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100%, 물 사용량 90% 절감, 무농약, 푸드마일 95% 감소, 그리고 식량자급률 향상. 만약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채소가 도시민의 식탁에 오른다면 농업의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대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농장이 햇빛 대신 LED(발광다이오드) 빛으로 작물을 재배한다면 어떨까? 만약 일부라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소비할 대부분의 채소가 LED 조명으로 재배된다면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수직농장의 미래를 밝게 보지는 않았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어 농산물 생산비 역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샐러드박스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구성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도 그랬다. 해외 여러 스타트업들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두드러졌다. 여전히 예측한 범위 내에 있는 듯했다.
영국 글로스터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농장이 최근 가동을 시작했다. 존스푸드컴퍼니(JFC)에서 두 번째로 신축한 4500평 규모의 수직농장에서는 연간 1000t 규모의 엽채류를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상추와 비교하면 단위 면적당 22배나 더 높은 생산성이다. 팜에이트의 평택 수직농장은 600평 규모에서 하루 6000포기의 엽채류를 생산한다. 일반 시설하우스 대비 40배나 높은 생산성이다. 한 시장분석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약 6조원이던 수직농장의 시장규모는 2030년에는 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있었다. 농학을 전공한 나에게 농업이란 태양에너지를 먹을 수 있는 유기물로 전환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수직농장을 과연 농업의 한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부터가 헷갈렸다. 또 하나는 에너지 효율성의 문제였다.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태양을 대신하는 게 불편했다. 만약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한다면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려면 가장 큰 난제인 LED 전구의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태양광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빛의 세기까지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이런 기술적 한계는 굴지의 전자기업들이 식물공장용 LED 생산에 뛰어들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빛의 파장을 조절하여 농산물의 맛과 영양 성분까지 조절 가능하게 만들었다.
농업분야 1세대 스타트업인 ‘록야’는 강원 춘천에서 새싹인삼 재배용 수직농장을 시작했다. 빛의 파장을 조절해서 사포닌 성분의 함량을 강화시킨다. ‘엔씽’은 경기 이천의 물류센터 바로 옆에 컨테이너형 식물공장을 열면서 푸드마일 ‘제로(0)’에 근접했다. JFC에서는 협력업체와 함께 수직농장에서 딸기재배 실증을 시작했다. 3~11월이던 영국 딸기 시즌이 연중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딸기가 겨울작물이 되었듯이 영국도 곧 그렇게 될 전망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토마토와 화훼류까지 품목을 확대하고 영국에 공급되는 채소의 70%를 수직농장에서 공급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만약 이들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절반 정도 수입에 의존하는 영국의 신선 식품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뉴욕의 식물공장을 다녀온 한 전문가는 이렇게 전한다. “요즘 생산되는 식물공장의 채소는 제철농산물만큼 맛이 있다.” 식물공장에 맞는 품종 개발과 함께 환경조절 기술이 향상되면서 바야흐로 기술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그해 기상과 관계없이 식감, 향, 맛을 최적화한 맞춤형 채소에 익숙해질 것이다. 한번 길든 입맛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더 큰 변화는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는 추세다. 도시의 유휴건물과 지하공간에 농장이 만들어지고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자동화 로봇을 관리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더 환경친화적이기까지 하다. 세계는 푸드테크의 시대를 지나 팜테크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 농업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까?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