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의 전략
50대 소아마비 장애인 김성은(가명)씨는 지난 7월부터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했다. 부산에 있는 배리어프리 헬스케어센터에서 상체 근력 운동, 심폐지구력 향상을 위한 서킷트레이닝을 했고 센터에 갈 수 없는 날은 집에서 운동 동영상을 보면서 몸을 풀었다. 김씨가 이렇게 운동에 몰입한 이유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9월 1일 부산 앞바다에서 서프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겠다는 목표였다.
휠체어 장애인인 김씨가 서핑을 한다는 건 당사자도, 주변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백사장 위에서는 일반 휠체어가 굴러갈 수 없어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입수를 한다고 해도 바다에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김씨는 “비장애인들이 바다에서 자유롭게 서핑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 바닷가에 앉아 가만히 구경을 하고는 했었다”면서 “이번 생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음 생의 버킷리스트에 넣어놨었는데 장애인 서핑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서 바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이하 메트라이프재단)이 마련한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100일간의 서프라이즈(SurfRise)’. 장애인들이 100일간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서핑(Surfing)에 도전하는 놀라운(Surprise) 과정을 담아내겠다는 취지다. 장애인·고령자·기저질환자에게 맞춤 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가 재단과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김씨를 포함해 총 10명의 장애인이 도전장을 냈다. 척수 손상, 뇌성마비 등 각자의 상태와 상황에 맞춰 운동을 시작했다. 황애경 메트라이프재단 이사는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의미하는 ‘DEI’ 가치를 실현하는 게 재단의 목표”라며 “비장애인이 하는 모든 것을 장애인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DEI의 관점에서 이번 서핑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P), 지역(L), 협력(A), 새로움(N)
지난 1일 송정 해수욕장에 두 달간의 훈련을 마친 장애인들이 모였다. 해변용 휠체어 등 장애인 도전자들을 위한 안전 장비들이 마련됐다. 인근 대학교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은 참가자 일대일 케어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서프보드는 비장애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준비됐다. 장애인들은 간단히 몸을 풀고 바다에 입수했다. 지난 두 달간 배운 대로 서프보드에 엎드려 상체를 세우고 패들링(양손으로 물을 젓는 동작)을 하면서 파도에 몸을 맡겼다.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 참가자 3명은 서프보드 위에 일어서서 파도를 탔다. 간간이 비가 내렸지만 참가자 모두 두 시간 동안 즐겁게 서핑을 즐겼다.
이번 서핑 프로젝트는 기업 재단이 장애인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지원한 국내 최초의 사례다. 황애경 이사는 “메트라이프재단의 사회공헌 전략인 ‘P.L.A.N.’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P.L.A.N.’은 ▲People focused(사람 중심) ▲Local focused(지역 중심) ▲Alliance(협력) ▲New(새로움) 등 네 개의 키워드에 기반한 전략이다.
첫째 전략인 ‘P(사람 중심)’는 기업이나 재단의 입장이 아닌 사회공헌 대상자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뜻이다. 둘째 ‘L(지역 중심)’은 지원이 필요한 지역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역 간 사회문화적 격차를 줄인다는 의미다. 세 번째 ‘A(협력)’는 비영리·소셜벤처·사회적기업 등 각자 다른 전문성을 가진 조직과 연대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고 임팩트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N(새로움)’은 기존의 틀이나 인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회공헌의 새 모델을 만들고 다른 곳으로 확산한다는 뜻이다.
황애경 메트라이프재단 이사는 “이번 서핑 프로젝트의 경우 장애 당사자 입장에서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한지 고민한 뒤(P),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산 지역의 장애인을 참여시켰고(L), 장애인 운동 서비스 전문 기업인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와 협업(A)해 전에 없던 새로운(N)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정고운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 대표는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는 서핑 프로젝트를 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 지역 상황에 맞는 다른 익스트림 스포츠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1583만명의 삶을 혁신하다
메트라이프재단의 ‘P.L.A.N.’ 전략이 녹아있는 또 다른 사회공헌 사업은 액셀러레이팅, 임팩트 투자 프로그램인 ‘메트라이프 인클루전 플러스’다. 보다 많은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재정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가진 조직을 발굴하고 지원한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74개 조직을 선발했다. 플랫폼 노동자, 이주 노동자, 시니어, 장애인, 청년 등 서비스 이용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사업을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올해 인클루전 플러스 6기로 선발된 ‘웍스메이트’는 일용직 건설 근로자를 위한 일자리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기존에는 건설 근로자가 아침 일찍 인력 사무소에 나가 무작정 대기하며 일을 찾아야 했다. 웍스메이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원하는 직종과 근무시간, 작업장까지 거리 등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고를 수 있다. 일을 마치면 당일 저녁에 바로 일당이 계좌로 입금돼 임금 체납에 대한 우려도 덜 수 있다. 또 다른 6기 펠로 ‘테라파이’는 어려운 단어가 가득한 부동산 서류들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주는 AI 서비스 ‘세이프홈즈’를 제공한다. 집 주소와 보증금만 입력하면 쉬운 언어로 풀어 쓴 권리조사 리포트를 받아볼 수 있다. 부동산 거래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나 고령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지난해까지 인클루전 플러스 펠로 기업을 통해 도움을 받은 사람은 1583만명. 펠로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가치는 약 1928억원에 달한다.
문화예술 사회공헌 ‘더 기프트(The Gift)’는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메트라이프재단의 문화예술사업이다. 2019년부터 대전, 대구, 강원 춘천, 경북 포항 등 지역 주민을 위해 무료 공연을 한다. 클래식, 대중 가수 공연이 아닌 퓨전 국악 같은 새로운 장르의 무대를 주로 마련한다. 재단이 지역에서 공연을 열 때마다 대규모 공연장으로 분류되는 500개 넘는 규모의 객석이 가득 찬다. 지난 5년간 약 2만2000명이 재단이 준비한 공연을 관람했다.
지난 7월에는 재단의 지원을 받은 퓨전 국악 밴드 ‘날다(NALDA)’가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뮤지컬 ‘심청날다’ 공연을 진행했다. 판소리 심청가 주요 대목을 블루스, 디스코 등 현대적인 음악 형식으로 각색해 베이스·색소폰·키보드 같은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공연이었다. 사업 담당자인 현단비 메트라이프재단 과장은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퓨전 국악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편의 뮤지컬로 풀어내 지역 주민에게 색다른 공연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문화 콘텐츠가 부족한 지역에 더 필요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155년 역사의 글로벌 기업 재단
이달 메트라이프재단은 메트라이프 임직원과 재무설계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시니어 나들이 프로그램 ‘꽃보다 시니어’를 진행한다. 지난해까지는 혼자 사는 시니어 집으로 찾아가 생활용품을 전달하는 식의 봉사를 진행했는데 올해는 방식을 바꿨다. 부산, 울산, 경남 창원, 충북 청주 등 지역에 거주하는 시니어의 ‘반나절 소풍’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8년째 메트라이프재단과 시니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밀알복지재단이 지역 복지관 네트워크를 활용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니어 대상자 320명을 선정했다. 시니어 여행 전문 기업인 포페런츠는 시니어의 체력을 고려한 지역별 맞춤 나들이 코스를 짰다. 각 지역 메트라이프 지점에 있는 임직원과 재무설계사 300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시니어를 1대1로 케어하며 나들이를 도울 예정이다.
다른 기업이나 재단에 비해 ‘임직원 자원봉사’가 활성화된 것도 메트라이프재단 사회공헌 사업의 특징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메트라이프 금융그룹이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를 강조하며 2030년까지 직원 자원봉사 80만 시간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황애경 이사는 “메트라이프 금융그룹은 155년 동안 전 세계 43국에서 경영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각 지사와 재단은 본사의 글로벌 지침을 현지화(Localization)해 경영에 적용하고 있다”면서 “현지화는 전 세계 모든 글로벌 기업 재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메트라이프 금융그룹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가치 실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2030년까지 DEI 실현을 위해 25억달러(3조3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장애인이 소유한 기업에 10억달러 투자 ▲저개발 지역에 1억5000만달러 지원 ▲DEI 관련 연구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황애경 이사는 “국내 메트라이프생명과 재단도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우리 사회에 DEI를 만들어가기 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