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지역 살리는 착한 여행, 하동으로 ‘놀루와’~

[레벨up로컬] 조문환 주민공정여행 놀루와 대표

茶 유명한 하동에 터 잡은 예비 사회적기업
시음 세트 빌려주는 ‘차마실’, SNS서 인기
수익은 다원과 정확히 반반 나누며 ‘상생’
어르신들의 굿즈·마을호텔 기대해주세요

예비 사회적기업 ‘놀루와’ 직원들. 놀루와는 하동 토박이인 조문환 대표와 서울·경남에서 온 직원들로 구성됐다. 조 대표는 “하동에서 나고 자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지역의 아름다운 모습에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훌륭한 기획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왼쪽부터 조문환 대표, 양지영 PD, 조준형 PD, 이대은 PD, 오동수 실장. /하동=최병준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경남 하동은 예부터 차(茶)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하동읍에는 다원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손님이 오면 차부터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원래 하동이 유명했지만, 올해 초부터 2030 젊은 층 사이에서도 “하동에선 차를 마셔야 한다”는 유행이 퍼졌다. SNS를 통해 소문난 ‘차마실’ 프로그램 덕분이다. 차마실은 하동 악양면에 있는 예비 사회적기업 ‘놀루와’가 지난 5월 내놓은 여행 상품. 여행객에게 차와 다기(茶器), 다식(茶食)이 포함된 차 시음 세트를 대여해준다. 차마실을 예약한 손님은 지정된 다원에서 다기 세트를 빌리고 원하는 곳에서 차를 즐기면 된다.

차마실 프로그램의 가장 특별한 점은 ‘운영 방식’에 있다. 일반적으로는 여행사가 개발한 상품 수익 대부분이 여행사로 돌아가지만, 차마실은 다르다. 차마실 키트를 개발하고 예약 등 사무 업무를 담당하는 ‘놀루와’가 절반, 손님을 받는 지역의 다원이 절반. 수익을 정확히 1대1로 나눈다. 지난 12일 놀루와 사무실에서 만난 조문환(58) 대표는 “놀루와는 ‘여행을 통해 지역을 살리겠다’는 뜻으로 시작한 ‘주민 공정 여행사’”라며 “여행에서 나오는 수익을 지역에 흩뿌려서 지역민들이 함께 잘사는 게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지역과 상생하는 소규모 여행, 코로나에도 인기

놀루와는 ‘협동조합형 기업’이다. 실무진 다섯 명과 조합원 8명이 꾸리고 있다. 하동에서 나고 자라 악양면장까지 지낸 공무원 출신 조문환 대표가 지난 2018년 설립했다. 조 대표는 “이대로 가다간 하동이 사라질 것 같아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간 하동을 찾아온 여행객 대부분이 지리산에 오르고 직접 싸 온 도시락을 먹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식이라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하동에서 먹고살 거리가 없으니 젊은이는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인데 안타까웠죠. 여행객들이 하동에서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자. 그리고 그 혜택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게 하자. 그 생각으로 놀루와를 만들었어요.”

대표 상품으로는 ‘섬진강 달마중’ ‘평사리 슬로워크’ ‘논두렁 축구 대회’ 등이 있다. 섬진강 달마중은 매월 보름 섬진강변 백사장을 거닐며 야경을 즐기는 프로그램이고, 평사리 슬로워크는 소설 ‘토지’의 배경이기도 한 83만평 규모 평사리 들판을 감상하며 6㎞를 느리게 걸으며 차와 버스킹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논두렁 축구 대회는 농한기인 1월 들판에서 벌이는 축구 대회다.

상품 가격도 저렴한 데다 그마저도 지역 업체와 나누다 보니 주변에서는 수익 모델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상생’이라는 전략은 놀루와가 살아남는 비결이 됐다. 지역 다원과 수익을 반으로 나누는 차마실은 코로나19 이후 소규모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출시하자마자 매달 300~400여 팀이 차마실을 이용할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고, 어려운 시기 매출이 늘어난 다원 반응도 좋다. 지난 8월에는 차마실 참여 다원 다섯 곳과 함께 차를 매개로 한 하동 알리기에 더욱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담은 ‘다포(다기를 덮는 천)’라는 여행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대대손손 하동을 지키는마을 회사되고파

놀루와는 지역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살리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입선마을에선 수요일마다 ‘동네 수다방’을 열고, 지난해엔 ‘어르신 자서전 쓰기’도 진행했다. 매계마을과 직전마을에선 할머니들과 ‘손자수 모임’을 열었고, 여기서 만든 브로치와 파우치를 팔아 함께 여행을 떠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조 대표는 “우리끼리 좋은 일 한다고 말해봐야 주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사상누각”이라고 했다. “좋은 의도로 찾아갔어도 어르신들에겐 그저 처음 보는 젊은 사람들일 뿐이죠. 다들 처음엔 ‘니들 뭐꼬?’ 하셨어요(웃음). 그래서 통닭이나 막걸리 사 들고 자주 찾아가 뵙고 재롱도 피우면서 어르신들과 가까워졌어요.”

대촌마을에 있는 빈 창고를 인수해 다음 달에는 ‘대촌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연다. 이곳을 주민과 여행객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어르신들이 만든 소품과 하동을 나타내는 뱃지 등 기념품도 판매하기로 했다. 이런 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이웃 마을인 매계마을을 시작으로 ‘하동 마을 호텔’을 조성하는 게 놀루와의 목표다. “민박집도 있지만 손님이 적어요. 그래서 저희가 오래된 민박집들을 리모델링하고 내부 비품이나 예약 방식을 통일할 생각이에요. 기념품과 마을 농산품도 판매하고, 할매들이 집밥 지어주는 동네 레스토랑도 열 겁니다. 진짜 하동을 경험하는 마을 호텔을 구상 중이에요.”

놀루와는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굿네이버스 등이 운영하는 ‘드림위드 우리 마을 레벨 업’ 프로그램에 2년 연속 선정됐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상품 개발 등에 드는 비용을 지원받고 있다. “마을 호텔을 해서 수익이 나면 나중엔 마을 요양원을 만들고 싶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집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놀루와가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데, 기업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됩니다. 대대손손 지역에 터 잡고 하동을 지키는 ‘마을 회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하동=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공동기획 | 더나은미래·한국타이어나눔재단·굿네이버스·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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