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모두의법] ‘폰트 저작권 침해’ 내용증명 받으셨다고요?

송시현_변호사
송시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최근 1~2년 사이 비영리단체들의 폰트 저작권 침해에 대한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 문의 내용은 거의 같다. 단체의 뉴스레터, 활동 보고서, 웹 포스터 등에 사용한 폰트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폰트 디자인 회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등이 내용증명을 보내고 프로그램 전체를 구입하라며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가 받아든 내용증명에는 ‘폰트 프로그램을 적법한 허락 없이 사용했으므로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체 대표 또는 활동가가 저작권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합의금 액수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단체 활동가의 평균적인 월급을 훨씬 웃도는 액수였다. 또 비영리단체 운영에 타격을 줄 정도 큰 액수도 있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대부분 사람은 상당한 공포심을 갖게 된다. 아마도 두려움 때문에 단체 운영에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임에도 합의금을 지급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합의할 여건이 안 되는 일부 단체는 폰트 저작권자 등에게 고소를 당해 단체의 대표나 담당자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무혐의 처분 또는 불기소 처분 등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직 비영리단체가 관련 처벌을 받은 사례를 접하진 못했다. 하지만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활동가들이 받은 고통과 소요된 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비영리단체의 폰트 사용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저작권법에 따라 처벌받을 사안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폰트 저작권 분쟁의 가장 전형적인 유형은 홍보용 웹 포스터에 개인적 또는 비상업적 목적의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다. 폰트 저작권자들은 원칙적으로는 비영리적인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단체들이 폰트를 사용한 홍보물로 기부금·수익금 등을 받는 경우는 비영리 목적의 사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폰트는 프로그램 저작물로 보호받고 있다. 즉 해당 프로그램을 내려받았는지에 따라 폰트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이 발생하는 것이지, 폰트가 어떤 문서 등에 드러나 있다고 해서 바로 폰트 저작권 침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저작물 이용을 허락받은 경우 프로그램의 사용 조건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저작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5다1017 판결). 비영리 활동가가 개인적 또는 비영리적인 목적으로 해당 폰트를 다운로드받은 것은 정당한 복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영리란 수익을 분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기부금을 받지 않거나 수익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비영리단체가 단체 설립 목적에 맞는 기부금 모집, 수익 사업 등을 하기 위해 홍보물에 해당 폰트를 사용하는 건 비영리 목적의 사용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은 활동보고서와 같은 PDF 파일을 폰트가 포함된(embedded) 상태로 단체 홈페이지에 업로드한 경우다. 이 경우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해석을 이미 내린 바 있다. PDF 이용 과정에 부수적으로 이용된 일부 글꼴 파일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 글꼴 파일을 추출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사용하기 불가능해 글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므로 저작권법 제35조의3에 따른 공정이용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폰트 저작권자들의 무분별한 고소는 비영리단체의 공익 활동을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행위로 규제돼야 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검찰청은 청소년 저작권 침해 사범 양산을 방지하기 위한 ‘청소년 저작권 침해 고소 사건 각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저작권법을 위반한 적이 없는 청소년이 우발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했을 때 1회에 한해 조사 없이 각하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지난 2018년부터는 합의금을 얻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고소한 사건 중 공익적 관점에서 수사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고소를 각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비영리단체 사례에도 넓게 적용될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비영리단체들의 폰트 저작권 문제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지속된 이 문제에 대해 비영리단체들도 한마음으로 대응책을 논의해볼 시점이다.

공동기획 |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재단법인 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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