AI model maker(21조 원), 그리고 Gen AI applications(9조 원)이다(DealRoom). AI와 관련된 반도체, 자율주행차, 신약 개발 등의 산업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방대해진다. 초기의 과열되었던 AI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다소 진정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AI는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평가되며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기술 발전은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농업 혁명이 그러했고, 18세기 증기 기관의 발명이, 19세기 전기와 전화의 발명이, 20세기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이, 21세기 모바일과 AI의 발명이 그러했다. 어두운 이면도 있다. AI의 발전으로 일자리 감소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후 위기 대응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와 데이터센터, 암호화폐 분야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은 2022년 기준 약 460TWh였는데 2026년에는 1000TWh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한 해 전체 전력 소비량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에 따른 번영엔 어두운 이면은 늘 있어왔다. 농업혁명 때에는 노예 제도가, 산업혁명 때에는 노동 착취가 있었고,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 격차와 공해와 같은 환경 오염 문제 등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마주한 문제들은 번영 뒤 늘 있어왔던

[지역의 미래] 출산보다 출가에 집중할 이유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은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세 단어를 조합하면,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남아 있으니 지방은 곧 소멸할 거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이중 서울은 0.5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고 행안부에서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79곳(89개 중 대도시와 부산, 대구,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제외)의 평균은 0.96명이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보다는 모두 낮지만 저출산 때문에 지방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인구가 적어서 출생아 수가 적을 뿐이지 출산율로 따지면 서울이 가장 위험한 인구감소 지역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서울 인구가 급감하지 않는 이유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서울로 떠나기 때문이다. ◇ 4명 중 1명은 둥지를 떠난다 지방에는 대학 입시를 도와줄 유명 학원이나 일타강사가 없다. 부족한 학습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수십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어떤 지자체는 유명 입시 학원과 계약을 맺어 중고생들의 입시를 돕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한 청소년은 스무 살에 서울로 떠나 대학에 다니고 취업해서 결혼하며 자리를 잡는다. 어느 지역의 15~19세 인구를 5년 후 20~24세 인구와 비교해 감소한 비율을 ‘출가율’이라고 한다면, 79개 인구감소 지역의 22년 평균 출가율은 23%이다. (참고로 서울은 17년 15~19세 49만 6000명에서 22년 20~24세 61만 3000명으로 24% 증가했다.) 7개 도별로 가장 높은 출가율을 나타낸 곳은 강원 태백시, 충북 단양군, 충남 서천군, 전북 고창군, 전남 보성군, 경북 영양군, 경남 고성군으로 이들의 평균 출가율은 43.8%에 달한다. 출가율은 지역 자본의 유출로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우리 사회는 ‘비영리 경영인’을 양성하는가?

최근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통해 언론에 이슈가 된 특정 스포츠 협회들은 법적인 비영리 조직이다. 이 조직의 본질적 존재 이유는 돈을 버는 행위와 분명 거리가 있다. 이러한 결사체의 본질적 취지는 구성원들의 권익을 보호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조직은 언제든 문제가 발생하며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비영리성(Not-for-profit)을 가진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경시하고 기업 오너와 같이 독선적으로 결정을 반복하거나, 매사 효율성만 따지는 조직운영을 통해 보여주기식 숫자놀음(bean counting)만 한다면 조직은 본연의 힘을 잃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협회들이 국민들의 시선에서는 공적 조직의 측면이 떠오르지 않는, 그저 이익 단체 정도로만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무엇일까?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조직은 정부 조직과 기업 조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리 없이 사회를 유지하는 조직도 많다. 국가마다 이를 지칭하는 이름과 범위는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비영리 조직(Non-profit organization, NPO)이라 부르고 있다. 과거 시민단체를 일컬어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로 지칭했던 우리 사회의 오래된 오해는 아직까지 혼란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NGO는 국제적인 규모, 의사결정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보유 등의 조건을 통과하여 UN이나 ILO 등의 국제기구에서 승인하는 규모 있는 비영리조직의 인증 용어다. UN이 창설된 1945년 처음 사용된 NGO라는 용어(Thomas Davies)는 UN헌장(United Nations Charter) 71조에서, 경제사회이사회에 협의자 지위를 수여받은 기관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현재 6000개 내외로 추산된다. 일반적인 비영리 조직을 칭한다면 NPO로 불러야 적합하다. 우리 사회의 NPO는 얼마나 많을까? 관행적으로

[사회혁신발언대] 시스템적 사고와 협력으로 향하는 임팩트 투자

지리적으로는 북반구 경제선진국부터 남반구의 저소득국까지, 투자 유형으로는 상장 주식에만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자부터 개발도상국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국제개발 NGO까지. 스스로를 임팩트 투자자로 정의하는 조직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업적 투자와 구분되는 임팩트 투자의 개념이 자리잡는 시기였다면, 바야흐로 무엇이 진짜 임팩트 투자인지에 대한 세심한 논의와 사례가 쌓여가는 시기가 도래했다.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4년 임팩트 투자의 날(Impact Investing Days 2024) 콘퍼런스’는 이런 장면을 잘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 콘퍼런스는 2018년 코펜하겐에서 처음 시작해 올해로 5회를 맞았다. 초기에는 임팩트 투자자, 자선재단 실무자, 사회적기업가와 학계의 만남을 여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점차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오늘’의 임팩트 투자 분야가 직면한 실질적 고민을 털어놓고 방안을 찾는 자리로 그 성격이 깊어지고 있다. 무엇이 임팩트 투자인가? 혹은 임팩트 투자가 아닌가? 임팩트 투자는 일반적으로 ‘재무적 수익과 함께 긍정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지는 투자’로 정의한다. 여기서  ‘측정 가능한’ 그리고 ‘창출하려는 의도’ 라는 표현은 임팩트 투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를 구분 짓는 데 있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투자와 임팩트 창출 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투자,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고려하지만 그 결과로 측정가능한 임팩트를 만들지는 못하는 투자, 혹은 단순히 사회적·환경적 가치와 원칙을 재무 목표와 일치시키기만 하는 투자는 엄밀히 말해 ‘임팩트 투자’ 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콘퍼런스에서는 방글라데시 모바일 금융서비스 기업 ‘비캐시(bKash)’에 대한 투자 사례를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