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받기만 하던 아이들, 공장 청소 봉사하겠다고 할 땐 뭉클했어요”

야쿠르트봉사단 ‘사랑의 손길펴기회’
전국 16개팀 운영, 야쿠르트 아줌마 통해 지역의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도와
20년 넘은 양산 ‘애육원’ 돕기, 탈북 아동 위한 야구단 ‘논현돌핀스’도 지원

“모든 게 부족했던 때였지…. 1990년대 초만 해도 여기선 라면도 금쪽같았어. 그런데 한국야쿠르트 하면 애들이 맛있게 먹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 올 때마다 라면·빵·우유 같은 간식을 듬뿍듬뿍 안겨줬거든.”

경남 양산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애육원’. 30년 넘게 이곳을 지켰던 허미야(54) 아동팀장이 회상에 젖었다. 벌써 20년 넘게 쌓아온 한국야쿠르트와 애육원의 인연. 그 시간만큼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15년 전이던가 어느 날 ‘건물이 너무 낡았다’면서 고쳐주고 싶다는 거야. 그러곤 한 주에 서너 번씩 와서 페인트칠도 해주고, 지붕도 새로 쌓아주고, 내부 전기 공사도 해줬어. 한 달 넘게 다니면서 완전히 새 건물을 만들어주더라고.”(허미야 팀장)

‘사랑의 손길펴기회’ 대구 본부에 소속된 한국야쿠르트 직원이 지역의 아동보육시설을 찾아 환경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제공
‘사랑의 손길펴기회’ 대구 본부에 소속된 한국야쿠르트 직원이 지역의 아동보육시설을 찾아 환경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제공

1990년대 중반부터 줄곧 이 시설로 자원봉사를 다녔다는 김대열(44) 한국야쿠르트 생산지원팀장(양산공장)도 사연을 보탰다.

“2002년 애육원 친구들이 우리 공장으로 청소 봉사를 하러 온 적이 있었어요. 받는 데 익숙한 아이들이 먼저 나섰다는 게 정말 감동이었죠. 다짜고짜 한국야쿠르트에서 일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자격증 준비를 시켰던 일도 기억나고요.”

김 팀장은 “벌써 20년 가까이 됐는데도 문밖까지 뛰어나와서 맞아주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자꾸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 1969년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창업한 한국야쿠르트. 세대를 아우르는 유제품과 더불어 회사를 이끌어 온 한 축이 바로 사내 봉사단 ‘사랑의 손길펴기회’다. 1975년 결성돼 올해로 40주년을 맞았으니, 애육원 사례와 같이 간직해온 미담(美談)이 적지 않다.

한국야쿠르트에선 입사와 동시에 봉사단에 자동 가입되며, 매달 급여의 1%를 봉사단 운영비로 기부한다. 봉사가 일상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은 이유다. 전국 16개 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각 사회복지기관이나 지자체와 관계를 맺고 매달 한 번 이상 봉사활동을 펼친다. 이 봉사단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히 지역 밀착형 봉사에 나선다는 점이다. 장종덕 한국야쿠르트 홍보팀 과장(사랑의 손길펴기회 총괄운영)은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본사 차원에서만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했는데, 우리는 초기부터 지역별로 자치권을 부여해 해당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에 주목했다”면서 “지역의 실핏줄을 돌며, 급한 곳을 살필 수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존재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30일 한국야쿠르트 임직원과 ‘논현돌핀스’ 소속 아동들이 서울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지난 5월 30일 한국야쿠르트 임직원과 ‘논현돌핀스’ 소속 아동들이 서울국립현충원을 찾았다.

2012년부터 사랑의 손길펴기회 경인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논현돌핀스’ 후원이 대표적 사례다. 논현돌핀스는 인천 남동구 지역의 북한 이탈 주민 아동들로 이뤄진 어린이 야구단이다. 일반 가정 아이들도 함께하며 남북한의 어울림을 도모한다. 이 야구단을 담당하고 있는 김사무엘(28) 사회복지사(논현종합사회복지관)는 “인천 지역은 전국에서도 새터민이 가장 많기로 유명한데 남동구는 인천 지역 새터민의 70%가 몰려 있는 곳”이라며 “논현돌핀스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는 이들이 협동심과 자아 존중감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사랑의 손길펴기회는 이들의 연습 시간에 야쿠르트 등 간식을 제공하거나 야구용품을 선물하고, 매주 토요일 야구 훈련도 함께한다. 1년에 2~3회는 단체 야구 관람을 하고, 문화재 견학 등에 나서기도 한다. 새터민 야구단 지원 활동은 내부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봉사를 직접 기획했던 김대호 한국야쿠르트 주임(경인본부)은 “지역사회를 위한 특색 있는 봉사와 임직원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을 함께 고민하다가 야구단 지원을 하게 됐다”면서 “덕분에 임직원 봉사 참여가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등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야구단 친구들이 ‘왜 결혼식에 부르지 않았냐’며 서운해하는 걸 보고 크게 감동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명절을 홀로 보내는 어르신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사랑의 떡국 나누기’ 및 ‘사랑의 송편 나누기’를 매년 진행하는 것도 사랑의 손길펴기회의 40년 묵은 전통이다. 고정완 한국야쿠르트 사장은 “창립 이래 꾸준히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해왔다는 것은 전 임직원의 자랑”이라며 “앞으로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지속적인 나눔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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