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더나은미래 ×현대차정몽구재단 특별기획]
학자 6인이 보내는 신년 메시지

삶이 너무 많이 흔들렸다. 예측은 빗나가고 기대는 무너지고 계획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무서운 경험을 거듭했다.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 무엇이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고 그럴듯한 전망을 내놓는 일들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보다 근본적인 것, 어떤 일이 닥쳐도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절실하다. 또다시 예측이 빗나가고 기대가 무너지고 계획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도 더는 우리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된 2021년.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이 특별한 신년 기획을 준비했다. 최재천(생태학), 장대익(과학철학), 박미랑(범죄학), 오혜연(전산학), 허태균(심리학), 정석(도시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탐구하는 6인의 교수를 차례로 만나 코로나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물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학자들은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공통 키워드는 ‘연결’이었다. 누군가는 생존 전략으로서의 연결을 말했고, 누군가는 양극화와 불균형을 바로잡는 연결에 대해 설명했다. 6인의 메시지를 지면에 담아 전한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뜻밖의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절묘하게 떠올랐다. 여기에는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 담겼다. 감염은 물리적 연결을 통해 이뤄지고, 이로 발생한 위기는 연결을 통한 연대와 협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면, 서로 연결돼 있지 않았다면, 감염병을 겪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팬데믹을 극복하는 힘은 연결을 통한 연대(solidarity)에서 나온다. 연대는 공감 능력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포유류 본능이다.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실험실의 흰쥐들을 한동안 함께 지내게 한 뒤, 한 마리만 따로 분리했다. 주변의 다른 쥐들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고 따로 분리한 쥐에게만 먹이를 줬더니, 동료들의 배고픔을 의식한 쥐가 먹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감 능력은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점점 소멸하는 공감 능력을 어떻게 잘 지키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부터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이른바 부자들은 사회가 무너져도 사재기하고 자기 것만 지키면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취약 계층이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자는 이야기다. 자연계 어디에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었다.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시간”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감염병이 창궐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혐오가 증가한다. 인류는 지난 20만년 동안 감염병을 일으키는 요인에 대해서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행동면역체계’라고 한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면역체계가 작동하는 ‘사후 전략’과 달리,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애초에 회피하는 ‘사전 전략’인 셈이다. 고통을 겪는 감염병 환자들을 보고 연민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팬데믹 시대의 혐오는 인간의 본성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감염병에 대한 혐오가 아무리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해도 이는 수렵 채집을 하던 시대나 농경 시대에나 적용되는 전략이다. 지금처럼 모든 세계가 복잡하게 연결된 사회에서는 혐오스러운 부분을 도려내고 피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혐오가 만연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건 ‘공감’이다. 그런데 많은 이가 오해하는 지점이 무조건 ‘깊이 공감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팬데믹 시대에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유는 ‘우리끼리만’ 깊이 공감하는 현상 때문이다. ‘공감의 깊이’보다 ‘공감의 반경’이 더 중요하다. 특정 집단에 속해 그 안에서 너무 깊은 공감이 생기면, 그 외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 어려워진다.

SNS의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원리도 이와 같다.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특정 콘텐츠를 선택하는 순간,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콘텐츠를 계속 연결 짓는다. 알고리즘에 자주 노출될수록 공감의 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온라인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만나보는 시간,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AI는 인간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혜연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오혜연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인공지능(AI)은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근본적으로 AI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흔히 AI가 스스로 학습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과 연결되지 않고는 학습이 불가능하다.

AI의 수준을 가르는 척도는 ‘얼마나 사람답게 사고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계 학습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그 데이터는 사람들과 사회에서 나온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이 때문에 개발자들도 사람의 행동과 표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처럼 AI를 사람답게 만드는 데 필요한 학습 데이터는 주로 ‘사회 연결망’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데이터화하지 못하는 정보도 아주 많다. AI는 명확한 목적과 주제가 있는 대화는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오늘 뭐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상황에 맞지 않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AI는 이 대화가 자연스러운지, 아닌지조차 판단하지 못한다. ‘유머’를 AI가 학습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포인트는 ‘사람다운’ 대화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굉장히 쉬운 대화가 AI에는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AI의 협업이 필요하다. 이를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라고 하는데, 인간의 판단력과 AI의 빅데이터 처리 능력이 조화를 이뤄 학습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AI는 인류와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범죄를 이기는 연결의 힘”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대중은 범죄자들과 단절되기를 원한다. 그들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격리하려 든다. 최근 조두순 출소를 둘러싸고 일부 사회심리학자나 범죄심리학자들은 ‘보호수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출소 이후에도 별도의 시설에 격리하는 보호수용 제도에 대중은 호응했다. 그러나 배제와 단절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좋은 방법일까.

범죄 해결의 해답은 오히려 ‘연결’과 ‘집합’ 속에 있다. 범죄는 다수의 정의로운 의지가 모였을 때 비로소 줄어든다. 연결을 끊고 사회 어느 한쪽으로 몰아버리는 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악을 키우는 일이다. 조두순과 같은 동네에 사는 몇몇 시민은 살던 곳을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범죄 예방과 해결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오히려 다수의 시민이 힘을 합쳐서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이를 범죄학에서는 ‘집합 효율성’이라고 한다. 집합 효율성이 낮은 지역은 범죄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 된다.

지금처럼 팬데믹으로 인해 지역 주민 간 만남이 쉽지 않은 시기일수록 집합 효율성은 더 중요해진다. 집합 효율성이 높은 지역엔 특별한 비밀이 있다. 먼저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는 주민 비율이 높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변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얼굴을 아는 사람이 일을 당하고 있으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신고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일 경우에는 행여 피해를 볼까 하는 생각에 나서질 않는다. 비대면 시대에 주민들을 어떻게 더 끈끈하게 연결을 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진심이 드러나는 시대가 온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현재 우리가 맞이한 팬데믹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과는 다르다. 과거 인터넷도 없고, 인프라도 부족하던 시대의 팬데믹은 사회를 단절시켰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업무는 재택으로 대체하고, 필요한 물건은 온라인을 통해 구한다. 코로나로 제한받는 일도 생겼지만, 새로운 선택지는 그보다 더 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우리 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바로 ‘선택성의 확장’이다. 지금까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 등을 잇는 연결의 양이 증가하는 시대를 살아왔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연결의 대상과 내용을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팬데믹으로 사람 간 접촉이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람을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안 만나도 되는 선택지가 더 생겼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에 예의 차리면서 가야 했던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은 가족 혹은 좋아하는 사람과 보낸다. 연결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연결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진심이 드러나는 시대.’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진심을 보고 싶어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정 중심주의’라고 하는데, 반드시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같이 온다. 우리가 살아갈 코로나의 삶은 어떨까. 선택에 따라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진 않을까.

“잉여와 결핍의 연결”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우리가 사는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는 건강한 도시에 살고 있을까. 건강한 도시는 흐름이 원활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단절투성이다. 아파트 단지만 봐도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넣어버리면서 사람의 동선과 분리됐다. 이렇게 동선을 분리하는 게 자동차 사고로부터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지상에 걷는 사람들이 줄면서 섬뜩한 공간이 됐다. 또 하나, 재개발 구역이다. 한 동네에 재개발이 이뤄지면 그 지역을 촘촘히 연결 짓던 골목은 끊겨버린다. 개발된 지역은 독립된 성채가 된다.

우리의 국토 역시 수도권으로 피가 과도하게 쏠려 있다. 피가 한쪽으로 쏠리면 열이 나고 건강을 해친다. 지금의 수도권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지방은 소멸 위기다.

국토의 에너지가 한쪽으로 편중된 상황에서 ‘연결’은 명약이 될 수 있다. 지방의 ‘무심한 잉여’와 수도권의 ‘절절한 결핍’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부동산 공급을 늘릴수록 비수도권의 잉여는 늘어난다. 비수도권의 빈집들을 고치고,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일굴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한다면, 국토 불균형의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

작은 것들이 연결되면서 큰 흐름을 만드는 실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바로 ‘마을호텔’이다. 마을호텔은 마을 곳곳의 작은 건물들이 수평으로 서로 연결돼 하나의 호텔 기능을 이루는 구조다. 수익은 마을 공동체에 스며든다. 충남 공주의 ‘봉황동 마을호텔’, 강원 정선의 ‘고한18번가 마을호텔’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재생의 가치는 연결을 통해 살아난다. 작은 존재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연결’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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