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영리 단체들은 예산과 기술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AI 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중소규모 단체의 IT 예산은 평균 1.7%에 불과해, 홍보와 커뮤니티 관리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제약이 크다. 그러나 최근 급부상한 생성형 AI 기술은 적은 예산으로도 홍보 콘텐츠 제작과 모금 캠페인을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생성형 AI 기술의 가능성을 직접 탐구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글로벌 스터디를 진행했다. 8일간의 현장 방문을 통해 AI가 사회혁신 분야에 도입된 사례와 윤리적 가이드라인 구축 방안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비영리 단체들이 기술과 윤리를 조화롭게 활용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 베를린에서 찾은 AI 혁신: 기술과 인간 중심 원칙의 조화
독일 베를린의 ‘임팩트허브 베를린(ImpactHub Berlin)’은 중소규모 비영리 기관과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혁신 공간이다. 고풍스러운 벽돌 건축과 현대적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곳은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공간 구성과 효율적인 업무 환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는 ‘키론(KIRON)’이다. 키론은 난민과 난민 출신 학생을 위한 온라인 학습 플랫폼으로, AI 기술을 활용해 학습 자료를 추천하고 가상 멘토링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교육의 접근성을 높이고, 맞춤형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AI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조직마다 차이가 있었다. 같은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협동조합 ‘라이파이젠 연맹(DGRV)’은 5400개 협동조합을 관리하며, 2000만 명이 회원으로 가입된 대규모 조직이다. 당초 필자는 협동조합에서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와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사하려 했으나, DGRV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이들은 AI를 단순한 업무 자동화 도구가 아닌, ‘인간 중심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었다. 협동조합 내 합의와 관계 형성을 우선시하는 만큼, 법규 개선 문서 작성, 데이터 공유, 행정업무 자동화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 AI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베를린에서 마주한 두 기관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신중하게 접근하는 방식, 두 가지 서로 다른 철학을 보여주었다. 기술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 AI 혁신, 인간 중심 윤리가 우선돼야 한다
제네바는 인권과 국제법의 중심지로, 다양한 국제기구 본부가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 AI 윤리에 대한 유럽의 관점을 알아보고자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를 방문했다. WCC에서 만난 허주미 교수는 AI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는 AI 콘텐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윤리 기준과 체크리스트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엔최고인권사무소(OHCHR)’의 김정린 인권담당관은 기술 발전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기술이 규제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인식을 제고하고 사회적 논의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AI 기술이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글로벌 스터디를 통해 다양한 국제기구와 혁신적인 조직들이 사회적 변화와 인권을 어떻게 지향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술과 윤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AI와 같은 신기술의 빠른 발전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적 책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빠르고 AI 수용도가 높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한국의 사회혁신 기관들이 생성형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절한 가이드라인 아래 AI를 효과적으로 도입한다면, 비영리 단체들은 한정된 예산에서도 더 큰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진화 한국YWCA연합회 부장
필자 소개 한국YWCA연합회에서 구성원들이 편안하고 친근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인재 개발과 관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전략적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YWCA의 비전에 공감하며, 조직 구성원의 역량을 키우고 협력적인 조직 문화를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