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자아 찾으려는 엄마들의 ‘참고서’가 되고 싶어요

[레벨up로컬] 정유미 소셜벤처 ‘포포포’ 대표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유미 포포포 대표는 “잠재력이 있지만 고립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창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잘나가던 8년 차 잡지 에디터에게 경력 단절은 갑자기 찾아왔다. 정유미(35)씨는 지난 2016년 되던 해 임신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와 경북 포항에 사는 남편은 줄곧 주말 부부로 지냈지만 아이가 생긴 뒤 포항으로 내려갔다. 아이의 탄생은 축복이었지만 ‘정유미 에디터’라는 이름의 종말이기도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이름 석 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많아졌다. ‘소셜벤처 포포포 대표 정유미’라는 명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포포포에는 지난 시간 경력 단절 여성으로 살면서 고민한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했다. 포포포는 엄마이면서 자신의 일과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잡지와 그림책에 담아내는 소셜벤처다.

“서울 토박이였던 제게는 다소 보수적인 포항의 문화가 낯설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종일 아이만 들여다보면서 지내다 보니 문득 내가 결혼 이주 여성과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항에 결혼 이주 여성이 많거든요. 내가 이 정도인데 그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서 직접 찾아나섰어요. 동네 책방에 결혼 이주 여성들을 모아 잡지 만들기,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시작했죠.”

지난해 4월 ‘포포포’를 설립한 그는 지난 1월부터는 계간지 ‘포포포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포포포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연결한다(Connecting people with possible possibilities)’는 뜻이다. 정 대표는 “엄마라는 이유로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엄마라는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모든 사람을 이어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매거진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생활을 솔직하게 담은 에세이, 환경 등 사회문제에 대한 글이 실린다. 자녀 교육 문제나 요리 팁을 다루지 않는데도 발행할 때마다 주요 서점에서 독립 잡지와 육아 부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정 대표는 “매호 1000부 정도 찍는데 금세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주문이 들어와 재고도 거의 없다”며 웃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육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모든 사람을 위한 매체로 거듭나고 싶어요. ‘비혼 여성인데 우리 엄마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거나 ‘싱글 대디인데 내 이야기도 실어줄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뉴욕 독립서점 입고도 확정됐어요.”

포포포는 포항 지역 결혼 이주 여성의 예술 활동과 그림책을 활용한 커리어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베트남·중국·일본 국적 여성 10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 5월에는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굿네이버스 등이 함께 진행하는 마을 공동체 활동 지원 프로그램 ’2020 드림위드 우리 마을 레벨UP프로젝트’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다. 정 대표는 “지원금으로 결혼 이주 여성의 경험을 한국어와 영어, 이주 여성 모국어로 담아낸 그림책을 제작하고 있다”면서 “다음달 11월 출간 예정”이라고 했다.

포포포는 위커넥트, 북스, 위로상점 등 육아 맘이 만든 스타트업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북 토크를 같이 진행하기도 하고 환경 캠페인도 벌인다. 각자의 장점을 활용해 시너지를 내는 ‘일하는 엄마들의 연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요즘 일하는 여성 사이에서 ‘롤 모델 말고 레퍼런스(참고 자료)’라는 말이 유행해요. 많은 사람이 똑같이 따라 하고픈 완벽한 몇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길을 닦아갈 때 참고할 만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거죠. 아이 키우면서 자아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커 나가고 싶어요.”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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