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이주노동자 70% 가건물 생활… 인권위 “지원 대책 마련하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이주노동자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20일 “농업 이주노동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공공기숙사 설치 등 지원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난 16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18일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가 누온 속헹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페이스북
지난 6월 18일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가 누온 속헹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페이스북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업주가 임금 전액 지급 원칙을 준수할 수 있도록 숙식비 선공제를 법령으로 금지할 것 ▲숙식비를 이주노동자 임금에서 공제 가능하도록 한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폐지할 것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시행해 합리적인 숙식비 기준을 마련할 것 등을 권고했다.

앞서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원회는 “2020년 12월 영하 20도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의 사인 중 하나로 열악한 기숙사 환경이 지적됐는데도, 동료 이주노동자 4명(이하 피해자)을 해당 사건이 발생한 곳에 그대로 거주하게 하는 것은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숙소로 농지에 설치한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이 제공되는 경우가 70% 이상이었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숙식비를 임금에서 선공제하는 경우도 77.4%에 달했다. 이주노동자들은 “1인당 매달 40만원가량을 숙소비로 공제한다”며 “방 1개, 화장실 1개, 부엌 1개짜리 컨테이너에 4명이 거주하면서 월세 160만원을 내는 격”이라고 부담을 호소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누온 속헹이 일하던 사업장을 수시 감독한 결과, 기숙사 운영기준 미달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4건 확인해 시정 지시했다고 답변했다. 또 피해자들에게 사업장 변경 의사를 3회 확인했으나 이들이 계속 근무 의사를 밝혔으며, 향후 사업장을 변경하고자 할 경우 적극적으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고용노동부가 ▲사업주에게 기숙사 변경을 지시하고, 건강검진 미실시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해 조속한 시일 내에 건강검진을 실시하도록 조치한 점 ▲농지에 있던 기존 기숙사에서 벗어나 시내의 주택형 숙소가 피해자들 기숙사로 제공된 점 ▲언어와 문화적 동질감을 공유하는 피해자 4명이 환경 변화없이 함께 생활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것이 심리안정에 도움된다는 상담 결과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피해자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조치가 미흡해 인권침해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진정을 기각했다.

다만 인권위는 “추운 날씨에 난방시설이 열악한 숙소에서 잠을 자던 고인의 산업재해 사망 사례, 농지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숙소에 폭우가 쏟아져 다수의 이주노동자가 이재민이 된 사례 등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사건이 지속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정책 권고를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거환경 개선의 부담과 피해가 현장 농가와 농업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단계적으로 이주노동자 전용 공공기숙사를 설치하는 등 지원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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