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위험 속의 미취업 청년, 한국과 일본의 풀이법은

고립·은둔 청년 위한 韓·日 비영리 조직 교류 현장
한국, 청년 일자리 문제 속 고립 문제 커져가

“저는 스키마바이트를 자주 해서 ‘타미이(Timee)’ 앱에서 마스터 레벨을 받았어요.”

일본 청년 토씨(21)는 짧은 일자리 경험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스키마바이트’는 ‘틈새’(スキマ)와 아르바이트의 합성어로, 1시간~하루 단위로 일하는 초단기 아르바이트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한일 청년 교류 행사. 한국의 청년 지원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와 일본의 ‘소다테아게넷’이 공동 주최한 이 자리에선 두 나라 청년들의 일자리 고민과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교차했다.

일본 청년 아야에(28)가 “짐 나르는 스키마바이트를 했는데, 모두 말없이 일하는 모습이 기계 같았다”고 말하자, 한국 청년들은 “그거 쿠팡이랑 똑같다”고 외쳤다. 일본 앱의 ‘마스터 레벨’이 임금 상승과 연결되는지를 묻자 “아직은 아니다”는 답도 돌아왔다. 토씨는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건 스트레스지만,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굳이 안정적인 직업이 없어도 된다”는 인식도 늘고 있다는 말에, 한국 청년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소다테아게넷 참여자 아야에 씨가 종로구에 위치한 니트생활자 사무실에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니트생활자

◇ 청년이 자기만의 일자리 찾도록 돕는 韓-日 비영리단체

한국의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는 가상의 회사 ‘니트컴퍼니’를 운영한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청소, 독서 등 간단한 ‘자체 업무일과’를 수행하며, 온라인으로 출퇴근 기록을 남긴다. 구성원 간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주간회의와 사내 봉사활동 등도 함께 진행된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청년들이 ‘무업 기간’을 혼자가 아닌 공동체 속에서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니트컴퍼니’라는 이름은 일본 도서 ‘극락컴퍼니’에서 따왔다. 은퇴자들이 가상의 회사를 만들어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19번째 시즌 참가자를 모집 중이며, 지금까지 누적 참여 청년은 1700여 명에 달한다. 청년들이 직접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는 ‘닛커넥트’, 도전하고 싶은 일에 30만원을 지원하는 ‘니트인베스트먼트’ 등도 함께 운영 중이다. 핵심은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2001년 설립된 일본의 ‘소다테아게넷(育て上げネット)’은 ‘성장시키는 네트워크’라는 뜻을 가진 청년 지원 단체다. 청년이 사회에 소속돼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교 중퇴자, 무업 청년, 은둔형 외톨이 등 취약한 청년층이 주요 대상이다.

상담을 통해 개별 목표를 세우고 진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연간 3000명 이상이 소다테아게넷의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밤의 유스 센터’도 운영 중이다. 주말 저녁, 집에 머무는 것이 불편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식사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번 방한에는 센터 운영을 맡은 매니저 아베 와타루가 함께했다.

니트생활자 참여 청년들과 소다테아게넷 참여 청년들이 함께 둘러앉아 소책자를 만들고 있다. /니트생활자

이번 교류는 해외 방문 경험이 없던 일본 청년에게는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기회가, 한국 청년에게는 국제적 관계망을 넓힐 계기가 됐다. 양국 청년은 함께 앉아 직접 소책자(zine)를 만들며 각자의 일상과 관심사를 나눴다. 제작은 니트컴퍼니 출신 프리랜서 작가 ‘섬토끼’ 씨가 이끌었고, 같은 출신인 박승호(30) 씨가 통역을 맡아 원활한 소통을 도왔다.

일본 참여자 사카노(가명·21)는 “한국 청년들과 대화하며 언어 장벽이 느껴지긴 했지만,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준열(30) 씨는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어 반가웠다”며 “스키마바이트 같은 일본 문화를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청년 취업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식을 직접 들을 수 있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 한국보다 20년 앞서 청년 문제 다룬 일본…“지원은 더 일찍 시작돼야”

일본은 청년 실업과 고립 문제가 2000년대 초반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2000년 6.2%였던 청년 실업률이 2001년엔 10.8%까지 치솟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03년부터 ‘니트(NEET) 청년’과 ‘고립 청년’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지원 정책을 펼쳤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2025년 1월 기준 일본의 청년 실업률(15~24세)은 3.7%다.

아베 와타루 씨가 소다테아게넷에서 운영하는 ‘밤의 유스 센터’를 설명하고 있다. /니트생활자

대표적 사례가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사포스테)’이다. 지자체와 지역 NPO, 교육기관이 협력해 15~49세 청년에게 직업 상담, 커뮤니케이션 훈련, 직장 체험, 취업 후 정착 지원까지 전방위 지원을 펼친다. 현재 전국에 177개소가 운영 중이며, 연간 49만 9000건의 이용 실적을 기록했다. 신규 등록자 기준 취업률도 73.2%(2022년 기준)에 달한다.

이번 방한한 소다테아게넷도 그 흐름을 함께해온 청년 지원 단체다. 도쿄 타마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코로나19 초기부터 온라인 상담과 프로그램을 빠르게 도입해 비대면 상황에서도 청년과의 연결을 유지해 왔다. 지금도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운영 중이다. 기업과의 협업도 활발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10년 넘게 청년 대상 무료 강좌를 열어왔고, 최근에는 컨설팅 기업 악센튜어와 함께 청년들의 실무 경험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현장에 참석한 아베 와타루 매니저는 “도움은 더 이른 시기에 시작돼야 한다”며 “성인이 되면 생각이 굳어져 지원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부터의 접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는 고등학교 안에 카페를 열어, 자연스럽게 상담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소다테아게넷 스태프 다나카 마유미(가명)는 “한국에서 개인의 작은 도전을 응원하는 니트생활자의 방식이 인상 깊었다”며 “일본도 수공예처럼 일상의 활동을 기반으로 청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국 청년도 함께 나아간다”…청년 고립, 공동체로 해법 찾아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한국의 청년 실업자는 26만 9000명이다. 실직, 취준, ‘그냥 쉼’까지 포함하면 120만 7000명에 달한다. 전년 대비 6.4%(7만 3000명) 증가했다. 고용 시장은 얼어붙고, 청년 고립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천시 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주요 원인 1위는 ‘직업 문제’였다(본인 37.4%, 가족 32.4%). 보건복지부는 국내 고립·은둔 청년이 최대 54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청년들은 다시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상담이나 교육이 일시적일 뿐, 사람들과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공동체를 통해 청년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삶과 일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공동체 기반의 접근이야말로 청년 고립 문제를 푸는 핵심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이런 공동체는 꾸준한 지원이 있어야 유지된다”며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공공보다는, 청년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는 비영리 조직이 더 적합하다”고 했다.

청년들의 변화는 작지만 분명하다. 그는 “처음엔 관계 맺기에 서툴던 청년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과 진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전했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본은 ‘소다테아게넷’처럼 청년 지원 단체들이 전국에 퍼져 있지만, 한국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박 대표는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공동체를 경험할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며 “지역에도 이런 단체들이 많이 생긴다면, 청년들의 삶뿐 아니라 일자리도 함께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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