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2일(수)

사람이 만드는 공동체, 덴마크에서 찾은 사회적 자본의 비밀 [아산 프론티어의 시선]

오의석 공적인사적모임 대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신뢰와 협력이 바탕이 된다면 삶은 더욱 편안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공동체 내에서 신뢰와 협력이 원활하게 작동할 때, 사회적 자본은 강해지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덴마크는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제도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3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홍삼’은 “지역의 사회적 자본이 건강하지 않다면, 귀농·귀촌 청년들이 그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덴마크를 찾았다. 7일간의 탐방을 통해 신뢰와 협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확장되며, 공동체를 변화시키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 함께 먹고, 대화하고, 성장하는 덴마크 공동체의 힘

덴마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협력하는 것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이었다. 신뢰와 협력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곳들이 있었다. 사람책 도서관(Human Library), 랑엥 주거 공동체(Lange Eng), 스반홀름 행복마을(Svanholm), 그리고 덴마크 자유학교(International People’s College)다. 비슷한 듯 다른 4곳은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형성하고, 확장, 확산해나가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사람책 도서관(Human Library) 전경. 우리가 방문한 날엔 ADHD, 게이 아빠, 정신분열증 환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오의석 공적인사적모임 대표

사람책 도서관(Human Library)은 2000년,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특정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법한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탐방 중 한 게이 부모를 ‘사람책’으로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와의 대화는 덴마크가 어떻게 다양성을 존중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적 자본을 쌓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랑엥 주거 공동체(Lange Eng)는 54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특별한 공동체다. 이곳에서는 각 가구가 돌아가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모든 구성원이 함께 식사를 한다. 이 시스템은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쌓고,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매일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책임감을 가지며, 자연스럽게 신뢰가 형성된다. 덴마크에서는 신뢰가 특별한 상황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활동 속에서도 충분히 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78년 문을 연 덴마크를 대표하는 대안적 공동체 마을인 스반홀름 행복마을(Svanholm)은 공동 소유와 평등한 경제 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의사결정을 ‘만장일치’로 한다는 것이었다. 구성원들은 매달 회의를 열어, 합의에 이를 때까지 논의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은 절차가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신뢰와 투명성을 쌓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합의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길러지며, 이것이 공동체가 5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스반홀름 행복마을(Svanholm)에 방문했다. /오의석 공적인사적모임 대표

덴마크 자유학교(International People’s College)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신뢰를 배우는 곳이다. 학교 관계자는 “각각의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가진 ‘버블’이 잘 작동하려면, 대화의 기술과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블’이란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귀농·귀촌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려면 단순한 정보 교류를 넘어 신뢰와 대화가 바탕이 된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덴마크 자유학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

덴마크의 사례는 신뢰와 협력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힘임을 보여준다. 랑엥 주거 공동체와 스반홀름 행복마을은 내부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방법을, 사람책 도서관과 덴마크 자유학교는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모델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귀농·귀촌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건강한 지역사회 구조다. 덴마크처럼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대화의 기술이 결합될 때, 청년들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고 지역사회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의 장,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지향하는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다. 지역 주민과 귀농·귀촌 청년들이 함께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보다 개방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덴마크에서 배운 ‘사회적 자본의 힘’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신뢰와 협력이 시스템 속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할 때 공동체가 살아난다는 점을 증명한다. 한국에서도 대화와 협력,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통해 신뢰를 키워간다면, 지역사회와 우리의 삶이 더욱 나아지지 않을까. 그 변화를 기대해 본다.

오의석 공적인사적모임 대표

필자 소개

국제개발협력 청년 활동가 커뮤니티 공적인사적모임 대표다. 이기적 이타심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선택했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살아간다.
본 기고문 시리즈는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사회혁신가 양성 프로그램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이 해외 선진기관 탐방에서 얻은 통찰과 우리나라 소셜섹터로의 시사점을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총 6개의 기고문은 각각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13기 수강생이 각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을 대표해 작성한 것으로, 아산나눔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