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생존이 만난 커리어의 탄생
‘임팩트 커리어’ 20년 변천사
한국 사회에서 ‘경제 성장’은 한때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었다. 절대적 가난과 결핍의 시기를 벗어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성장을 이뤘고, 성장 그 자체가 윤리로 작동했다. 성공은 ‘선’이었고, 효율은 ‘정의’였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그 신념의 붕괴를 상징했다. 한 세대가 쌓아올린 성장의 성채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개인은 국가의 이름으로 구조조정됐다.
경제 호황기 베이비붐 세대의 커리어는 ‘서류만 내면 합격하던 시절’을 상징했다.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 세대에게 일은 생존의 전장이었다.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청년들의 장래희망 1위는 공무원과 교사가 됐다. ‘안정’은 곧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낳는다. 저성장과 경기침체,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일부 청년들은 안정보다 의미를, 생존보다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글로벌 금융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이 흐름에 불을 붙인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초래한 이 사건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남겼다. 미국에서는 이를 계기로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윤을 내되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낡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제안이었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의 상처와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교차하던 시점에 이 흐름은 빠르게 수용됐다. 청년 세대는 ‘좋은 일’이 경제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없을까.”
2000년대 중반, 이 질문은 낯설고도 용감한 상상이었다. 사회문제는 비판의 대상이었지, 직업의 언어로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물음에서 한국의 임팩트 커리어는 태동했다. 2006년 연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회적기업가 연구 동아리 ‘넥스터스’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책상 앞이 아닌 현장에서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원형을 확인했다. 문제를 비판하는 대신 설계하고, 연구보다 실행에 집중하는 태도는 이후 한국 사회혁신 생태계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이들을 움직인 것은 ‘사람’과 ‘이야기’였다. 세계 사회혁신가들의 사례는 막연한 이상을 ‘할 수 있는 일’로 바꿔놓았다. 사회변화의 핵심이 내러티브의 전환에 있다는 인식은 한국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를 고발하는 대신, 자신만의 언어로 사회문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2010년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가 창간 특집으로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시리즈를 보도한 것은 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잡 팩토리의 로버트 로스, 아쇼카의 빌 드레이튼, KIVA의 맷 플래너리 등 글로벌 사회혁신가들의 이야기는 한국 청년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좋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직업’을 현실적인 커리어로 끌어올렸다.
◇ 국가가 공익을 제도 속으로 끌어들이다
이 흐름을 제도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국가였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기업은 대개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등장했지만, 한국은 이를 정책을 통해 제도화했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이 급등하고 돌봄·복지 수요가 폭발하자, 정부는 지속가능한 일자리 구조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제정했다. 공익을 복지의 영역에서 시장과 고용의 언어로 확장한 시도였다.
이어 정부는 청년에게 ‘실험의 무대’를 열었다. 2011년 시작된 청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은 단순한 일자리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식을 시험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었다. 4년간 1363개의 창업팀이 이 사업을 거쳐 나왔고, SK, 현대차, LG 등 기업과 기업재단이 공모전이라는 두 번째 무대를 열며 청년들의 실험을 사회적 무대로 확장시켰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점차 하나의 커리어로 윤곽을 갖췄다.
정부와 민간의 지원이 자본으로 전환되면서, 한국의 사회혁신 생태계는 ‘투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보조금의 논리가 지속가능성의 논리로 바뀌자, 사회혁신은 복지의 외곽이 아닌 경제의 한 축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2011년 정부가 조성한 사회적기업 전용 모태펀드는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 자본이었다. 이후 규모가 확대되며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에도 본격적으로 투자금이 흘러들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여러 컨설팅 조직들이 임팩트 투자사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했고, 성수동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조직들이 함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 성수동, 사회혁신이 커리어가 된 거리
2014년, 루트임팩트는 사회혁신가를 위한 공동주거 공간을 조성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듯, 한 창업가를 키우려면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이 철학은 공간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3년 뒤, 성수동 한복판에 지상 8층 규모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문을 열며 사회혁신가들의 ‘일과 삶이 만나는 실험장’이 탄생했다. 개관 초기부터 40여 개 팀이 입주했고, 성수동 일대는 빠르게 사회혁신의 거점으로 변모했다.

이제 성수동 일대는 ‘소셜벤처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비누를 만드는 ‘동구밭’, 개발도상국 아동을 위한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스타트업 ‘에누마’ 등 국내 대표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처 1세대 중 상당수가 이곳을 거쳐갔다. 산업화 시대의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산업이 들어선 셈이다. 2014년만 해도 사회적 목적을 지닌 조직은 10개 남짓이었지만, 2022년에는 500여 개로 늘었다.
기업과 조직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일자리의 확장을 의미했다. 성수동의 밀집된 거리감은 ‘커리어의 해상도’를 높여줬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자원봉사를 넘어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덕분에 비록 조직의 규모는 작더라도 ‘조직 밖 동료’가 존재한다는 감각이 공유됐다.
2015년, 루트임팩트는 청년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 ‘임팩트 베이스캠프’를 운영했다. IBC는 청년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기르고 이를 커리어와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8~16주간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직접 해결책을 도출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 Based Learning)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금까지 500명에 가까운 수료생이 배출됐고, 다양한 사회혁신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이 무렵, 바로 성수동 인근의 한양대학교에서도 같은 흐름이 자라나고 있었다. 2018년 한양대는 국내 최초로 아쇼카U에 지정되며, 대학이 사회혁신을 제도 교육 안으로 끌어들였다. 캠퍼스에서는 사회혁신 교과목과 비교과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학생들은 사회문제를 학문이 아니라 현장과 ‘일의 언어’로 배우기 시작했다. 현장형 프로젝트, 지역 연계 수업 등이 이어지면서 대학은 임팩트 생태계의 또 다른 축이 되었다.
◇ ESG의 부상과 임팩트 커리어의 변곡점
임팩트 커리어의 또 하나의 변곡점은 ESG의 부상과 함께 찾아왔다. 2020년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지속가능성은 환경론이 아니라 자본의 문제”라고 선언한 이후, ESG는 윤리가 아닌 리스크 관리의 기준이 됐다.
더불어 2019년 미국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181명의 글로벌 대기업 CEO들이 모여 ‘기업의 목적’ 선언문을 발표했다.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고객·직원·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방향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 흐름은 한국 기업에도 빠르게 번졌다. 대기업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필수적으로 발간했고, ESG 위원회가 이사회 한켠을 차지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일부 기업만이 자율적으로 CSR 보고서를 내던 시절이었지만, 2023년 기준 국내 매출 상위 30대 기업은 모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기업은 기후위기를 ‘좌초자산’의 문제로, 공급망 인권 리스크를 ‘경영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책임이 곧 기업의 생존 조건이 된 것이다. 이처럼 ESG가 기업의 언어가 되자,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 언어’가 필요해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법률과 컨설팅 분야였다. 2021년, 김앤장, 율촌, 광장, 태평양 등 국내 4대 로펌이 일제히 ESG 전담 조직을 출범시켰다. 환경·노동·공정거래·컴플라이언스 전문가 수십 명이 투입됐고, 웨비나에는 수백 명이 넘는 기업 관계자들이 몰렸다. 과거 사회공헌 담당 부서가 기업의 ‘선의’를 대변했다면, 이제 ESG 대응팀은 ‘리스크 관리의 최전선’이 되었다. 기업은 법률 자문과 규제 해석, 공시 가이드라인을 통해 ESG를 ‘감성의 언어’가 아닌 ‘컴플라이언스의 언어’로 다루기 시작했다.
◇ 세대로부터 솟아오른 변화의 압력
그러나 ESG의 확산은 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변화의 불씨는 세대가 지폈다. 2019년,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파업’은 전 세계 청소년들의 언어가 됐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은 한국에서도 ‘청소년 기후행동’으로 번졌고, 청소년들은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며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라고 외쳤다.

젊은 세대의 감수성은 곧 소비 행동으로 옮겨갔다. 남양유업은 대리점 갑질과 폐쇄적인 사내문화로 ‘불매 1순위 기업’이 되었고, 결국 오너 경영 체제가 무너졌다. SPC그룹 역시 잇따른 공장 사망사고와 불법 파견 논란으로 ESG 리스크가 폭발했다. 온라인에서 확산된 불매운동은 매출로 그리고 주가로 이어졌다. 소비자는 더 이상 정보의 수용자가 아니라, 기업의 윤리를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가치 행동자’가 된 것이다.
ESG를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세대는 바로 이들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여전히 그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기성세대가 ESG를 ‘규제와 평판의 언어’로 해석할 때, MZ세대는 그것을 ‘존중과 인권의 언어’로 이해한다. ESG의 압력은 시장뿐만 아니라 조직 안의 젊은 구성원들로부터도 오고 있다.
◇ 임팩트 커리어, 전문직의 언어를 얻다
이처럼 주류가 ESG를 중심으로 제도화의 언어로 움직이는 동안, 성수동을 중심으로 한 임팩트 생태계는 ‘의미의 언어’로 진화했다. ESG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답했다면, 이들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임팩트는 이제 정량적 평가의 대상이자 전략의 중심이 됐다. 한쪽은 시장을 정비했고, 다른 한쪽은 가치를 정교화했다. 주류의 제도화와 주변부의 실험이 동시에 진화하면서, 임팩트 커리어는 비로소 전문직의 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문제는 ‘누가 이 복잡한 변화를 설계하고 관리할 것인가’였다. ESG와 임팩트 투자의 확산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전문 인력을 필요로 했다. 임팩트 측정과 관리, 기후 리스크 분석,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등은 사회문제를 직관이 아닌 데이터와 논리로 다루는 시대를 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임팩트 전문직’이다.
임팩트리서치랩, 트리플라잇 등 2019년 이후 등장한 여러 연구기관들은 사회적 변화를 수치로 번역하고, 기업의 행동을 정량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적기업가가 변화를 ‘만들었다면’, 임팩트 전문가는 그 변화를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임팩트’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이제는 기업이 먼저 ‘우리의 임팩트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는 임팩트 커리어가 감성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신념의 실천에서 전문성의 체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팩트 커리어는 직업의 변천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일의 의미’를 학습해 온 과정이다. 2000년대의 태동은 ‘좋은 일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이었고, 2010년대의 집적은 ‘함께 일하면 바꿀 수 있다’는 구조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2020년대의 전환은 ‘존중받으며 일한다’는 윤리의 시대다. 성장의 시대가 효율의 윤리를 낳았다면, 전환의 시대는 공감과 존엄의 윤리를 요구한다. 임팩트 커리어는 특별한 직업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의 생존 방식이자 일의 새로운 윤리다.
이제 Z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임팩트 커리어는 더 이상 주변부의 대안이 아니다. 딜로이트의 ‘2024 글로벌 밀레니얼·Z세대 서베이’에 따르면, Z세대의 89%, 밀레니얼의 92%가 “직업의 목적 의식이 자신의 행복과 직결된다”고 답했다. 그들은 급여보다 ‘의미’를, 직함보다 ‘영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 세대가 추구하는 ‘의미’는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이중의 실천가’다. 기부나 자선으로 대표되던 과거의 공익 활동이 이제는 ‘임팩트 투자’, ‘소셜 비즈니스’, ‘비영리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로 재편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가치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하게 일하는 방식이 같은 문장 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통과한 세대는 생존만으로는 삶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노동시장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왜 하는가’를 묻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다. 임팩트 커리어는 특정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일의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 위에서, 임팩트 커리어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김경하·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 이 기사는 SSIR 코리아에 게재된 ‘임팩트 커리어의 진화와 분화’ 아티클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분량과 구성을 조정해 재편집한 기사입니다. 원문 전문은 SSIR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