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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57%가 외로움을 경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적 불편함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교류 단절 등 복합적 요인이 얽힌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정부부처’를 신설하며 이 문제에 정면 대응했다.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대화와 연결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처방’ 모델을 만들어 외로움 해소에 접근했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3기의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사이시옷(ConnectorS)’은 영국의 외로움 해소 정책을 직접 취재했다. 정부기관부터 대학 연구소, 민간단체까지 영국의 종합적인 해결책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 세계 최초 ‘외로움부’ 신설한 영국 정부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 외로움부의 엠마 배로우(Emma Barrow)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 정부는 2017년 조사에서 전체 인구의 14%인 900만 명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들 중 3분의 2는 이를 털어놓을 곳조차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 콕스(Joanne Cox) 하원의원의 뜻을 이어 설립된 DCMS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전담 부처로 지정된 정부기관이다. 현재 60개 정부기관과 150개 민간단체와 협력하며,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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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낙인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유도하며, 증거 기반 정책을 구축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엠마 배로우는 “통계뿐 아니라 변화된 삶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알리는 것이 중요하며, 진정성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외로움 해소, 단기 처방 아닌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영국에는 외로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도 있다. 영국 셰필드할람대학교(Sheffield Hallam University)의 외로움연구센터(Centre for Loneliness Studies)는 외로움을 개인적인 문제로 한정짓지 않고, 사회적 요인과 연결된 문제로 바라본다. 안드레아 위그필드(Andrea Wigfield) 외로움연구센터장은 “보건, 사회학, 심리학 등 10개 이상의 학문과 정책 입안자, 산업계 파트너, 자원봉사자, 외로움을 경험한 당사자까지 협력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공간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대 간 공동생활 커뮤니티 같은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센터를 나서며 우리는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외로움 해결의 핵심은 ‘의미 있는 관계’ 형성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사회 전체의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외로움도 그중 하나죠.”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에서 만난 국립사회적처방아카데미(NASP) 글로벌 개발 책임자 하마드 칸(Hamad Khan)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ption)’ 모델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모델의 핵심은 ‘링크워커(Link Worker)’ 제도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 대신 링크워커를 처방하면, 링크워커가 환자와 심층 상담을 진행한 후 지역사회 활동이나 사회적 서비스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의료 시스템의 부담을 덜고, 외로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처방이 도입된 이후 지역 보건소와 응급실의 환자 부담이 20~40% 줄었으며, 450만 명이 의료시설 대신 지역사회로 연계되는 효과를 보였다. 특히 ‘녹색 사회처방(Green Social Prescription)’ 프로그램은 원예나 달리기 같은 자연 기반 활동을 통해 정신건강 위험군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외로움을 ‘사람’으로 해결하는 투게더코
“외로움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해결책도 결국 사람입니다.”
브라이튼(Brighton)의 자선단체 투게더코(Together Co)의 대표 에이프릴 베이커(April Baker)는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20대 시절 노숙자 호스텔에서 일하며 공황발작을 겪었고, 친구의 죽음을 경험했다. 이때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투게더코는 470명의 자원봉사자가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며, 공통 관심사를 기반으로 자원봉사자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매월 ‘투게더코 파티’를 열어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투게더코가 보여준 사례는 결국 외로움 해소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 “한국형 외로움 해소 모델 만들어야”
이번 영국 현장 탐방은 외로움이라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 연구기관, 의료계,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 혁신적 해법을 만들어가는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세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설치한 영국 정부의 사례는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둘째, 외로움 해소는 다층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셰필드 외로움연구센터의 다학제적 연구와 사회적 처방 모델은 종합적 관점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셋째, 진정한 변화는 ‘의미 있는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투게더코의 경험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외로움 해소의 핵심임을 알려준다.
사이시옷은 이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형 외로움 해소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누구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조성하고, 관계망을 확장하며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신 건강이 중요해진 시대, 외로움 해소는 단순한 복지 정책을 넘어 사회 전체의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다. 한국 사회 역시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장혜정 모두의연구소 커뮤니티팀 팀장
필자 소개 AI 연구·교육 스타트업 모두의연구소에서 커뮤니티 리드로 활동하며,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함께 성장하는 문화 확산을 위해 돕는 사람과 돕는 기술을 연결하는 테크포임팩트 커뮤니티와, 예술과 기술의 창의적 융합을 연구하는 아트코리아랩 다학제 연구 모임 등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