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과 출산이 선택이 된 시대에도 아이를 원하지만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난임 문제는 흔히 여성만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남성 요인이 36%를 차지하며 증가 추세에 있다.
2024년 UN 세계행복지수 2위에 오른 덴마크 역시 저출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재 덴마크 출산율은 1.5명으로, 인구 유지선인 2.1명에 크게 못 미친다. 그렇다면 가족친화적 정책이 잘 갖춰진 덴마크에서는 ‘남성 난임’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3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두 개의 선’은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해 난임 문제를 성별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인식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 난임,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
덴마크 코펜하겐시는 주치의 제도와 데이터 기반의 건강 정책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성인 25~44세의 20%가 난임을 겪으며, 난임 시술로 태어난 아이들이 전체 출생아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보건복지관리국을 총괄하는 카트린 셰닝(Katrine Schjønning)은 “난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예방 전략과 공공 및 민간 협력을 통한 종합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덴마크는 광역지자체가 난임 클리닉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초지자체는 성교육과 시민 인식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환경 문제 대응, 성소수자 정책, 학교 및 NGO와의 협력 등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난임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셰닝은 젊은 세대가 전쟁이나 환경 위기, 자아실현 등을 이유로 출산을 늦추면서 난임 위험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덴마크는 청소년 성교육에서 질병 예방이나 피임뿐 아니라, 출산 가능한 시기와 난임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려 젊은 세대가 장기적인 가족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난임 치료 접근성을 높이다
1983년 덴마크 최초로 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코펜하겐 난임센터는 IVF(체외수정), IUI(인공수정) 등 다양한 치료를 제공하는 곳으로, 벽면에 걸린 아기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프리데리케 린덴베르크 박사는 “환자의 부담을 줄이는 맞춤형 치료 기술 개발과 공공·민간 협력을 통해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남성 난임 진단을 위한 ‘앱 기반 자가 테스트 키트’도 개발했다. 린덴베르크 박사는 “조기 진단과 정기 검사가 중요하다”며 덴마크에서도 남성 혼자 병원을 찾기보다는 배우자와 함께 방문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덴마크에서도 남성 난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이제 막 시작된 단계였다.
‘리프로 유니온(ReproUnion)’은 덴마크와 스웨덴이 협력해 난임 원인과 치료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유전자 검사와 AI기술 등을 도입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은 2022년 시작된 ‘바이오뱅크’로, 약 700쌍의 난임 커플의 생활방식, 신체 샘플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카탈린 비쿠크 매니저는 “남성의 난임이 심혈관 질환과 암 발생 위험과도 연결될 수 있다”며 “난임 문제는 단순 임신 문제가 아닌 전반적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다
세계 최대 정자·난자 은행인 크리오스 인터내셔널(Cryos International)은 1987년 설립 이후 현재 100개국 이상에 정자 및 난자 기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약 1000명의 정자 기증자를 비롯해 다수의 난자 기증자를 보유하며, 윤리적 문제와 법적 규제 안에서 난임 환자들에게 안전하고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크리오스의 야콥 악셀 닐슨(Jakob Axel Nielsen) 대표는 변호사이자 보수당 정치인 출신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덴마크 보건예방부 장관을 역임하며 난임 치료와 보조생식기술 발전에 힘써왔다. 닐슨 대표는 “덴마크도 과거에는 비혼모, 성소수자 커플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논의와 시민들의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법과 제도가 바뀌었다”며 “한국 역시 전통적인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지만, 점점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를 방문하기 전에는 남성 난임에 대한 높은 사회적 인식과 앞선 정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와 비슷하게 남성 난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조금씩 높여가는 단계라는 점을 알게 됐다. 다만 덴마크는 성소수자 커플, 비혼 여성 등 다양한 개인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적 정책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민들이 소외 없이 의견을 나누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줬다.
우리나라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혼 여부나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이 각자의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윤여정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세종통합센터 과장
필자 소개 더 나은 나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비즈니스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비영리기관, 사회적기업, 공공기관에서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시도를 응원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