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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2023년 공개한 자전거 이용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1.53%에 불과하다. 이는 2007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 종합대책’에서 제시한 목표치 1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가 중장기 계획으로 ‘국가자전거정책 기본계획(2022~2031)’을 수립했지만, 자전거를 실질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할 대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중립이 절실한 시대, 자전거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 특히 단거리 이동량이 많은 도심에서는 교통 혼잡을 줄이고, 대중교통과 연계성을 높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중심의 도로 인프라와 계속 혼잡해지는 교통환경 속에서 자전거 이용은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시민 참여 기반의 자전거 활성화 프로젝트를 위해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3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메이크웨이브(MakeWave)’는 자전거 선진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정부와 독일 베를린의 시민단체 ‘체인징시티(Changing Cities)’를 방문해 성공 사례를 탐구했다.
◇ 암스테르담이 자전거 도시로 거듭난 이유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국가로 평가받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당시 자동차 증가로 인해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3000명을 넘었고, 이 중 어린이 사망자가 약 500명에 달했다. 이에 시민들은 ‘어린이들을 그만 죽여라(Stop de Kindermoord)’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자동차 중심의 도시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결국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고, 암스테르담은 세계적인 자전거 도시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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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시정부의 교통 및 공공공간 담당 부서의 정책자문을 맡고 있는 앤 호빙(Anne Hovings)은 “자전거 중심의 변화 자체가 도시 계획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전거뿐만 아니라 교통, 건물, 공공시설 등 모든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해 도시를 설계했다”며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며, 자전거는 이를 실현하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암스테르담은 ‘장기 도시 계획 비전 2050’에 따라 자동차 교통량을 줄이고 보행자, 자전거, 대중교통 중심 도시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주차공간 제한, 높은 주차비, 시속 30km 제한 도입 등 자동차 이용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호빙은 “자전거 이용이 공간 효율성과 환경 개선에 기여하고, 시민들에게 이동 편의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운하 아래 자전거 주차장을 건설하는 것도 규제 대신 디자인으로 사람 중심 도시를 만드는 암스테르담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베를린의 실험
네덜란드는 자전거 이용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독일 베를린은 한국과 유사한 도로 인프라를 기반으로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현실적인 모델을 보여준다. 베를린의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약 15~20% 수준으로 여전히 자동차 이용률이 높지만, 자전거 친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균형점을 찾고 있다.
필자의 팀은 베를린의 시민단체 ‘체인징시티(Changing Cities)’를 방문해 자전거 이용자 친화 정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배웠다. 이 단체는 2016년 자전거 국민투표를 통해 10만 명의 서명을 얻어내며 베를린 이동법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전거 도로의 필요성을 입증하면서 시민들의 요구를 정책으로 연결한 것이다.
체인징시티의 플로리안 키퍼(Florian Keiper)는 “자전거를 스포츠가 아닌 일상적 교통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개인과 사회 모두에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메시지가 확산되면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적더라도 멈추지 않고 지속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게 될 것”이라며 메이크웨이브 팀이 추진 중인 ‘프리라이더스 캠페인(Freeriders Campaign)’을 지지했다.
◇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 프리라이더스 캠페인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를 탐방하며 깨달은 점은 하나였다. 자전거 정책의 핵심은 결국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공동의 합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편의를 넘어, 사회 전체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메이크웨이브 팀은 ‘프리라이더스 캠페인’을 기획했다. 이 캠페인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자전거의 사회적 가치를 알리는 소셜 라이딩 프로젝트로, 2024년 10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70여 명의 시민 크루가 자전거를 타며 직접 메시지를 확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캠페인을 통해 자전거 교통 분담률을 높이고, 사람 중심 도시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바라는 시민들의 연대는 변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앞으로도 메이크웨이브 팀은 시민 참여를 더욱 확대하고, 자전거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과 정책 제안을 이어갈 계획이다.
자전거 교통 분담률을 높이는 일은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라, 더 나은 도시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자전거 친화 정책의 핵심은 인프라를 넘어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자동차 중심의 도시 구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교통 모델을 고민할 시점이다.
주명희 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필자 소개 발달장애인, 정보약자의 알 권리를 위해 쉬운 정보(Easy Read, Accessible information)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에서 일한다.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